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이탈리아 여행-2 : 브레라 미술관
브레라 미술관(Pinacoteca di Brera)으로 걸어가는 골목길이 너무 예뻤다. 푸른 하늘 아래 다채롭게 칠한 건물들과 자갈 바닥이 잘 어울려 발길을 멈추고 사진을 찍었다. 내가 찍은 사진을 보던 엄마가 앞으로 달려 나가 포즈를 취했다. 패션의 도시 밀라노에 걸맞은 사진이 나왔다.
브레라 미술관은 한국에서 미리 예약을 하고 갔다. 이곳은 1809년, 나폴레옹의 명령으로 만들어진 미술관인데 14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이탈리아 회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엄마는 넓은 벽면 하나를 채운 종교화를 바라보며 잠시 쉬었다. 영국에서도 느꼈지만, 이곳 역시 관람 중 쉴 수 있는 의자가 있어 좋았다. 작품이 많은 곳답게 여유와 배려가 느껴진다.
한편, 직전에 엄마와 다녀온 영국의 미술관들과 비교했을 때 종교화가 확실히 많다는 인상을 받았다.
관람 동선에 따라 이동하다 통로에 딸린 작은 방 같은 공간에서 복원 작업을 하는 걸 보았다. 공개된 장소에서 작업을 하는 게 인상 깊었다. 만약 내가 화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면, 이런 작업을 보고 더 동기부여가 되었을 거 같다.
이탈리아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프란체스코 하이에츠의 La preghiera del mattino (Morning Prayer), 기도하는 여인을 그린 그림을 보았다. 눈길을 끈 건 화환과 손 묘사였다. 사진으로 찍은 듯이 다채로운 꽃과 손의 근육, 빛을 묘사해 낸 게 인상 깊어 그 부분만 확대해서 찍게 되었다.
한편, 중앙홀 같은 곳에 있는 거대한 동상 역시 눈길을 끌었다. 이 조각품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전쟁의 신 마르스(Mars)에 나폴레옹을 비유한 것이라고 한다.
나폴레옹을 평화를 가져오는 정복자로 이상화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나폴레옹은 본인이 나체인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 같다. (워낙 동상이 커서 위를 올려다볼 수밖에 없는데, 중간의 나뭇잎이 좀 부담스럽긴 하다.) 그 결과, 원래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전시를 위해 만든 거였지만, 밀라노로 보내져 여기 있는 거라고 한다.
여하간 조각상 하단에 적혀 있는 라틴어(NIL MAIUS GENERATUR IPSO)는 "그 자신보다 더 위대한 것은 태어날 수 없다"라는 의미로 엄청난 아부가 아닐 수 없다.
브레라 미술관에서 꼭 봐야 할 회화를 하나 꼽자면, 프란체스코 하이에츠의 Il Bacio (The Kiss) / 입맞춤이 라고 생각한다. 배경지식 없이 감상하자면, 얼굴 각도와 손의 위치, 남자가 한 발을 계단 위에 올리고 있는 묘사에서, 어떤 사연이 있어 어쩔 수 없이 이별을 앞둔 연인을 그린 것 같다.
하지만 이 작품은 사실 이탈리아 통일 운동(리소르지멘토, Risorgimento)의 열망과 민족주의적 상징을 담아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1859년 사르데냐 왕국과 프랑스가 오스트리아와 전쟁(제2차 이탈리아 독립전쟁)을 벌이던 해에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성의 갈색 망토와 붉은색 바지는 이탈리아를, 여성의 파란 드레스는 프랑스를 상징하고, 남녀의 키스는 두 나라의 동맹으로 해석된다.
한편 The Kiss가 그려진 벽면에는 루이지 부시의 Il Mattino dopo il Ballo (The Morning After the Ball)라는 작품이 걸려 있는데 그림 왼편에서 The Kiss가 그려진 걸 볼 수 있다.
이 그림은 무도회 다음 날 아침, 젊은 여성이 피곤하고 무기력한 모습으로 침대에 앉아 있는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라고 한다. The Kiss가 그려진 이유는 이 여성이 정열적인 사랑을 열망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관을 나와 다시 밀라노 거리를 걸었다. 엄마는 영국에는 없는 전차를 보고 신기해했다. 그리고 영국 못지않은 엄청난 건물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우리는 이탈리아에서의 첫 끼로 피자를 골랐다. 빨간 토마토소스 위에 하얀 크림치즈와 바질 잎이 올라 간 마르게리따를 골랐다. 신기한 건 한국과 다르게 컷팅이 전혀 되지 않은 채로 나온다는 점이다. 이탈리아 여행 후기 중에 이렇게 피자를 내주는 게 인종 차별이 아니라는 글을 여럿 보았기에 당황하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 옆 자리의 외국인 가족도 이런 피자를 열심히 나이프로 썰어 먹는 중이었다.) 한국에서도 종종 화덕 피자를 먹지만, 현지에서 먹으니 더 맛있는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