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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사진 넘치는 "완벽한 하루"

엄마와 이탈리아 여행-6 : 친퀘테레+피사 투어

by 세런 Seren

부모님을 모시고 해외에 갈 때, 가이드 투어를 하는 날은 유독 마음이 편하다.

그날의 나의 할 일은 오로지 미팅 장소에 늦지 않게 도착하면 끝나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시내, 근교 투어 가이드님들은 모두 유능했다. 핵심 위주의 명소 설명은 기본이요, 부모님들이 은근 궁금해하는 '현지 생활담'을 알려주고, 우리 가족의 인생 사진까지 아주 많이 찍어주셨다.


각설하고, 오늘은 "친퀘테레(Cinque Terre)와 피사" 가이드 투어를 신청한 날이다.

친퀘테레는 이탈리아 리구리아 주(Liguria)의 해안 절벽에 자리 잡은 다섯 개의 작은 마을을 의미한다. 따라서 피렌체 시내에서 출발할 경우, 라 스페치아(La Spezia)라는 도시의 기차역으로 이동해 기차를 타고 각 마을을 여행할 수 있다.


마나롤라 역을 나와서 보이는 풍경

우리가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마나롤라(Manarola)였다. 이곳은 친퀘테레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로 알려져 있고, 경사진 절벽에 세워진 파스텔톤 집들이 유명하다. 그래서 역을 나와 바다를 향해 볼 때만 해도, 내가 어떤 배경을 등지고 있었는지 전혀 감이 없었다.


포토스팟에서 본 전경

가이드님은 포토스팟인 산 중턱 야자수 근처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따뜻한 햇살, 깨끗한 바다, 푸르른 나무를 즐기며 굽이굽이 난 산책로를 걸어 올랐다.

가다 뒤를 돌아보면 파스텔톤 집들이 보인다. 하지만 역시 가이드님이 있는 곳에서 제대로 된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다.


마나롤라에서 모녀의 인생 사진

가이드님이 위치, 각도, 포즈를 모두 잡아주신 덕에 찍는 것마다 인생 사진이 나왔다. 특히, 엄마와 마주 보고 찍은 사진이 감격스러웠다.

한편, 다음 장소로 이동하면서 이곳을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 '루카'를 얘기해 주셨다.

엄청 재밌게 본 영화여서 딱 기억이 났다. 인어 루카가 육지로 나오면 지느러미가 다리가 되는데 두 다리로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던 언덕길이 바로 저 파스텔톤 집들이 있는 곳이었던 것이다.


여하간 첫 여행지부터 너무 만족스러워 다음 마을이 더 기대되었다.


베르나차 도시 풍경

기차를 타고 베르나차(Vernazza) 역에 도착했다.

유일하게 천연 항구를 가진 마을로 해변 바로 옆이 마을 광장이다. 우리는 배가 정박해 있는 항구 쪽으로 우선 이동했다.

간판 속 그림의 의미는?

가는 길에 만난 간판에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날 함께 투어에 참가한 세 팀 중 모녀 여행 팀이 하나 더 있었다.

이 모녀 여행 팀의 딸은 엄청 똘똘한 초등학생이었다. 한참 어린 친구인데 말도 잘하고, 의젓한 모습이 인상 깊었다.


여하간 우리가 다 같이 그림 간판 앞을 지날 때였다. 아이가 "물고기는 먹고, 눈으로 바다를 보라는 뜻인가 봐!"라고 말했다. 순간 아무 생각 없이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해서 움직이던 어른 7명이 벙찌었던 거 같다. 특히, 가이드님은 자기가 여태까지 수십 번 지나갔지만 한 번도 그림의 의미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역시 아이들의 순수함과 동심은 생각지 못한 순간에 새로운 걸 찾아내는 것 같다.

(간판 글씨는 가게 주인의 이름으로 추정된다!)


베르나차 언덕 위에서 점심

구경을 마치고, 가이드님이 추천해 준 식당으로 이동했다. 하이킹에 가까운 거리를 걸어 올라가야 하는 곳이었는데, 좀 힘들게 올라온 만큼 풍경이 끝내줬다. 가이드님이 식당 주인과 친한 덕에 우리는 절경이 내려다 보이는 야외 테라스 석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한편, 식사를 마친 뒤에는 식당 후문 쪽으로 나가 풍경 사진도 찍어주셨다.

