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이탈리아 여행-10 : 바티칸 박물관, 콜로세움
이탈리아 안에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가 있다. 로마 시내 한가운데 위치하며, 교황이 주권을 행사하는 인구 800명 정도의 국가, 바티칸 시국(Vatican City State)이다. 이곳은 전 세계 12억 명 이상의 가톨릭 신자들의 성지이자, 교황의 국제적 위상을 고려할 때, '가장 작지만 가장 영향력 있는 나라'라고 불린다.
아침 일찍 지하철을 타고 바티칸 시국에 위치한 바티칸 박물관(Musei Vaticani) 투어 미팅장소로 이동했다. 우리는 개장 1시간 전부터 줄을 섰다. 앉거나 기댈 곳도 없고 무엇보다 해가 들지 않는 음지라 너무 추웠다. 전날 낮 시간이 더웠던 탓에 얇은 긴팔 하나 입고 나온 게 패착이었다. 여하간 가이드님의 시스티나 성당(Sistine Chapel) 내부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사전 설명을 엄마와 꼭 붙어 들으며 버텼다. (이곳은 사진 촬영이나 가이드 투어가 금지되어 있다!)
바티칸 박물관에 입장해서 처음 간 곳은 피나코테카(Pinacoteca Vaticana, 바티칸 회화관)였다. 주요 작품 위주로 가이드님이 설명해 주셨다.
제단화로 쓰인 종교화를 쭉 보다, 르네상스 시기의 프레스코화가 눈에 띄었다. 금발의 천사가 악기를 연주하는 그림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다음으로 작품에만 조명을 비춘 라파엘로(Raphael) 방에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대형화 세 점은 라파엘로가 그린 작품이었다.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하늘 위에 앉아 있는 성모자와 성인들(Madonna with Saints), 라파엘로의 마지막 작품인 그리스도의 변용(The Transfiguration), 성모 마리아가 천상에서 그리스도로부터 왕관을 받는 장면을 묘사한 성모의 대관식(The Coronation of the Virgin)이었다. 이렇게 큰 그림에 다채로운 물감을 쓴 게 놀라웠다.
반대편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을 원작으로 한 직물 태피스트리가 전시되어 있었다. 밀라노에서 원작을 보지 못하고 왔지만, 익숙한 그림이라 반가웠다.
팔각정원 안뜰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라오콘과 그의 두 아들이 바다뱀에 휘감겨 죽음을 맞는 장면을 묘사한 라오콘 군상(Laocoön and His Sons) 조각을 보았다. 어릴 때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책에서 본 작품을 실제로 보니 신기했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감동을 받았는지 작품을 쉽게 지나치지 못했다.
원형의 방은 로마 판테온(Pantheon)을 본떠 만든 돔 천장이 특징인 곳이다. 이곳의 조각상들은 로마 황제와 신화 속 인물들이라고 한다. 조각상들의 스케일이 남다르다.
5년 전에 왔을 때도 느꼈지만, 라파엘로의 방(Stanze di Raffaello)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아테네 학당(The School of Athens) 작품을 배경으로 인증 사진을 찍고 있었다. 재방문이지만 엄마와 온 기념으로 또 찍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이상적인 학문과 진리를 논하는 모습을 그린 이 작품에는 50여 명의 철학자·과학자·수학자·예술가가 그려져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하늘을 가리켜 이상 세계를 강조하는 플라톤과 손바닥을 아래로 내려 현실세계를 강조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중앙에 그려져 있다. 한편, 오른쪽 가장자리에 검은 모자를 쓰고 관객을 쳐다보는 인물은 라파엘로 본인이라고 한다.
투어는 성 베드로 대성당(St. Peter’s Basilica) 앞에서 종료되었다. 우리는 성당 내부만 보고 나왔다.
돔 꼭대기(쿠폴라, Cupola)로 올라가면 성 베드로 광장(St. Peter’s Square, Piazza San Pietro)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열쇠 모양의 광장은 예수 그리스도가 사도 베드로에게 준 천국의 열쇠를 상징한다.
한편, 엘리베이터를 타고도 계단을 무려 320개를 올라가야 하고, 내려올 때는 무조건 계단이다 보니 엄마가 올라가기 무리일 거 같아 포기했다.
대신 기념품 가게로 가서 우리 주변의 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성수와 엽서를 선물로 샀다.
나오는 길에 원색의 노랑·빨강·파랑 줄무늬 의상으로 시선 강탈하는 교황청 스위스 근위대가 보였다.
성 베드로 대성당 외벽에는 성인들의 동상이 있다. 이곳에 한국 최초의 가톨릭 사제이자 순교자인 김대건 신부님의 동상이 2013년에 세워졌다. 2019년에 왔을 때는 몰라서 못 보고 갔는데, 이번에는 꼭 방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821년에 태어나, 25세의 나이로 순교하신 김대건 신부님은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다. 동상을 올려다보면서 우리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지만 경건해졌고, 무려 200여 년 전에 국위 선양하신 신부님이 자랑스러웠다.
바티칸 시티를 벗어나 콜로세움으로 향했다. 전날 야경 도보 투어 때 봤지만, 낮에 다시 가서 보고 싶었다. 역시 다시 봐도 좋았다. 가이드님이 알려주신 포토 스팟에서 우리 둘이 번갈아 가며 인생 사진을 찍었다. 아침에는 정말 추웠는데, 한낮의 로마는 더웠다.
트레비 분수로 가는 길에 점심을 먹었다. 1906년에 열었다고 간판에 표기되어 있는 걸 봐서 거의 120년이나 된 식당이었다. 식당 손님들이나 음식에서 현지인 맛집 포스가 느껴졌다. 다음에 로마에 오면 또 오고 싶은 식당이었다.
전날 가이드님의 팁 덕분에 트레비 분수 맞은 편의 베네통 옷가게 2층으로 갔다. (살짝 민망해서 옷 구경하는 척도 하면서!) 우리말고도 여러 외국인이 2층 창가에 붙어 트레비 분수 전경을 찍고 있었다. 기다렸다가 찍었는데 분수 바로 앞에서 보는 것과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리고 앞에 발 디딜 틈 없이 몰려있는 관광객들 역시 절경이었다.
아침부터 부지런하게 알찬 하루를 보내고, 로마에서의 마지막 밤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