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르네상스의 발상지, 피렌체에서 보내는 하루

엄마와 이탈리아 여행-4 : 베키오 궁, 시뇨리아 광장, 우피치 미술관

by 세런 Seren

피렌체(Firenze)는 이탈리아 중부에 위치한 도시로, 영어로는 플로렌스(Florence)라고 불린다.

문자 그대로는 "꽃이 피는 곳", "번성하는 도시"라는 뜻이며, 예술·건축·철학이 꽃피었던 르네상스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전날 저녁 밀라노에서 기차를 타고, 피렌체 중앙역인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Firenze Santa Maria Novella) 역에 도착하니 밤이었다. 내려서는 역 근처 호텔까지 도보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역 주변에 흑인들이 리지어 있었다. 혹시 취객이 시비를 걸거나 소매치기를 당까봐 경계 모드를 발동했다. 다행히 역 근처에 무장한 경찰들도 많이 있어 통제가 되는 듯 했다.

여하튼 역 내 지하도를 이용하라는 표시가 구글 지도에 분명하지 않아, 밤 중에 잠깐 길을 헤맸지만 무사히 호텔에 도착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우피치 미술관 투어를 앞두고 미리 주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곳의 아침은 밀라노와는 비교가 안 되게 쌀쌀했다. 나는 도톰한 긴팔 니트 하나를 입고 나갔는데 너무 추웠다. 이미 베키오 궁전(Palazzo Vecchio) 근처까지 왔고, 숙소를 갔다 오면 미팅 시간에 늦을 거 같았다. 결국, 우리는 껌딱지처럼 붙어 서로의 체온으로 버텼다.


베키오 궁 앞, 다비드 복제상과 헤라클레스 조각상을 배경으로

베키오 궁전 근처에는 유명한 조각상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다비드 복제상이 있다. 미대를 준비했던 엄마는 미술학원에서 그렸던 다비드 상을 전신으로 만나 반가워 보였다. 반면, 나는 책에서만 보던 조각상이 너무 커서 놀랐다.

한편, 여기에 있는 다비드 조각상은 복제물이고 진품은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다.


베키오 궁전 앞 시뇨리아 광장의 조각상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발상지답게 예술 작품이 넘쳤다. 특히 베키오 궁전 앞 시뇨리아 광장에는 다비드 복제상 외에도 큰 조각들로 가득 차 있다. 우선 궁전 왼쪽을 보면 넵투누스 분수(Fountain of Neptune)가 있다. 이 분수는 코지모 1세가 대공국 체제를 확립하면서 정치적 정당성과 위엄을 보여주기 위해 제작되었다. 특히, 내륙 도시인 피렌체가 '피사의 항구 개척'을 통해 지중해로 진출하는 관문을 확보했다는 점을 기념하고자, 바다의 신 넵투누스(로마 신화의 포세이돈)를 상징물로 선택한 것이라고 한다.


측에는 로자 데이 란치(Loggia dei Lanzi)라는 아치형 회랑이 있는데, 이곳은 고대·르네상스 조각들을 전시하는 노천 미술관의 역할을 한다.

청동, 대리석 조각 작품들이 '무더기'로 있는데 그중 ‘메두사의 머리를 든 페르세우스’(Perseus with the Head of Medusa) 청동상이 압도적이었다. 초등학교 때 한창 유행했던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잊히지 않는 이야기 중 하나가 아테네의 도움을 받아 메두사를 잡는 페르세우스 이야기인데 당시 이탈리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한편, 이 동상을 가까이서 올려다보면 기가 빨릴 정도로 섬뜩하다. 청동이 주는 차가움도 있지만, 잘린 메두사의 목과 이를 베어낸 칼의 날카로움이 예사롭지 않다.


우피치 미술관 투어 미팅장소 가는 길에 만난 멧돼지 동상

구경을 마치고 우피치 미술관 투어 미팅장소로 이동했다. 가는 길에 신시장(Mercato Nuovo) 근처의 멧돼지 동상(Fontana del Porcellino)을 들렀다. 이 멧돼지의 코를 만지면 '다시 피렌체로 돌아온다'는 행운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청동상에서 코 부분이 반질반질하게 닳아 있었다.