베르나차 젤라또와 기념품 사기

가이드님이 추천해 주신 젤라또 가게에서 오늘의 젤라또를 먹었다. 그리고 남은 자유 시간 동안 산타 마르게리타 디 안티오키아 교회로 가는 언덕길도 올라가고, 가장 예쁜 자석을 찾기 위해 돌아다녔다.

그리고 이곳의 특산품이라 할 수 있는 레몬을 활용한 비누와 파스타면인 트로피에(Troffie)를 구매했다. 이 면은 짧고 꼬불꼬불한 모양이 특징인데, 마치 강원도의 올챙이국수 면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친퀘테레 마을 중 두 군데를 보고 우리는 다음 장소인 피사로 이동했다. 가이드님의 정확한 시간 계산 덕에 버리는 시간 없이 라 스페치아 역 행 기차를 타고 돌아가, 가이드님이 모는 차를 타고 피사에 도착했다.


피사의 상징, 피사의 사탑!

한편 피사는 나의 첫 이탈리아 여행 때 꼭 와보고 싶었고, 매번 피사의 사탑을 배경으로 찍은 유쾌한 사진들을 볼 때마다 가보지 못한 걸 후회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가기 전부터 아주 한 없이 보고, 원 없이 찍고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가이드님은 피사 원근법 사진에도 전문가였고, 우리 팀에서 피사의 사탑 인증 사진에 진심인 사람은 나뿐이라 가이드님이 내가 인스타에서 본 별별 사진들을 설명하면 찰떡같이 찍어 주셨다. (예컨대 밀고 싶다, 들고 싶다, 안고 싶다 이렇게 말만 하면 바로 구도를 잡아주셨다!)


피사의 사탑 원근법 사진 찍기 (난이도 순)

원근법 착시 사진을 찍으려면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가면 된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그냥 보기에는 왜 저러나 싶은 포즈들을 잡고 있어 찾기 쉽다.

한편 이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울타리 안쪽에 있는 '상단이 둥근기둥'을 올라가야 한다. 상단이 둥글어 일어서서 중심 잡기가 매우 어렵다.


엄마는 난이도 '최하'인 앉아서 피사의 사탑 넘어지지 않게 손 대 주기 포즈로 찍었다.

다음으로 나는 겁 없이 기둥을 올라갔다. 올라가는 것부터 생각보다 힘들었다.

우선 난이도 '중'인 두 발로 서서 한 손가락으로 넘어지지 않게 잡아주기 포즈를 취했다.

난이도 '최상'은 한 발로 서서 피사의 사탑 발로 차기 포즈이다. 이 때는 두 손까지 균형을 잡는 데 써야 한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다행히 사진을 건졌다. 미션을 클리어하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남은 자유 시간에 피사의 사탑 가까이까지 가서 구경했다.


피렌체 시내 현지 식당에서 먹은 파스타

다시 피사에서 차를 타고 피렌체 시내에 도착했다. 너무 알찬 시간을 보내게 해 준 가이드님에게 수차례 감사 인사를 하고, 함께한 팀들에게도 남은 시간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 되시라고 덕담을 나눈 뒤 헤어졌다.


한편, 오기 전 알베르토가 유튜브에서 소개한 파스타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바로 멧돼지로 만든 파스타인 빠파르델레 알 친기알레(Pappardelle al Cinghiale)와 스파게티 알 라마트리차나(Spaghetti all’Amatriciana)였다. 특히, 멧돼지로 만든 파스타가 기대되었는데 딱히 비린내도 나지 않고, 다진 소고기로 만드는 볼로네제 파스타를 먹는 거 같았다. 또한 다른 메뉴는 꾸덕한 치즈가 매력적이었다. 양은 여자 둘이 먹기에 많았지만, 맛은 너무 좋았다.


끝으로 베키오 다리를 따라 아르노 강의 야경을 보았다. 그렇게 이탈리아에서의 네 번째 밤이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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