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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과학, 그리고 AI의 만남

2부 인공지능과 산업구조의 변화 5장 산업별 AI 활용(국방과학)

by 신피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에게 새로운 교훈을 던지고 있다.


총과 포, 전차가 전장의 주인공이던 시대는 저물고, 그 자리를 드론과 인공지능이 차지하고 있다. 하늘을 가득 메운 수십, 수백 대의 드론은 정찰과 공격을 동시에 수행하고, 상대는 전자전 장비로 통신과 GPS를 교란한다.


이 복잡한 장면을 한눈에 정리해 지휘관에게 보여주는 존재가 바로 인공지능이다.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데이터 분석 기업 팔란티어(Palantir) 시스템을 도입해 위성, 드론, 통신 자료를 실시간으로 통합한다.


지도 위에는 적의 움직임이 시각화되고, AI는 표적 후보까지 자동으로 제시한다.


과거에는 수십 명의 장교가 며칠씩 분석해야 했던 일이 이제는 몇 분 만에 처리된다. AI가 전장에서 ‘참모 장교’ 역할을 하는 것이다.



미국 국방부는 이 경험을 교훈 삼아 ‘레플리케이터(Replicator)’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전투기 한 대, 미사일 한 발이 아니라 수천 대의 값싼 드론과 로봇을 신속하게 보급해 전장을 바꾸겠다는 발상이다. 무기의 개별 성능보다 물량과 속도가 중요해진 셈이다. ‘


많고 빠르게, 그리고 협동적으로’ 움직이는 군대, 마치 개미 군단 같은 전쟁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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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함께 ‘메이븐(Project Maven)’이라는 프로젝트도 눈에 띈다.


매일 쏟아지는 드론과 위성 영상을 사람이 일일이 분석할 수는 없다. 메이븐은 인공지능을 활용해 영상 속에서 차량, 전차, 사람, 건물 등을 자동으로 분류하고 표적 후보를 뽑아낸다. 최종 발포 여부는 여전히 인간의 몫이지만, AI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속도와 정확도를 제공한다.




이제 AI는 전장에서만 활약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 연구도 AI를 만난 뒤 놀라운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알파폴드(AlphaFold)다.


단백질이 어떻게 접히는지 예측하는 모델로, 이는 신약 개발의 기본 설계도를 미리 그려주는 역할을 한다.


2024년에 공개된 알파폴드3 은 단백질뿐 아니라 DNA, RNA, 작은 분자까지 함께 고려할 수 있어, 신약 후보 물질 탐색의 속도를 혁명적으로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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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재 분야에서는 딥마인드가 개발한 지놈(GNoME)이 주목받고 있다.


원자 구조를 그래프로 표현해 안정적인 결정 구조를 예측하는데, 이 모델은 무려 220만 개의 새로운 물질을 제시했다. 이 중 38만 개는 실제로 안정적으로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되었고, 일부는 이미 실험실에서 확인되기도 했다. 과거라면 수백 년이 걸릴 발견의 속도가 단 몇 년으로 단축된 것이다.


과학 실험실의 풍경도 변하고 있다.

핵융합 연구소에서는 AI가 플라즈마의 불안정을 실시간으로 제어하며, 우주 탐사에서는 AI가 외계 행성을 탐색하고 태양 폭풍을 예측한다. “인간이 하던 반복적이고 방대한 계산을 AI가 대신한다”는 점에서 과학의 효율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흐름은 하이브리드 AI다.


전장에서 표적을 탐지하는 데는 빠르고 정밀한 영상 인식 AI가 쓰이고, 지휘관이 이해하기 쉽게 상황을 보고하거나 시나리오를 제시하는 데는 생성형 AI가 동원된다.


둘은 각자 강점이 다르다. 하나는 속도와 정확성을, 다른 하나는 해석과 설명을 담당한다. 앞으로 전쟁과 과학은 이 두 축이 결합된 하이브리드 모델을 통해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물론 이런 시스템을 가능케 하는 기반에는 엔비디아(NVIDIA)의 AI 가속기가 있다.


드론에서 실시간으로 영상을 분석하는 소형 보드부터, 데이터센터에서 거대한 언어모델을 돌리는 슈퍼컴퓨터까지, 대부분의 군사 AI와 과학 AI는 결국 엔비디아 GPU 위에서 돌아가고 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함께 쥔 엔비디아가 AI 혁명의 보이지 않는 심장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한국 역시 국방과학연구소를 중심으로 무인기, 자율주행 전차, 전자전 체계 등을 연구하고 있고,

K9 자주포나 현무 미사일, KF-21 전투기 같은 무기 성과는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비교하면 차이가 있다.


데이터를 AI가 학습할 수 있도록 정제하고 민간과 공유하는 체계가 약하다는 점이다. 데이터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군별로 흩어져 있고, 보안 규제 탓에 민간의 참여가 제한적이다.


반면 한국의 강점은 반도체와 통신, 로봇 기술 같은 기반 산업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이다. 이 장점을 살려 데이터 개방과 민간 협력을 강화한다면, 한국도 국방 AI와 과학 AI 시대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터와 실험실, 서로 다른 공간이지만 AI가 불러온 변화의 본질은 같다.


얼마나 빠르게 데이터를 모으고, 얼마나 효율적으로 연산하며, 얼마나 정밀하게 결정을 내리느냐.


AI는 이제 인간의 눈과 귀, 손과 발이 되어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다. 그리고 그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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