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이탈리아 여행-11 : 베네치아 광장, 트라야누스 광장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All roads lead to Rome)!
이 말은 로마가 기원전 4세기경부터 제국 전역에 도로망을 건설하고,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밀리아리움 아우레움(Milliarium Aureum)이라는 황금 마일 표석을 세운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우리는 로마를 거쳐 오늘 한국으로 간다.
아침 일찍 체크아웃하고 산책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베네치아 광장 앞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비(Monumento a Vittorio Emanuele II)로 향했다. 이 기념비는 이탈리아 통일을 이룬 초대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를 기리기 위해 건립된 것이라고 한다.
로마는 길 가다 보면 곳곳이 유적지다. 사실 1세기 후반에 지어진 콜로세움도 거대한 유적지나 다름없다. (특히 내부를 들어가 보면 말이다!)
우리는 트라야누스 원주(Colonna Traiana)를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이동했다. 이 기둥 전체에 나선형 부조가 새겨져 있는데, 다키아 전쟁의 장면들이 200m가 넘는 띠 형태로 그려져 있다. 기둥과 사진을 찍은 엄마가 유리벽 너머 아래를 신기하게 내려다봤다. 아래는 2세기 경 로마에서 법정, 행정 역할을 한 바실리카 울피아(Basilica Ulpia)의 유적지였다. 당시에 저런 돌기둥을 세운 걸 보면 오늘날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비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베네치아 광장에서 테르미니 역 근처에 있는 호텔로 걸어가는 길이었다. 엄마가 건물이 웅장한 게 멋있다며 도로변으로 가 포즈를 취했다. 알고 보니 이탈리아 중앙은행(Palazzo Koch, Banca d’Italia) 건물이었다. 그리고 이 길은 비아 나치오날레(Via Nazionale), '국가의 거리'라는 뜻으로, 19세기 후반에 이탈리아가 통일되고 로마가 수도가 된 뒤에 만들어진 길이라고 했다.
고대 로마 제국의 유적지를 보다 이 길로 들어서니 기분이 묘했다. 현재의 이탈리아를 살아가는 이들이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지 않고 새롭게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것 같았다. (관광객들이 많아 지칠 때, 조상 잘 만난 덕에 편하게 산다고 한 거 미안!)
우리는 이탈리아에서의 마지막을 기념하기 위해 에스프레소에 도전했다. 잘 모르겠고, 썼다. 도전한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한편, 과하게 친절한 이탈리아 서버 아저씨와 너무 여유를 부린 탓에 공항까지 가는 시간이 빠듯하게 되었다. 그러다 결국 사고가 났다. 엄마 휴대폰이 이탈리아 카페의 대리석 바닥으로 낙하해 액정이 나갔다. 절망스러웠지만, 모든 게 저장되어 있는 내 휴대폰이 사망하지 않고, 오늘이 우리 여행의 마지막 날이란 것에 위안을 삼았다. 여하간 액땜한 덕에 늦지 않게 공항에 도착했다.
한편, 젤라또 본고장에서 마지막 젤라또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게이트로 가는 길에 벤키(Venchi)가 보였다. 원래 초콜릿 전문점으로 시작한 가게라 초코맛을 골랐다. 이탈리아 국기가 그려진 비행기와 인증 사진을 찍고 음미했다. 오는 편은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해서 인천에 도착했다.
그렇게 2024년, 엄마의 환갑을 기념해서 시작된 이탈리아 여행을 잘 마무리했다. 2023년 영국에 이어, 우리 모녀의 소중한 추억이 더 많이 쌓여서 좋았다. 특히, 가는 곳마다 남긴 인생 사진들을 보며 좋았던 기억을 오래오래 공유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리고 이탈리아어를 1도 모르는 두려움과 첫 방문 때의 트라우마에도 불구하고, 엄마를 데리고 이탈리아에 도전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우리 엄마 나이대에 유럽 여행하면 '이태리'였다. 도시와 자연, 가는 곳마다 문화유산이나 다름없는 고전미와 현대적인 명품까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이태리' 덕에 엄마가 더 만족한 것 같았다.
한편, 두 번째 엄마와의 여행을 만족스럽게 마치고 나니, 부모님 모시고 가는 자유여행에 대한 자신감이 더 생겼다. (물론 소매치기는 조심해야 한다. 우리도 버스에서 당할 뻔했다. 엄마와 내가 철통 수비한 덕에 소매치기 타깃이 바뀌고, 다른 사람의 지갑을 훔치려다 미수에 그친 걸 실시간으로 목격했다!)
이제 '아빠도' 함께하는 여행을 준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