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길을 잃다

미희 ㅡ 학생 파일럿

by Park

첫 솔로비행은 생각보다 쉬웠다. 교관님 말씀대로 혼자 조종석에 앉으니, 비행기가 훨씬 더 가볍고 빠른 듯했다. 그 속도와 자유로움이 제법 짜릿했다.


비행학교의 전통으로, 솔로비행이 끝난 후엔 친구들이 모두 몰려와 차가운 물을 잔뜩 퍼붓는다. 대형 통에 얼음물을 한가득 채워서는, 얼마나 세게 퍼붓는지 물을 맞고 뒤로 넘어지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도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며 모두가 함께 즐기는 이벤트이다.


다만, 내 유일한 우려는 학교에서 공개적으로 물을 맞는 일이었다. 안 그래도 학교 건물만 걸어 지나가도 군부대 면회객처럼 쏟아지는 시선과 수군거림을 감내해야 했기 때문이다. 고작 1-2%에 불과한 여학생들에게는 늘 성적인 평가와 구설이 따라붙었고, 그래서 나는 언제나 모범적이고 반듯하게,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유지하려 애썼다.


이를테면 이런 일도 있었다. 목 끝까지 잠그는 흰색 유니폼 셔츠가 답답해서 단추를 한 두 개 풀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거울로 확인했을 땐 빈틈없이 단정했고, 안에는 나시까지 받쳐 입었으니 비칠 일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 사람들과 함께 점심을 먹던 자리에서 옆에 앉은 누군가가 말했다. '오늘따라 왜 이리 옷을 다 풀어헤쳤어? 섹시하게.' 그 한마디 공개적인 희롱 이후로, 나는 50도에 육박하는 날씨에도 항상 셔츠 단추를 목 끝까지 꽉 잠가 입고 다녔다.


어쨌거나 그런 분위기 속에서, 흰 셔츠 차림으로 학교 사람들 앞에서 물을 맞는다는 건 내겐 솔로비행 그 자체보다 더 걱정스러운 일이었다. 아, 솔로 직후에 혼자 비행기를 밀어야 하는 일은 두 번째 걱정거리였고.


그런 내 마음을 먼저 헤아려 주듯, 내 동기들은 우리 집 수영장에 빠지는 걸로 대체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친한 친구들끼리만 함께 축하하자는 아이디어였다. 게다가 흰 셔츠 대신 어두운 사복으로 갈아입을 수 있다는 건 나만이 아는 엄청난 장점이었다.


그런 디테일에 대해 서로 아무런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기에, 그들의 의중은 알 수 없었다. 다만 덕분에 나는 첫 솔로비행을 온전히 기념하고, 마음 편히 축하받을 수 있었다. 그들은 늘 이렇게 사려 깊고 배려심이 깊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좋아했다.




첫 솔로비행을 마치면 솔로 크로스컨트리(Cross country)가 있다. 50마일 이상 떨어진 다른 공항까지 다녀와야 하는데, 이미 교관님과 두어 차례 연습해 본 터라 낯설지 않았고, 눈으로 지형지물을 따라가는 비행이라 한층 수월하기도 했다. 게다가 교관님께서 내 비행짝꿍인 페어와 함께 다녀와도 된다고 허락해 주셔서 그리 긴장하지도 않았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대망의 날, 페어의 비행기가 먼저 이륙했고 나 역시 뒤따라 이륙했다.


목적지까지는 큰 문제없이 잘 갔던 것 같다. 다만 뭘 모르는 우리는 속도를 맞추거나 간격을 유지하는 지혜 따위는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 그저 안일하게 앞만 보고 가던 중 불현듯 내 시야에 페어의 비행기가 들어왔고, 그제야 위기감을 느낀 우리는 첫 공항에 착륙 후 나름의 작전을 짰다.


"네가 먼저 뜨고, 난 일이 분 뒤에 이륙할게."

"그래, 그렇게 하자."


내 비행기가 런웨이로 천천히 들어서자 페어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공용 주파수를 통해 흘러나왔다. 그 공항은 관제탑이 없었기에, 교신을 나누는 공용 주파수는 우리 것이나 다름없었다.


"편대비행 해도 돼?"

"안 돼."


