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에서의 마지막 밤

2024년 겨울, 유럽에서 부모님과 함께한 기억의 정리

by 세런 Seren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2시간 반 정도 버스를 타고 프라하에 도착했다. 아직 밝은 프라하의 모습을 보니 뿌듯했다. 바꾸기 전 원래 표로 왔으면 아마 19시쯤 도착해서 깜깜한 밤이었을 거다. 체스키 크룸로프가 크지 않아서 3시간 남짓한 시간을 알차게 보고 와서 아쉽지 않았다. (체스키 크룸로프에 도착할 때쯤 표를 바꿔서, 우리는 사실 거의 뛰어다니듯이 관광했다.)


프라하 메인 크리스마스 마켓의 2층 전망대

우선 구시가지 광장(Staroměstskénáměstí)으로 갔다. 크리스마스가 지난 후 첫 주말인 토요일이라 그런지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그래도 낮 시간에만 개방되는 2층 전망대에 올라가 볼 수 있었다.


체코에서의 마지막 굴뚝빵 트르들로 먹기

마켓을 구경하다 굴뚝빵 트르들로(Trdelník)를 먹기로 했다. 숯불 위에 반죽으로 감싼 돌 막대가 빙글빙글 돌아가며 구워지는 걸 보니 먹고 싶었다. 체코에서 첫날 가게에서 사 먹은 트르들로보다 누텔라 크림이 더 발려 있어서 맛있었다.

천문시계 앞에서 치열한 눈치싸움이 벌어진다

광장을 나와 천문시계(Pražský orloj)로 갔다. 천문시계를 둘러싸고 사람들이 몰려 있다. 그래서 눈치껏 '내 차례다!'하고 들어가 사진을 얼른 찍어야 한다. (일단 자리를 잡으면 본인 차례를 기다리며 배려해 준다. 하지만 '에라 모르겠다. 남이 같이 찍혀도 상관없다!'는 마인드로 끼어 들어오는 외국인도 있긴 하다.) 다행히 엄마 아빠 독사진을 하나씩 건질 수 있었다.


화약탑 앞에서 인생사진 찍기, 맞은 편에 서있는 올드카

어느새 해가 저물었다. 우리는 화약탑(Prašná brána)으로 갔다. 화약탑부터 구시가 광장까지 이어지는 길은 왕의 길(Královská cesta)이라 불린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의 가로등은 고풍스러운 가스등 형태라고 한다. 우리는 첫날 야경투어 가이드님이 알려주신 구도로 가로등과 화약탑이 같이 나오도록 사진을 찍었다.


프라하 중앙역 구 역사의 대합실

다음날 탈 공항버스표를 미리 예매하기 위해 프라하 중앙역으로 갔다. 인포메이션 센터 같은 곳에서 표를 산 뒤, 프라하 중앙역의 숨은 공간, 구 역사 건물에 있는 대합실을 보러 갔다. 파스텔톤의 공간을 보니 아늑하고 편안했다. 아치 문 위로 두 사람이 금색 원판에 월계수 덩굴을 두르는 모습을 묘사한 조각이 눈에 띄었다. 가운데 적힌 문구 “PRAGA mater urbium”라틴어로 “프라하는 도시들의 어머니”라는 뜻이라고 한다. 프라하 중앙역을 거쳐가는 국제 열차들을 보면 허풍이 아닌 듯하다.


프라하에서의 마지막 저녁 식사는 또 스테이크, 그리고 밤 마실

역에 있는 슈퍼에서 장을 봐왔다. 우리의 마지막 저녁은 스테이크와 함께 익힌 방울토마토, 통 오이 피클로 세팅했다. 한편, 우리가 간 식당에서 아빠가 작은 오이를 통으로 저린 걸 먹었다면서 그걸 먹고 싶다고 했다. 어디서 먹었는지 아빠를 뺀 우리는 기억이 안 났지만 다 같이 피클 코너를 뒤져서 샀다! 여기에 필스너 우르켈 회사에서 나온 감브리누스 맥주도 준비했다.


저녁을 먹고 아빠와 둘이 잠깐 밤마실을 나왔다. 지난번에 엄마가 맛있다고 한 빵을 사 오는 길이었다. 우리 숙소가 있는 골목을 나오면 전차가 지나다니는 큰 도로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탑 하나가 보인다. 아빠가 이 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첫날에도 이 탑과 같이 찍어달라고 했다. 엄마는 이해 못 했지만!) 그런데 멀고 어두워서 사진이 잘 안 나왔다. 아빠가 이 탑에 반한 포인트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사진이 잘 안 나와 아쉽기도 하고 아빠가 좀 귀여웠다. (글 쓰는 시점에 탑의 정체를 찾아보니, 성 헨리크 교회의 종탑(Jindřišskávěž)으로 프라하의 독립된 종탑 중 가장 높은 탑이라고 한다!)


프라하 공항으로,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다음날 아침, 우리는 공항버스를 탔다. 돌아가는 비행기는 체코에서 폴란드 바르샤바 쇼팽 공항을 경유해서 인천으로 가는 편이었다. 안타깝게도 돌아가는 비행기도 경유에서 애먹었다.

체코에서 우리가 탈 비행기가 보딩 시간이 되었음에도 안개가 심하다며 문을 안 열어서였다. (앞으로 기상 악화 변수가 많은 겨울철에는 경유 편 이용을 최대한 안 해야겠다.) 그러다 어찌어찌 이륙은 했는데 폴란드에 도착했을 때 우리가 탈 비행기는 이미 떠난 상황이었다. 항공사에서 오스트리아 빈으로 가서 대한항공을 타고 한국으로 가는 편으로 다시 발권해줬다. 마지막까지 다이내믹했지만, 좋은 경험 했다며 긍정 마인드를 장착한 덕에 무사히 잘 돌아왔다. (아빠는 비행기 많이 타본다고 약간 신난 거 같기도!)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내가 '여기 가봤는데 좋았다'며 코스를 신나게 짜고 있을 때 아빠가 '네가 안 가본 곳을 가야 되지 않냐'라고 했다. 하지만 내 생각에 내가 안 가본 곳을 갔는데 별로면 낭패였다. 내가 가본 곳 중에 베스트만 골라 가면, 부모님도 좋고 나 역시 그 모습을 보면서 좋을 거 같았다. (하지만 나와 취향이 다르면 좋아하게 만들 생각은 했다!) 그리고 엄마 아빠가 먼 이국 땅에서 마음 편히 여행을 하려면 내가 믿음직스러워야 했다. 그러려면 내 구역, 속된 말로 '나와바리'를 가는 게 맞겠다 싶었다. 이러한 신념 덕에 이번 여행이 더 완성도가 높았던 거 같다. 특히 가본 곳 중에 좋았던 곳은 또 가도 좋고, 엄마 아빠와 가니 금상첨화였다.


벌써 환갑인 우리 엄마 아빠가 더 연세 드시기 전에 함께할 여행을 준비해야겠다. (다음 여행을 위해 엄마 아빠는 웨이트로 체력 관리를 열심히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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