brunch

이런 일이 나에게도

by 사비나

푸트라자야에 도착 후 하고 싶었던 일이 있어 검색하던 중 알게 된 <브런치스토리>가 단 삼일 만에 내 인생의 이벤트가 되었다.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무엇을 어디까지 담아내야 하는지를 모른 채 무작정 손가락부터 움직여봤건만 삼 일 전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많은 분들과 인연을 맺은 것 같다.

조용하던 내 폰에서는 연신 띵, 띵, 띵... 라이킷 받았음을 알리는 알림 메시지가 울렸고, 그때마다 새로운 분들과 반갑게 인사하는 느낌이었다.

마치 내가 개업한 가게에 귀한 손님이 찾아와 주신 것처럼 기쁘고 놀라웠으며 감사했다.


사실 내 인생을 돌아보면 지극히도 상반된 두 모습이 있다.

어렸을 땐, 남들에게 주목받는 것이 좋아 스스로의 결정과 노력, 그리고 그보다 더 큰 행운으로 KBS 방송국에서 꽤 긴 시간 활동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TV에 노래하고 춤추는 내 모습이 나왔고, 목요일 오후마다 라디오 정규 프로그램에서 아나운서로 활동해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곧잘 쓰이던 말을 인용하자면, 그야말로 흙수저로 태어난 내 초라하고 어린 삶에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고도 놀라운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학교 정규 수업이 끝나면 방송국 차량이 나를 데리러 오는 날도 있었고,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 학생들은 물론 교장선생님까지 알아보시고 학교를 빛냈다며 칭찬해 주셨으니까.


그때 나의 마음은 어땠을까?

솔직히 그 점에 관해 지금 기억나는 건 이상하리만큼 하나도 없다. 정말 하나도...

오히려 실상은 그리 뛰어나게 잘나지 못한 나를 스스로 인식하였고, 그럼에도 주변에서 관심 주시는 것에 어린 마음에 부담을 느꼈던가보다.

중학교에 진학하고부터는 학교생활 이외에는 대외적으로 눈에 띄는 활동을 한 적이 없었던 걸 보면... 그래서인지 오히려 사춘기를 다른 아이들보다 더욱 차분히, 조용히 보냈다.


또 한 번의 행운으로 어릴 적 꿈을 이루고 난 후,

직업 특성상 아주 작긴 하지만 다시 무대에 서야만 하는 일이 생겼다.

음악교사이기에 해야만 하는 일. 학교의 크고 작은 행사 때마다 교단에 올라가 전교 학생 및 교사, 내빈 앞에서 애국가와 교가 지휘를 하게 된 것이다. 지금에야 학생들에게 무대 기회를 주는 것이 교육적이라 여겨 대표학생을 세우기도 하지만, 내 교직생활 초중반까지는 교사가 직접 하기를 관리자들이 강요했다. 아마도 학부모나 내빈을 의식해서였으리라.

방송국 스튜디오에서도 떨지 않던 내가, 그 내가 정말 맞나 싶을 정도로 지휘를 해야 하는 일이 너무 부담스럽고 고통스러웠다. 상식적으로 전혀 큰 일이 아님에도 말이다.

이유는 하나였다.

많은 눈들이 내게 하나로 모이는 그 무대가 싫었으니까.

얼마나 싫었냐면 그 짧은 3, 4분 때문에 그날은 결근하고 싶을 정도로 싫었다.

하지만,

동료들조차 그런 나를 전혀 눈치채지 못할 만큼 방송국 카메라 앞에서보다 더 꼿꼿하고 당당한 자세로 지휘한 후 담담히 또각또각 무대 계단을 내려왔다.


페르소나!

내 진짜 모습은 뭘까?


푸트라자야 여행 4일째.

나의 모습이 글로 드러나며 작디작은 관심을 받았고,

노트북 없이 손가락 하나로 까닥까닥 폰 자판에 의지한 채 이 공간을 메워가는 순간에도 감사한 라이킷 알림이 간혹 뜨고 있다.


그래서,

혼자만의 <브런치스토리 발행기념회>를 열어봤다.

호텔 가장 꼭대기에 있는 바에서 맥주와 소탈한 크랩튀김 하나 시켜놓고 작게나마 나에게 벌어지고 있는 이 관심에 기쁨을 만끽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역시나 하루의 마무리는 언제나처럼 낡은 묵주로 기도하는 것으로...

오늘의 기도는 한없는 감사다.

아름다운 사람들 그리고 그보다 더 아름다운 그들의 언어가 내 인생에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음에 감사하다고.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냥 버스를 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