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의 이상한 위로법

by 숨 쉬는 방

암 진단을 받고 '암밍아웃'을 누구한테까지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친구들 보다도 자주 만나 차를 마시고 대화를 하고 맛집을 찾아다니는 동네 지인들이 떠올랐다.


재작년 이 동네로 이사 왔을 때 모든 것이 좋았다.

오래된 나무로 인해 계절 변화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좋았다.


12월 초, 암이라는 단어의 무게가 무거웠다.

나는 동네 지인들에게 대학병원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날 이후 지인들은 날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집에서 혼자 슬픔에 빠진 비련의 여주인공을 상상할 틈을 용납하지 않았다.


아침에 아이들을 등교시키면 지수 씨에게 연락이 왔다.

"운동하러 9시에 만나요. 몸풀기 스트레칭이라고 가볍게 생각하세요."

40년을 운동과 담쌓고 숨쉬기 운동만 하던 나를 가차 없이 불러냈다.

지수 씨는 에너지가 넘치고 외형적으로도 운동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단번에 눈치챌 수 있는 매력 있는 필라테스 강사이다.

사놓고 택도 뜯지 않은 운동복을 꺼내 입고 나가서 뻣뻣한 몸으로 스트레칭을 했다.

운동이 끝나고 집으로 오면 오히려 에너지가 생기고 입맛이 돌았다. 평소 끼니를 자주 거르던 나는 점심을 제대로 한 상 차려 먹었다.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없고 외향적인 성격을 가진 수민 씨는 나보다 나이가 훨씬 어리지만 마음이 잘 통해서 둘이서 종종 만난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시다 암밍아웃을 했다. 외국에서 자란 그녀는 헤어질 때 포옹으로 위로를 전했다.

며칠 뒤 집으로 수민 씨의 선물이 차례로 도착했다.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건강기능식품과 지압 슬리퍼였다.

지압 슬리퍼를 신으면 발이 너무 아파서 슬퍼할 겨를이 없다. 빨리 슬리퍼에서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할 뿐이다.


나보다 나이가 많고 배려심이 깊은 소형 언니는 큰 언니 같다.

일요일 아침 언니의 연락을 받고 집 앞에 나갔다. 상자 안에는 직접 뜨개질한 목도리가 들어 있었다. 직장생활을 하느라 바쁠 텐데 틈날 때마다 뜨개질을 한 것이다. 그 모습을 상상하니 더없이 고마웠다.

아이들 방학식 전에 집에서 점심을 먹자고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오라는 그녀의 말에 배달음식을 시켜 먹는 줄 알았다. 집에 도착하니 정성스러운 편백찜이 한상 가득 차려져 있었다.


나에게 누구도 섣불리 위로의 말을 하지 않는다.

슬퍼할 틈을 주지 않는 그녀들의 위로법은 어딘가 모르게 이상한데 지금의 나에게 위로가 된다.

따뜻하고 다정한 마음이 내 마음에 닿아 불안을 걷어간다.


이렇게 배운다. 나도 누군가에게 섣부른 위로보다는 말없이 진심을 전하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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