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럿이 숫자를 반대로 센다면?

도연 ㅡ 비행 교관

by Park

12, 21. Twelve, Twenty-one.

13, 31. Thirteen, Thirty-one.

14, 41. Fourteen, Fourty-one.

15, 51. Fifteen, Fifty-one…


놀랍게도 영어권이 아닌 내 학생들이 꽤나 어려워하는 건 숫자를 똑바로 말하는 것이다.


Left와 Right을 종종 반대로 말하는 건 덤이다. 한 번은 한 학생이 택시 하다 '저기 앞에 항공기가 있으니 왼쪽으로 피할게'라고 하더니, 갑자기 오른쪽 러더를 있는 힘껏 밟으며 오른쪽으로 돌길래 깜짝 놀라 컨트롤을 뺏은 적도 있었다.


숫자나 좌우를 헷갈리는 건, 파일럿에게 치명적이다.


왜냐하면…


"Cleared to land, runway 31L (Three-One-Left)."

"Cleared to land… 13L (One-Three-Left)."


잠시 머뭇거리던 유토가 관제사의 클리어런스에 반대로 응답했다. 눈앞 활주로엔 '31L'라는 숫자가 하얀 페인트로 선명히 칠해져 있었다.


그는 반대 활주로에 내린다고 대답을 한 셈이다.


비행하랴, 관제 응답하라, 정신없는 유토 옆자리에서 나는 팔짱을 낀 채 심드렁하게 물었다.


"활주로 숫자, 뭐라 적혀있어?"


유토가 내 질문에 대답하기도 전에, 목소리에 힘이 잔뜩 들어간 관제사의 음성이 곧바로 라디오를 타고 흘러나왔다.


"31L. Cleared to land 31L."

"Correction, 31L."


그제야 유토는 제대로 응답했고, 곧장 랜딩에 집중했다. 나 역시 하고 싶은 말들을 꾹 삼킨 채 조용히 그를 지켜봤다.


유토, 오늘 숙제는 빽빽이다. 헷갈리지 않을 때까지, 모든 숫자를 영어로 적게 될 거다.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 유토와의 마지막 비행이었다. 다른 공항에 들러 밥도 먹고 기념품도 산 후 돌아오는 비행기 안. 내 자리에선 연료 게이지가 잘 보이지 않아, 유토 쪽으로 몸을 살짝 기울이며 물었다.


"지금 기름 얼마나 남았어?"

"12갤런 남았어."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


계산해 보니 우리 공항까지는 돌아갈 수 있겠지만, 예비 연료가 부족하다. 이대로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손가락이 바빠졌다. 아이패드를 열어 주변 공항의 급유 가능 여부와 기름값을 빠르게 확인했다.


"12갤런? 그럼 랜딩 할 때는 6갤런 이하로 떨어지겠네?"

"응."

"그럼 가는 길에 이 공항 들려서 기름 넣고 가자. 우리 뒤에도 비행예약이 있으니까 시간이 별로 없어."

"응."

"네가 비행 담당, 내가 라디오 담당. 랜딩 후엔 내가 빠르게 택시 할게."


유토는 언제나처럼, 기계적으로 'Yes.' 하고는 정면을 응시했다. 정말 이해한 건가 묻고 싶었지만, 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돌아올 답은 'Yes' 일 테니.


시간이 조금 흘러, 급유하려던 공항이 저 멀리 시야에 들어왔다. 어떻게 공항에 접근하고 패턴에 진입할지 대화를 나눈 후, 다시 한번 연료를 확인했다.


"유토, 지금은 기름 얼마나 남았어?"


유토가 시선을 연료 게이지로 내린 뒤, 태연하게 대답했다.


"21갤런."


Twenty-one gallon.


맥이 탁 풀렸다. 눈을 지그시 감고, 크게 숨을 들이쉰 뒤 조용히 내뱉었다.


"기름이… 어떻게 불어나냐고."


오늘도, 이렇게 내 성격은 조금 더 나빠지겠지.



금요일 연재
이전 06화하늘에서 길을 잃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