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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베네치아? 아무튼 좋음

엄마와 이탈리아 여행-7 : 베네치아 본섬, 부라노 섬, 무라노 섬

by 세런 Seren

베니스는 영어 Venice를 소리 나는 그대로 옮긴 표현이고, 베네치아는 이탈리아어 Venezia를 우리말로 옮긴 표현이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둘은 같다. 한국인에게 소설 '베니스의 상인' 때문에 베니스가 익숙하지만, 이탈리아에 왔으니 '베네치아'라고 이하 통일한다.


베네치아는 바다 위에 세워진 해상 도시로, 중세부터 르네상스까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무역·문화 중심지였다. 도시 전체가 약 118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섬 사이를 150여 개의 운하와 400개 이상의 다리로 연결한다. 그래서 베네치아를 직접 보면 그저 놀랍다. 바다 한가운데에 이런 거대한 도시를 만들 생각을 한 것부터 말이다.


기차에서 먹은 호텔 조식

우리는 피렌체에서 당일치기로 베니스에 다녀오기로 계획했다. 피렌체 중앙역에서 베니스 산타루치아 (Venezia Santa Lucia) 역까지는 직행 열차가 있고, 2시간 20분 정도 소요된다.


아침 7시 40분 차를 타기 위해 호텔 조식을 알뜰하게 챙겨 나왔다. 종류별로 집은 빵과 사과, 요거트는 물론, 잼과 버터까지 펼쳐 놓으니 푸짐한 한 끼가 완성되었다.


엄마와 유럽 자유여행을 할 때 기차를 타고 가면서 식사를 해결할 때가 많았다. 식사 시간 때로 맞추면 효율적이기도 하고, 이것도 나름 재밌는 추억이 되는 것 같다. (엄마는 방학마다 어린 나와 동생을 데리고 서울행 무궁화호를 탔는데, 엄마가 객차 안 간식 카트에서 사준 것들을 먹던 추억처럼 말이다!)



한편, 우리가 가기로 한 날, 원래 흐리고 비 예보가 있었다. 하지만 오늘도 날씨 요정 덕에 화창한 베네치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작부터 기분이 좋았다!


본섬에서 부라노 섬으로 가는 바포레토 탑

베니스 산타루치아 역에 내려서 바로 바포페토(수상버스)를 하루 종일 무제한 탈 수 있는 1일권을 구매했다.

엄마는 첫 바포레토 탑승과 여태까지 본 이탈리아 풍경과 다른 베네치아만의 독특한 풍경에 감격한 듯했다.


사실 나는 습하고 짠 기가 베여있는 해변 지역을 여행지로 선호하지 않는다. 게다가 첫 베네치아 방문 때 좋은 기억이 없었다. (심야 버스를 탔는데 엉뚱한 곳에 내리고, 버스에서 하루 새고 도착한다는 걸 착각해서 노쇼로 호텔이 취소되어 있고, 길 가다 갑자기 갈매기한테 뺨을 맞는 등등 크고 작은 불운이 겹쳤다!) 하지만 엄마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역시 베네치아를 일정에 넣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포레토 타고 가면서 보는 풍경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본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부라노 섬, 무라노 섬, 본섬 순으로 여행 동선을 잡았다. 부라노 섬을 가기 위해선 환승이 필요한데, 우리는 본섬에서 출발해 포르텔로 포르토 노베(F.te Nove) 항구를 경유해 부라노 섬에 도착했다.


형형색색 파스텔톤 주택들과 레이스 공예로 유명한 부라노 섬

부라노(Burano) 섬은 형형색색 파스텔톤 주택들과 레이스 공예로 유명하다. 특히 알록달록한 집들은 가수 아이유의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한국인에게 많이 알려졌다. 여기서 인생 사진을 찍기 위해 우리는 이날 무채색 옷을 입고 갔다.


알록달록한 집들과 엄마

4월의 부라노는 외벽의 페인트 색뿐만 아니라, 싱싱하고 푸릇한 꽃 장식들 덕에 더 예뻤다. 찍는 곳마다 화보 같은 사진이 나왔다. 한편, 화창한 날씨 덕에 얇은 옷 하나로 돌아다니기 좋았다.


부라노 섬을 구석구석 탐방하다 보니 시간이 길어졌다. 우리는 유리 공예로 유명한 무라노 섬을 패스하고 본섬으로 가기로 했다.


