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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바꾸는 밥상의 미래

2부 인공지능과 산업구조의 변화 5장 산업별 AI활용 ( 농업 식품업

by 신피질


AI라 하면 반도체, 자율주행, 로봇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요즘 인공지능이 가장 깊숙하게 파고든 분야는 의외로 농업과 식품 산업이다.


흙과 땀의 세계라 생각했던 농업은 이제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산업으로 바뀌고 있다. 우리의 밥상은 더 이상 농부의 손끝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AI와 글로벌 자본, 기후 변화와 같은 새로운 변수들이 얽혀 만들어지는 것이다.



미국의 들판에서 태블릿을 든 농부까지


미국의 곡창지대 한복판에서는 존 디어가 만든 초록색 트랙터가 자율주행으로 움직인다.

농부는 운전석에 앉아 땀을 흘리지 않는다. 대신 트랙터에 달린 카메라와 AI가 잡초만 정확히 골라내 제초제를 뿌린다. 불필요한 농약 사용은 90% 줄고, 비용과 환경 부담도 함께 줄어든다.


존 디어 자율주행 트랙터


몬산토(지금은 독일 바이엘 그룹에 인수) 역시 AI 농업 혁명의 주인공이다. 이들이 만든 클라이밋 필드뷰(Climate FieldView) 플랫폼은 위성 데이터와 기후 정보를 분석해 농부에게 언제 씨앗을 뿌리고 물과 비료를 얼마큼 줘야 하는지 알려준다. 이제 농부는 흙을 만지는 사람이 아니라 데이터를 다루는 관리자가 되고 있다.



인도, 소농민 손에 쥐어진 인공지능


세계 최대 농업국 인도의 농부들은 대부분 땅이 작은 소농민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현지 스타트업은 이들에게 스마트폰으로 접근했다. 병든 작물 사진을 찍으면 AI가 병명을 판별해 해결책을 제시하고, WhatsApp 챗봇은 날씨와 시장 상황을 분석해 파종 시기를 알려준다.


AI 덕분에 수억 명의 인도 농민이 단숨에 데이터 농업의 사용자가 되어버린 셈이다.



네덜란드와 이스라엘, 첨단 농업의 쇼윈도


국토는 좁지만 네덜란드는 스마트 온실과 로봇 수확기를 앞세워 세계 2위 농식품 수출국이다.

AI는 온실 속 온도, 습도, 빛을 자동으로 조절해 연중 일정한 토마토와 파프리카를 생산한다.


이스라엘은 사막 한가운데서도 물 한 방울을 아끼며 농업을 한다.

AI 센서가 토양의 수분과 염분을 측정하고, 드립 관개 시스템이 필요한 만큼만 물을 준다. 그 결과 이 나라는 물 부족 국가임에도 채소와 과일 수출국으로 성장했다.

기후와 땅의 한계를 기술로 넘어선 대표적 사례다.



한국, 청년 농업인들의 도전


한국 농촌의 평균 연령은 67세다. 고령화된 농촌에서 전통 농업은 점점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그러나 희망은 의외로 청년들에게 있다.


경북 상주의 한 청년은 정부의 청년 창업농 지원으로 스마트팜을 세웠다.

유리 온실 안에는 줄지어 늘어선 딸기가 층층이 자라고, 그는 흙을 만지기보다 태블릿으로 데이터를 확인한다. AI가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고, 카메라는 잎의 색을 분석해 병해충을 조기 감지한다.


그의 딸기는 일본과 동남아로 수출되며 현지에서 ‘코리아 스트로베리’라는 이름으로 프리미엄 대접을 받는다.

그는 말한다. “농사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짓는 거예요.”


경북 상주의 딸기 농장 - 스마트 팜



전북 김제에서는 꽃을 기르는 화훼 농가가 AI를 활용한다. 장미와 백합의 색과 줄기 길이를 데이터로 분석해 네덜란드 화훼 시장의 취향을 맞춘다. 꽃 한 송이조차 이제 글로벌 시장과 연결되어 있다.



중국, 식량 안보를 위한 전면적 도입


인구 14억의 식량을 책임져야 하는 중국도 AI 농업에 국가적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위성으로 전국의 곡창지대를 모니터링하고, 드론이 해충 방제를 한다. 돼지 농장에서는 AI가 울음소리를 분석해 “이 돼지는 곧 아플 것이다”라는 경고를 내린다.


식량 안보가 곧 국가 안보인 중국에서 AI는 농업의 필수 인프라가 되고 있다.



기후와 토양, 그리고 축산의 미래


기후 위기는 농업의 가장 큰 적이다. 가뭄과 홍수, 폭염이 예측 불가능하게 닥친다.

AI는 빅데이터와 위성 이미지를 분석해 미래의 작황을 예측한다. 토양 센서는 땅의 수분과 영양분을 실시간 분석해 필요한 만큼만 물과 비료를 공급한다.


축산업에도 AI는 스며든다. 한국의 한 축산 농장에서는 소의 움직임과 체온을 카메라와 센서가 기록하고, AI가 건강 상태를 분석한다. 덕분에 병을 미리 막고 항생제 사용을 줄일 수 있다.


유발 하라리는 그의 책에서 AI가 인간의 선택과 욕망까지 바꿀 것이라고 했다.

농업도 마찬가지다. AI는 이제 농부를 돕는 도구가 아니라, 무엇을 심고,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는 주체로 변하고 있다.



국제 자본과 식량 안보


하지만 여기서 더 깊이 볼 필요가 있다. 곡물과 식품 산업은 오래전부터 국제 자본의 손아귀에 있었다.

세계 곡물 유통의 대부분은 카길(Cargill) ,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 ADM), 방지(Bunge), 루이 드레퓌스(Louis Dreyfus) 같은 소수의 글로벌 메이저가 지배한다.


이들 뒤에는 블랙록, 뱅가드 같은 거대 자산운용사가 주주로 버티고 있다.


곡물은 굶주림을, 와인은 문화와 위신을, 제약은 생명을 지배한다.

AI가 이 체제 속으로 들어오면서, 이제는 식량 안보마저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의해 재편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보여준 것처럼, 곡창지대 하나가 흔들리면 전 세계 빵값이 요동치고, 아프리카와 중동의 굶주림이 심화된다.


한국 역시 자유롭지 않다. 전체 식량 자급률은 약 20% 수준에 불과하며, 쌀은 자급율이80% 이지만 밀과 콩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한다.

AI 농업 혁신이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생존과 직결된 과제라는 뜻이다.


AI는 농업과 식품 산업을 더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밥상의 주인은 농부인가, 데이터인가, 아니면 이 모든 것을 움직이는 글로벌 자본인가.

21세기의 밥상은 단순한 식탁이 아니다. 그것은 기후, 기술, 자본, 정치가 맞물린 거대한 무대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무대 위에서 매일 밥을 먹고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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