한편, 우리가 방문한 날은 피렌체의 미술관들을 무료 입장할 수 있는 '매월 첫 번째 주의 일요일'이었다.

그래서 입장 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왔지만, 우리보다 더 빨리 온 팀들도 있고, 입장할 때쯤 되니 줄이 엄청 길어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왼쪽은 성모 마리아의 수태고지, 오른쪽은 동방 박사의 경배

1시간 가까이 추위에 떨면서 기다리다 미술관에 들어갔다. 엄마와 나는 미술관 가이드 투어가 처음이었는데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우리 모녀처럼 무교거나 성경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으면, 그냥 스쳐 지나가기 쉬운 종교화들을 비롯해, 초상화에서는 그 인물과 당시 이탈리아의 역사까지 쉽게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이 날은 종교화의 인물들이 갖는 성상(아이콘)에 대상식을 쌓을 수 있었다. 예컨대 성모 마리아는 늘 파란 망토를 두르고 주변에 백합이 그려져 있으며, 베드로 주변에는 열쇠가 그려진다고 한다. 이런 기본적인 걸 알고 그림을 보니 더 재미있었다. (특히, 복습 차원에서 가이드가 관람 중간중간 퀴즈를 낼 때 답을 맞추는 재미가 있다!)


한편, 소매치기로 악명 높은 이탈리아 답게, 1400년대에 그려진 '동방박사의 경배'라는 작품에도 발찌를 훔치는 도둑이 등장한다. 가이드가 이 작품의 배경 설명과 함께, 숨은 그림 찾기 하듯, 풍속화적 디테일을 짚어주어서 좋았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봄>

우피치 미술관에서 인기 많은 작품 중 하나인 산드로 보티첼리의 <봄>을 봤다. 책에서 봤던 작품이었는데, 벽 한 면을 차지하는 큰 그림이어서 신기했다.

이 그림 우측 편에 대한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꼬마 유령 캐스퍼처럼 그려진 서풍의 신 제피로스가 시스루 같은 옷을 입고 있는 봄의 전령 '클로리스(Chloris)'를 꽃무늬 원피스 입고 꽃을 뿌리는 여신 '플로라(Flora)'로 변신시키는 장면이라고 했다. (클로리스의 입에서 이파리 같은 게 나오는 묘사도 하나의 증거다.)

덕분에 시스루의 '클로리스'와 언뜻 부자연스럽게 주인공 같아 보이는 '플로라'가 사실 동일인임을 알았다. 그리고 보티첼리가 그 당시 기준으로 시간의 흐름이 담긴 영상을 한 장의 그림에 담아낸 것 같아 재미있었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산드로 보티첼리의 또 다른 작품 <비너스의 탄생> 앞에는 사람이 더 많이 몰려 있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비너스 탄생 부분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이 그림이 삽화로 실려 있었는데 직접 보니 감격스러웠다.

앞서 본 보티첼리의 <봄>보다 등장 인물도 적고, 숨겨진 스토리가 있는 건 아니지만,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가 탄생하는 장면을 묘사하기 위한 '밝고 따뜻한 분위기'가 직관적으로 와닿아 좋았다. 그 결과, 관람 동선 끝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 <비너스의 탄생>이 그려진 엽서와 볼펜을 샀다.


베키오 다리를 건너기 전 비둘기와 교감 중인 엄마와 아르노 강을 바라보는 딸

미술관을 나왔다. 아침과 다르게 해가 들어 더이상 춥지 않았다.

우리는 베키오 다리(Ponte Vecchio)를 건너 피티 궁전의 팔라티나 미술관을 가기로 했다.

베키오 다리는 다리 위에 상점과 통로가 있는 세계적으로 유일한 구조물 중 하나라고 한다. 원래는 정육점, 어시장, 가죽상이 있었지만, 악취와 환경 문제 때문에 메디치 가문이 16세기경 모든 식료품 상인을 쫓아내고 금은세공업자만 허용했는데 그 전통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덕분에 강 건너편까지 줄지어 이어지는 금은방들을 구경하며 천천히 걸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