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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보내는 '로마의 휴일'

엄마와 이탈리아 여행-9 : 트레비 분수,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

by 세런 Seren

밀라노, 피렌체를 거쳐 우리가 숙박을 하는 마지막 여행지는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였다.

전날 밤, 피렌체 중앙역에서 저녁 8시쯤 기차를 타고 1시간 반 정도 달려 로마에 도착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기차 이동할 때 제일 우려하던 일이 일어났다. 우리가 타야 할 기차가 출발 30분 전인데 전광판에 뜨지도 못한 상태였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기차가 모두 연착된 상황이었다. Italo 역무실로 가, 앞 기차로 탈 수 있냐고 문의했지만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저 '제발 오기만 해라'는 심정으로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했다. 다행히 우리 기차가 1시간쯤 뒤에 왔다. 밤 10시 넘어 로마 테르미니(Roma Termini) 역에 도착했다. 역 근처 호텔로 이동하는 길은 밝고 활기찬 분위기였다. 심지어 그동안 여행하면서 길거리에서 듣지 못한 한국어도 간간이 들려 다들 여기 있었구나 싶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아침부터 토스카나 투어를 하고, 우여곡절 끝에 기차를 타느라 지친 우리는 체크인 후 기절하듯 잠들었다.


일출을 트레비 분수와 함께! 물이 고여 있어서 난간에 앉을 때는 조심해야 한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우리는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로 가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트레비 분수는 오후부터 밤에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제대로 인증 사진을 찍으려면 아침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근처 정류장에 내려 골목길을 걸어갔다. 2019년도에 같이 공부했던 언니와 둘이 로마 여행할 때 가본 게 저장되어 있어서 구글 지도에 '5년 전 방문했던 장소'라고 떴다. 엄마와 팔짱 끼고 트레비 분수를 다시 보러 가는 게 꿈만 같았다. 도착하니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트레비 분수에 동전 던지기

우리는 트레비 분수에 동전 던지기 인증 영상도 찍었다. 참고로 오후에는 사람들이 몰려 있어 동전을 던지기도 쉽지 않다.

던지는 동전 개수에 따라 이루어지는 게 달라진다고 한다. 동전 1개를 던지면 로마에 다시 돌아오고, 2개는 사랑을 찾는다고 하고, 3개는 이혼하게 된다고 한다. 1개와 2개는 이해가 되는데 3개 던질 때의 의미가 생소하게 느껴진다. 찾아보니 가톨릭 문화권에서는 이혼이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쉽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것이고, 속 뜻은 '원하는 일이 이루어진다'는 의미라고 한다. 오른손으로 동전을 잡고 왼쪽 어깨너머로 분수에 던져야 한다는 방법까지 지켜 우리는 3개씩 던져주었다.


스페인 계단과 스페인 광장

트레비 분수에서 스페인 광장으로 이동했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햅번이 젤라또를 먹던 스페인 계단이 나왔다. 5년 전에 이 계단에 앉아 로마 3대 티라미수 가게인 폼피(Pompi)의 티라미수를 먹은 추억이 떠올랐다. 스페인 대사관이 있어 스페인 광장이라 불리는 거리를 엄마가 씩씩하게 걸어갔다.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

엄마가 지난 영국 여행 때 월리스 컬렉션(The Wallace Collection)을 좋아했던 걸 참고해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Galleria Doria Pamphilj)을 여행 계획에 넣었다. 이곳 역시 월리스 컬렉션처럼 귀족 저택을 미술관으로 개방한 곳이기 때문이다. 들어가자마자 황금빛으로 번쩍번쩍하고, 샹들리에까지 달려 있어 그냥 귀족 저택도 아니고, 왕궁에 온 기분이 들었다.


교황 인노첸시오 10세 초상화와 작품들

팜필리 가문은 17세기에 교황 인노첸시오 10세를 배출해 부와 권세를 누렸던 집안이라고 한다.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의 초상화가 걸린 방은 마치 왕이 신하를 접견하는 공간 같았다.

복도 끝에 위치한 조각품 하나가 눈에 띄었다. 생생한 표정과 근육, 옷감을 묘사한 이 작품은 천사가 인간을 보호하고 구원으로 이끄는 것을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한편, 복도마다 천장화도 대단했다. 천정을 하늘처럼 떠받친 그리스 신화의 아틀라스(Atlas)가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있다. (당대 화가들이 아틀라스 역할 같은 데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의 얼굴을 모델로 썼다는데, 틈새에 다리도 못 펴고 끼여서 힘에 부친 지 번쩍 들지도 못하고 어깨에 천정을 얹어 놓은 듯한 모습으로 그려진 분은 얼마나 미움받았던 건지 좀 불쌍했다.)