천천히 이륙해 북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북쪽으로 쭉 올라가기만 하면 두 번째 공항이 보일 터였다. 이륙한 지 일이 분쯤 지났으려나, 라디오를 통해 페어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또 네 비행기 보인다. 너무 가깝네. 네가 서쪽으로 조금만 가. 나도 동쪽으로 돌릴 테니까, 간격 벌린 후에 다시 북쪽으로 가자."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서쪽으로 살짝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는 접근관제 주파수로 전환했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더 이상 서로와 사적인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몇 분이나 흘렀을까, 이제 다시 북쪽으로 향해도 괜찮겠다 판단했다. 북쪽으로 기수를 돌린 뒤, 무릎 위 지도와 창 밖 풍경을 비교했다.


그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여기가… 어디지?


침착하려 애쓰며 바깥을 살폈다. 그러나 사막은 끝도 없이 광활했고, 눈에 띄는 표식 하나 없었다. 게다가 우리의 의도대로 페어의 비행기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상태였다. 설상가상, 내 비행기의 GPS는 고장이었다. 아이패드도, 전자지도도, 현 위치를 알려줄 장치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조종석 안엔 오직 종이 지도 한 장뿐이었고, 서쪽으로만 날아가던 나는 이미 오래전에 지도 밖으로 벗어나 있었다.



정신을 다잡으며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떠올렸다. 하늘에서 길을 잃었을 땐, 우선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며 더 높이 올라가야 한다. 더 헤매지 않고, 더 멀리까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어서 연료를 절약하기 위해 세팅을 조정한다. 그다음 단계는… '자백하기'이다.


손가락이 마이크 버튼 위에서 멈췄다. 이 주파수엔 수많은 파일럿과 관제사가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은가. 창피당하기 않으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어렴풋이 배운듯한 테크닉 하나가 떠올랐다. 항공기는 지상의 여러 기지로부터 신호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큰 결심을 한 듯 계기를 만지작 거리곤, 나름 해석한 대로 지도 위에 자를 대고 선을 그었다. 다른 주파수를 맞추고, 또 하나의 선을 그었다.


그 두 선이 교차하는 곳이 바로, 내 현 위치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순간에도, 비행기가 제자리에서 원을 그리며 고도를 유지하고 자세를 잃지 않는 건 모두 나 혼자 해내야 하는 일이었다. 처음엔 침착했던 마음이, 몇 바퀴나 돌았는지 알 수 없을 지경에 이르자 점점 조급해졌다.


애써 그어낸 선들은, 어디에서도 만나지 않았다. 두세 번 다시 확인해 선을 그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선들은 제각각 엉뚱한 방향으로 뻗어있을 뿐이었다.


아, 이 시스템마저 고장이구나.


손가락이 마이크 버튼 위를 맴돌며 서성였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모두 시도해 봤다. 어쩔 수 없이, 다음 절차인 '자백하기'를 결국 실행에 옮긴다.


"접근관제, 저 길을… 잃었습니다. 벅아이 공항으로의 방향을 알려주세요."


머뭇거리는 내 목소리가, 헤드셋을 타고 내 귀에까지 또렷하게 들려온다. 모두 각자의 칵핏에서 웃고 있을까? 공개적으로 날 비웃는 건 아닐까? 식은땀이 흐른다.


그러나 곧바로 돌아온 건, 내 예상과는 달리 무미건조하고 평온한 목소리였다.


"예, 트랜스폰더에 4754 입력하세요."

"4754."

"020 방향으로 날아가다 보면 10 마일 앞에 공항이 보일 겁니다. 공항 보이면 말씀하세요."


긴장해서였을까. 눈을 씻고 찾아봐도 공항은 보이지 않는다. 공항을 지나쳐 버린 걸까. 망설이다가 다시 마이크 버튼을 눌렀다.


"다시 한번, 공항 위치 확인 부탁드립니다."

"현재 위치 바로 아래에 있습니다."


다급하게 창밖을 살펴보니, 정말로 발밑에 공항이 있었다. 급히 기수를 틀어 활주로를 향했다.




어떻게 착륙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우당탕 착륙했을 게 뻔하다.

여담이지만 시간이 많이 흘러 다시 생각해 보면, 그날 고장 났다고 믿었던 시스템들은 아마도 전부 멀쩡했을 것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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