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 ㅡ 비행 교관
"첫 솔로 비행인데 늦잠?"
너무 기가 차 화조차 나지 않았다. 황당함이 가득 담긴 내 눈은 학교 앞에 자전거를 세우더니 헐레벌떡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학생을 따라갔다.
하루키는 급하게 유니폼을 찾아 입고 온 티가 났다. 넥타이를 빼먹은 건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휴대폰 화면을 톡톡 두드려 시간을 확인하곤, 숨을 몰아쉬며 연신 미안하다 사과하는 하루키의 말을 끊었다.
"헤드셋은?"
"어…!"
가방을 다급하게 뒤지더니 눈동자가 갈 곳을 잃는다.
"가서 빌려올게…!"
"너 그 헤드셋은 잘 안 들려서 비행 못하겠다며."
정말이다. 평소 노이즈 캔슬링 헤드셋을 끼는 학생들은, 그런 고급기능이 없는 저렴한 헤드셋을 빌려 쓰는 날엔 비행능력이 눈에 띄게 떨어지곤 한다. 대부분 관제의 음성나 교관의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했다. 처음부터 노이즈 캔슬링도, 블루투스도 지원되지 않는 초경량 헤드셋을 써온 나로선 공감할 수 없었지만. 오히려 난 시끄러운 엔진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불안해질 지경이었다.
"아아…"
헐떡이던 숨소리는 잦아들었지만 이제 그 아이의 분주한 머릿속이 시끄럽게 들려오는 듯했다.
"다음에 하자."
뒤돌아 컴퓨터 속 스케줄링 화면을 클릭했다. 아마 뭐라도 해명해보고 싶겠지만, 본인이 자초한 일이기에 그는 입만 삐죽이며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고작 열여덟, 열아홉쯤 되는 일본 학생들은 무리 속에서의 경쟁심리가 대단했다. 여러 항공대학 학생들이 미국으로 동시에 온 것도 있겠지만, 훈련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가는 순서에 따라 어떤 항공사에 들어갈지가 어느 정도 정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으로 교관도 없이 혼자 올려 보내는 솔로비행은 목숨이 걸리기도 하는 일. 저렇게 침착하지 않은 상태로 시간의 압박까지 견디게 하며 올려 보낼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료우타는 화제의 인물이었다. 수업에 지각했다고 길거리에서 히치하이킹을 시도하다, 출근길의 학교 매니저에게 발각돼 다행스럽게도 안전히 등교한 학생. 학교 주차장에서 킥보드로 스턴트를 부리고 있으니 단속 부탁한다고 주의가 내려지던 그런 학생. 가까운 미래에 솔로비행을 갔다가 공항에 갇혔다고 배달음식을 시켜달라고 하는… 참 비상한 학생.
"다시 말하지만, 단 한 번이라도 위험한 순간이 있으면 오늘 솔로 비행은 취소인 거야."
첫 솔로에 혼자 해내야 하는 건 세 번의 랜딩. 두 번의 터치 앤 고(Touch-and-go: 랜딩훈련의 목적으로 랜딩 후 정지하지 않고 파워를 넣어 그대로 다시 이륙하는 것)와 한 번의 풀 스탑(Full stop: 랜딩 후 정지)을 하면 된다. 먼저 교관과 필요한 만큼의 랜딩 연습을 한 후 안전하다 판단되면 교관이 비행기에서 내린 후 학생 혼자 다시 나간다.
료우타의 넘치는 자신감과 마초스러운 기질을 알았기에, 미리 신신당부를 했다. 과거엔 친구들과 드리프트를 하다 사고를 낸 적도 있었다던가.
허나 료우타는 평소와 다르게 굉장히 침착하게 모든 랜딩을 해냈다. 함께 하는 마지막 랜딩 후, 택시웨이로 빠져나가며 나는 마이크 버튼을 눌렀다.
"그라운드, 조금 이따 같은 테일넘버의 비행기로 제 학생이 첫 솔로를 하러 돌아올 거예요.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롸져."
램프로 돌아와 짐을 챙겨 비행기에서 내렸다. 급히 네임펜을 꺼내 노란 포스트잇에 ‘STUDENT SOLO’라고 큼지막하게 적어 건넸다.
물가에 내놓은 아이를 걱정하듯 작은 창문 틈사이로 한참 동안 마지막 당부를 했다. 관제탑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으면 혼나도 괜찮으니 몇 번이고 'Say again'을 하라던지, 첫 교신에 'Student solo'를 말하는걸 절대 잊지 말라던지, 하는 잔소리들을 말이다.
