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인공지능과 산업 구조의 변화 5장 산업별 AI -에너지
인공지능은 우리에게 편리함과 놀라움을 안겨주지만, 동시에 우리가 잘 보지 못하는 그림자가 있다. 그것은 바로 전기를 끝없이 삼켜버리는 괴물이라는 모습이다.
AI가 성장하려면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해야 한다. 그리고 이 데이터를 저장하고 계산하는 거대한 창고가 바로 데이터센터다.
현재 전 세계에는 수천 개의 데이터센터가 운영되고 있으며, 최근 몇 년 사이 그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는 2022년 460 TWh를 쓰던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2026년에는 1,000 TWh를 넘어설 것으로 내다본다. 이는 영국 전체가 1년 동안 쓰는 전력 300 TWh보다 3배 더 많은 규모다.
미국만 해도 2025년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현재 약 126 TWh에 이른다. 이는 한국 전체 원자력 발전소 절반 이상을 동시에 돌려야 충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2030년에는 미국 전체 데이터센터 전력소비량은 약 1000 TWh에 이를 전망이며, 미국 전체 전력 소비량의 9%를 데이터센터가 차지할 전망이다.
네이버 세종 데이터센터는 20MW 규모인데, 하루에만 5만 가구가 쓸 수 있는 전기를 삼킨다. 작은 도시 하나가 매일 쓰는 전력을 건물 하나가 소비하는 셈이다.
그런데 구글이나 아마존의 데이터센터는 이보다 수십 배 더 크다. 앞으로 이런 작은 도시만 한 전기 공장이 세계 곳곳에 우후죽순처럼 세워질 것이다.
( Data Center and Power Plant )
태양광과 풍력은 깨끗하지만 바람은 멈추고 해는 진다. 기후 변화로 날씨가 불규칙해지면서 발전량도 흔들린다. 인공지능은 그런 불안정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데이터센터는 24시간, 365일 멈추지 않고 전기를 요구한다.
석탄이나 가스 발전을 늘리면 기후 위기는 더 가속된다. 탄소중립과 ESG가 세계적 화두가 된 지금, 화석연료는 더 이상 정답이 될 수 없다.
그래서 다시 불려 나온 것이 원자력이다. 특히 소형 모듈 원자로, SMR이라 불리는 새로운 형태가 주목받는다. 공장에서 미리 제작해 짧은 기간에 조립할 수 있고 안전성을 높인 설계로 기대를 모은다.
구글은 이미 원자력 스타트업과 손잡고 데이터센터 전력을 원전에서 직접 공급받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도 같은 행보를 보인다. 인공지능을 키우기 위해 원자력이 다시 무대 위로 돌아온 것이다.
물론 원자력도 완벽하지 않다.
사용 후 핵연료를 어디에, 어떻게 처리할지 인류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방사성 폐기물 문제는 여전히 무겁다.
(원자력 발전소 )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원전 확대를 위해 규제를 완화하고 재처리까지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지역사회의 반발과 안전성 논란은 여전히 거세다. 원자력은 필요하지만, 동시에 위험하다.
아이러니한 점은 인공지능이 전기를 소모하는 괴물일 뿐 아니라, 에너지를 아끼고 안전을 지키는 수호자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브라질의 국영 전력회사 엘레트로브라스는 AI를 이용해 거대한 전송망을 실시간 감시하고 있고, 미국 동부 전력망 운영자 PJM은 구글과 함께 신재생 전력 연결 절차를 AI로 단축했다.
날씨 데이터를 기반으로 태양광과 풍력 발전량을 예측하고, 발전소 설비의 고장을 사전에 감지하며, 원자로 내부 상황을 수천 번 시뮬레이션하는 일까지 인공지능이 맡고 있다.
데이터센터를 위해 태어난 듯한 AI가 역으로 전력망을 더 똑똑하게 만드는 도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인공지능과 데이터센터는 지금보다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전력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지금까지의 에너지 전략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재생에너지는 더 늘어나겠지만 그 불안정을 메워줄 저장 기술과 AI 기반 예측이 반드시 필요하다.
원자력은 다시 무대 위로 돌아올 것이고, 특히 SMR 같은 새로운 형태가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화석연료는 당분간 안전망처럼 쓰이겠지만 기후 위기의 압박을 피하긴 어렵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공지능 자체가 전력망의 효율을 높이고 환경을 지키는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AI는 단순히 똑똑한 기계가 아니다. 그것은 전기를 끝없이 요구하는 새로운 문명이다. 작은 도시와 맞먹는 전력을 건물 하나가 집어삼키고, 우리는 그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화석연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AI는 에너지 문제를 풀 수 있는 도구다. 전기를 삼키는 괴물이자, 전기를 지키는 수호자. 이 모순된 존재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아직은 미국이나 중국처럼 거대한 데이터센터가 많지 않고 대부분 수십 MW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AI와 클라우드 수요가 늘면서 전력 문제는 머지않아 현실이 될 것이다.
네이버, 카카오, SK, LG 등이 이미 데이터센터를 확장 중이고 해외 빅테크의 대규모 센터 유치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한국은 소형 모듈 원자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혁신형 SMR을 2030년대 상업운전 목표로 추진하고 있으며, 이 기술이 현실화된다면 한국 데이터센터와 산업 전반의 안정적 전력 공급원으로 쓰일 수 있다.
작은 나라의 좁은 국토와 제한된 에너지 자원을 생각하면, AI와 원자력, 재생에너지를 어떻게 조합할지가 곧 국가의 생존 전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