궁전같은 미술관 내 집 안방처럼 구경하기

바티칸 미술관이나 보르게세 미술관처럼 유명한 곳은 아니지만, 이런 귀족 저택을 내 집처럼 거닐며 조용히 구경할 수 있어 좋았다. 미술관을 나와 시내를 걸었다. 앞서 다녀온 밀라노, 피렌체보다 쨍쨍한 햇빛과 어딜 가나 많은 관광객들로 지치기 시작했다. 로마 시내 야경 도보투어를 위해 호텔에서 잠시 정비하기로 했다.


콜로세움에서 시작해서 로마 야경 맛집 천사의 성으로

야경 도보투어를 맡아주신 가이드님과 콜로세움 사진 스팟에서 만났다. 저녁 7시 반에 미팅장소에서 만나 콜로세움에 대한 설명을 듣는 사이 금방 해가 지고, 황금빛 조명이 켜졌다. 엄마는 그동안 말로만 듣고, TV에서 봤던 콜로세움을 직접 본 게 감격적이라 했다. 이어서 버스를 타고 천사의 성으로 이동했다.


천사의 성(Castel Sant’Angelo, 산탄젤로 성)은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가 이곳 근처를 지나던 중 성곽 위에서 대천사 미카엘(Archangel Michael)을 본 뒤 페스트가 종식되어 이름 붙여진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꼭대기에는 대천사 미카엘 상이 세워져 있다.


로마의 티라미수 3대 맛집 중 하나 Two Sizes

나보나 광장 근처로 와 로마 3대 티라미수 가게 중 하나인 「Two Sizes」에서 가이드님이 티라미수를 인당 하나씩 사주셨다. 이 가게는 이름 그대로 두 가지 사이즈(Small, Large)로 티라미수를 판매하는데 투명한 컵에 층이 보이도록 담아주는 게 특징이다. 우리는 기본 맛(클래식)과 피스타치오를 하나씩 골랐다. 소매치기를 피해 골목에 옹기종기 모여 티라미수를 먹은 뒤 잔 로렌초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가 1600년대 중반에 제작한 콰트로 피우미 분수(Fontana dei Quattro Fiumi, 네 강의 분수)로 이동했다.


나일강을 의인화한 조각상

이 분수는 이름 그대로 세계 4대 대륙을 대표하는 강을 의인화한 조각이라고 한다. 각각 나일강(아프리카), 갠지스강(아시아), 도나우강(유럽), 라플라타강(아메리카)이라고 한다.


이 조각과 관련해 잘못 알려진 이야기가 있다. 얼굴을 천으로 가린 포즈의 조각에 대해 맞은 편의 산타녜세 인 아고네 성당(Chiesa di Sant'Agnese in Agone)이 무너질까 봐 얼굴을 가리고 손을 들어 막는 포즈라는 이야기다. (이른바 '안 보련다' 포즈) 이는 교회 설립자인 프란체스코 보로미니(Francesco Borromini)와 분수 설계자 베르니니가 경쟁 관계여서 지어진 이야기라고 한다. 특히 분수가 완공된 후, 교회를 지었기 때문에 조각의 포즈가 교회 때문이라는 건 시기적으로도 맞지 않다.

(나일강 조각상은 “인류에게 아직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재건한지 2000년도 더 된 판테온 앞

판테온(Pantheon)은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이란 뜻이다. 현존 건물은 기원전에 지어진 건물을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2세기 초에 재건한 것이라고 하는데 무려 2천 년도 더 전에 이런 건물을 지었는지 감탄만 나온다. 또한 이런 문화유산이 도시 한복판에 아무 울타리나 경비도 없이 서 있는 것도 신기했다.


트레비 분수의 조각 감상하기

투어의 마지막 장소는 오늘 우리 모녀의 로마 여행 출발지였던 '트레비 분수'였다. 우리는 아침과 다르게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한 인파 속에서 설명을 들었다. 트레비 분수는 사실 삼거리 분수라는 의미이고, 조각상들의 의미와 가짜 창문에 대해 알게 되었다. 또한 분수 앞에 자리 잡은 베네통 옷가게 2층으로 올라가 트레비 분수 전체를 찍는 팁도 들었다. 트레비 분수를 마지막까지 눈에 담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엄마와 나의 완벽한 로마의 휴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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