"평소보다 가벼워서 훨씬 빨리 고도에 도달할 거야. 계속 고도랑 속도 확인해."
"혼자 있다고 콜아웃 건너뛰지 말고, 조용히 있지 말고. 계속 소리 내서 말해."
기름도 오일도, 타이어도 한번 더 봐주고는 엄지를 올렸다. 료우타는 창문 틈 사이로 'Clear prop!' 하고 크게 소리치더니 시동을 걸었다.
한참을 체크리스트를 수행하듯 이것저것 만지던 료우타가, 이내 나를 보며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엄지를 들어 올렸다. 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의 비행기는 기다렸다는 듯이 램프를 빠져나갔다. 그 뒷모습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나는, 곧장 학교 건물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한 손엔 학교에서 빌린 무전기를, 한 손엔 휴대폰을 들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휴대폰 속엔 비행기들의 현 위치를 추적하는 레이더 어플이 켜져 있었다.
"오늘 누구 솔로해?"
지나가던 동료 교관들이 한 마디씩 던지며 지나간다. 시간이 남거나 료우타를 아는 교관들은 옆에 와 수다를 떨며 잠시 머물다 가기도 했다. 료우타의 대학 친구들은 진작에 우르르 몰려와 동영상 찍기에 빴다.
첫 번째 랜딩. 나쁘지 않았다.
"쟤 방금 라디오 콜 놓쳤다!"
료우타를 부르는 교신에 아무런 응답이 없자, 친구들 중 하나가 키득거리며 소리쳤다. 내 눈치를 한번 힐끔 보더니, 자기들끼리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Cleared low approach."
관제의 음성이 들리자, 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옆에 있던 동료 교관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돌아봤다. 흔치 않은 클리언스였다. 보통은 Cleared to land나 Cleared for touch-and-go를 주기 마련이다. 하지만 Low approach는 다르다. 땅에 닿지 않고 활주로 가까이 낮게 비행한 뒤, 다시 상승해야 한다.
"쟤가 그런 걸 알 리 없잖아…"
내 한탄 섞인 말과 동시에, 쿵ㅡ하고 착지하는 료우타의 비행기가 눈에 들어왔다.
“괜찮아, 나중에 경위서 쓰면 되지!“
"에이, 저건 관제탑이 너무 했다. 누가 학생솔로한테 저런 걸 주냐."
"나도 전에 학생이 라디오 콜 너무 못해서 관제탑에서 전화 왔잖아. 화 엄청 나서."
구경 나왔던 진우와 원호가 낄낄 웃으며 내 어깨를 툭툭 친다. 위로하는 건지, 놀리는 건지.
어쨌든 두 번째 랜딩 완료. 이제 한 번만 더 하면 된다. 마지막은 공중에서 풀 스탑을 요청해야 한다.
"Tower, request touch-and-go."
료우타의 목소리가 무전기에서 흘러나오자,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그의 친구들을 돌아봤다. 학생들은 이미 웃고 있다.
"방금 터치 앤 고 요청한 거지? 풀 스탑 아니고?"
"응. 내려오기 싫은가 봐?"
세 번째 랜딩. 곧바로 다시 상승한다.
공항 위로 네모난 패턴을 그리며 한 바퀴를 돌고 나서야, 비로소 제대로 풀스탑을 요청하고 네 번째 랜딩을 마친다.
료우타의 비행기가 택시웨이로 잘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한 순간, 나는 거의 뛰다시피 램프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곧 도착할 그의 비행기를 함께 밀어주기 위해서다. 비행기보다 내 발걸음이 느리니, 서둘러야 한다.
그때, 손에 들고 있던 무전기에서 관제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무도 다정하고 따뜻한 목소리다.
"You did a wonderful job today. Great job."
덩달아 마음이 몽글몽글 해진다. 빠른 걸음 사이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천천히 램프로 들어오는 료우타의 비행기. 시동이 꺼지자마자 나는 그의 반대쪽 문을 열고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뭐야, 너 왜 네 번이나 랜딩 한 거야?"
"말하는 거 깜빡해서…"
료우타는 쑥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료우타를 만났을 때, 그의 휴대폰 케이스 뒷 면에 노란 포스트잇이 보였다.
코팅된 채, 커다랗게 STUDENT SOLO라 적혀 있는.
괜히 웃음이 났다. 더 예쁘게 써줄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