베네치아 본섬 골목 투어

오기 전에 베네치아 출신으로 유명한 알베르토 유튜브를 보고 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베네치아에서는 일부러 길을 잃고, 발 닿는 대로 걸어 보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특정 목적지를 두지 않고 걸었다. 자전거, 자동차, 오토바이 등 바퀴와 도로가 하나도 없는 베네치아는 여유롭게 걸어 다니기 정말 좋은 곳이었다.


골목을 걷다 나오는 작은 가게들을 구경하다 보면 다음 골목으로 이어지는 다리와 작은 광장이 나온다. 건물 외관과 다리들은 비교적 관리가 잘 된 곳도 보이고, 세월의 흔적과 바다 바람에 칠 벗겨져진 곳들도 보인다.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걷다 보면 베네치아만의 멋을 느낄 수 있다.


아쿠아 알타 서점

한편, 베네치아에서 아쿠아 알토 서점(Libreria Acqua Alta)은 꼭 가볼 장소로 찍어두었다. 이 서점의 이름은 이탈리아어로 “높은 물”이라는 뜻으로, 베네치아에서 겨울과 초봄에 자주 발생하는 바닷물 범람 현상을 의미한다.


서점을 들어가면 중앙에 곤돌라가 자리한다. 아쿠아 알토 시기를 대비해 곤돌라에 책을 실어 두는 것이라고 한다. 아쉬운 건 워낙 관광객이 많다 보니 여유롭게 책을 살펴보기 어렵고, 통로를 따라 쭉 보고 빠르게 지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입구 반대편으로 나오면 낡은 책을 쌓아 만든 ‘책 계단’이 있다. 책 계단을 오르려고 줄 서 있는 관광객들이 워낙 많다 보니 멈추지 않고 이동하도록 직원이 아래에서 계속 올려 보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산 마르코 광장의 산 마르코 대성당

이어서 산 마르코 광장(Piazza San Marco)으로 갔다. 이곳은 나폴레옹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부른 장소다. 넓은 광장에서 산 마르코 대성당(Basilica di San Marco)이 먼저 눈에 띈다. 아치 위의 ‘네 마리 청동 말상’이 유명하다고 한다.


두칼레 궁전 외관과 탄식의 다리

이어서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 방향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최고 통치자(도제, Doge)의 궁전이자 정부청사, 법정, 감옥을 겸한 건물이라고 한다. 이 궁전은 엄청나게 크지만, 단조롭지 않고 너무 아름다웠다.


우선 1층은 뾰족한 아치가 연속되는 회랑이다. 2층은 화려한 석조 레이스 장식과 대리석 기둥으로 이어진 개방형 통로이다. 3층은 실내 공간 역할을 할 곳으로 이곳의 외벽은 연분홍 대리석과 흰색 대리석을 퍼즐처럼 이어 격자무늬를 이룬다. 연분홍 석조 덕에 궁전이 더 아름답고, 기품 있어 보이는 것 같다. 이밖에도 건물 끝쪽은 조각으로 매우 섬세하게 마무리했다. 외관만 봐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전을 따라 바다 방향으로 걷다 왼쪽으로 돌면 탄식의 다리(Ponte dei Sospiri)가 보인다. 두칼레 궁전과 감옥을 연결하는 작은 다리이다. 과거 죄수들이 두칼레 궁전에서 재판을 받고 감옥으로 이동하는 길에 탄식한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한편, 이곳과 얽힌 유명 인사로 카사노바(Casanova)가 있다. 오늘날 여성 편력이 있는 '바람둥이'를 일컫는 대명사로 알려져 있는 그는 베네치아 출신의 작가이자 외교관이었다. 그는 방탕한 생활과 신성 모독 사유로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으나, 극적으로 탈출하여 외국 망명까지 성공한 것으로 유명하다.


베네치아 산타루치아 역 앞에서

다시 수상보트를 타고 산타루치아 역 근처에서 하선했다. 우리는 리알토 다리를 지나 역까지 걸었다.

엄마와 다시 온 덕에 베네치아가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았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곤돌라와 건축물들을 보며 베네치아에 다시 올 날을 기약했다. 또한 다음에 우리가 다시 올 날까지, 이 도시의 아름다움과 멋이 지켜지길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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