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이탈리아 여행-5 : 피티궁전, 피렌체 대성당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Uffizi Gallery)과 베키오 다리(Ponte Vecchio)는 비밀 통로인 바사리 회랑(Corridoio Vasariano)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메디치 가문이 피티 궁전까지 안전하게 이동하기 위한 목적으로 말이다. 우리는 바사리 회랑으로 가면 못 볼 풍경들을 보며 천천히 걸었다.
베키오 다리(Ponte Vecchio)를 건너니 황금빛 건물들로 가득한 골목이 나타났다. 이탈리아 정취가 느껴지는 골목에서 사진을 신나게 찍었다. 어떤 각도로 찍든 화보처럼 나왔다.
피티 궁전은 1549년 코시모 1세 데 메디치의 부인 에레오노라 디 톨레도가 매입, 이후 메디치 대공가의 공식 거처로 사용된 곳이라고 한다. 특히, 금빛 석조 블록을 그대로 노출시켜 성벽처럼 견고하게 만든 외관을 보니 웅장함과 강인함이 느껴졌다.
피티 궁전에 입장해서 팔라티나 미술관(Galleria Palatina)과 보볼리 정원을 볼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곳에는 마치 우리가 우피치 미술관을 나왔을 때 본 줄이 끝도 없이 늘어져 있었다. 햇빛도 점점 강해지고 계속 도보로 이동하면서 지친 상태여서 입장은 포기하기로 했다.
팔라티나 미술관을 못 보고 가는 게 아쉬웠다. '매월 첫 번째 일요일'의 무료 개방으로 볼 수 있는 곳은 사실상 하나인 듯하다.
우리의 오늘 점심은 스테이크로 정했다. 피렌체는 스테이크가 유명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소의 품종이라고 한다. 키아니나(Chianina)라는 품종인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소 품종 중 하나로, 기원전 로마 시대부터 토스카나 지방에서 사육된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달오스떼(Trattoria Osteria Dall'Oste)의 한 지점을 방문했다. 샐러드 하나와 미디엄 레어로 익힌 T-bone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여자 둘이 먹기에 양이 많았다.
잠시 숙소에 들어 가 재정비를 하고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갔다. 이곳에서 아르노 강의 북쪽, 피렌체 대성당과 산타크로체 성당을 비롯해 피렌체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일몰을 보러도 많이 가는 곳이다. 또한 다비드상 원본을 못 본 사람은 여기에서도 복제품을 볼 수 있다.
천천히 걸어서도 내려올 수 있지만, 생각보다 굽이굽이 내려와야 해서 엄마가 걷기에는 힘들 거 같았다.
우리는 마침 시간 맞춰 온 시내버스를 타고 다시 아래로 이동했다.
피렌체 대성당은 1296년부터 140년에 걸쳐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도중에 건축 양식도 고딕에서 르네상스로 바뀌었다고 한다. 대성당 내부는 3만 명이 수용될 정도로 정말 엄청 크다. 그래서 대성당 둘레를 돌며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나는 측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왜냐하면 매끄러운 단면에 정교하고 일관적인 사각 도형이 이어지는데 마치 '프린팅'을 한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돌에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서로 다른 색의 대리석을 조각해 맞춘 것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하얀, 초록, 분홍 대리석을 채석해 블록 단위로 가공한 뒤 이어 붙인 것이다. 그 당시의 열정과 정성이 느껴져 시대를 초월한 감동을 주는 거 같다.
한편, 피렌체 어디에 서 있든 피렌체 대성당의 적갈색 돔이 보인다. 돔의 설계자 브루넬레스키는 당시 기술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거대한 돔을 비계 없이, 이중 돔 구조로 완성했다고 한다. 덕분에 오늘날 건축·공학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르네상스의 기술 혁신 사례라고 한다.
피렌체 대성당에서 이어지는 길에 레푸블리카 광장(Piazza della Repubblica)이 나온다. 넓은 광장 한 편에 회전목마가 있는 게 인상적이다. 해 질 무렵 이곳의 형형색색 불빛들이 아련하게 만들었다.
이탈리아 시가지의 길을 걷다 보면, 문득 옛 모습을 간직한 건물에 가게들이 들어서 있는 게 어색할 때가 있다. (아치형의 쇼윈도가 마구간, 말들의 주차장 역할을 하던 곳이라고 가이드에게 들었을 때 충격적이었다.) 우리나라로 보면 문화재나 다름없는 건물인데, 명품도 팔고 커피도 판다. 그 기묘한 조화에서 그들 나름의 전통을 보존하는 방식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