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인공지능과 산업구조의 변화 6장 AI와 소비자 기술의 변화
자동차는 더 이상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다.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는 이제 바퀴 달린 컴퓨터이자 작은 데이터센터다. 인공지능이 실시간으로 정보를 분석하고 판단하며, 그 모든 계산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차량용 반도체다.
과거 자동차의 주인공은 엔진과 기계 장치였지만, 이제는 반도체와 소프트웨어가 자동차의 성능과 가치를 결정한다. 자동차 한 대에 들어가는 반도체 개수는 내연기관차 수백 개에서 전기차는 두 배 이상, 자율주행차는 그 이상으로 늘어나고 있다. 배터리 관리, 전력 변환, 모터 제어, 센서 인식, 인포테인먼트까지 반도체가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안전 규제 때문에 같은 기능을 이중, 삼중으로 설계하는 경우도 많아 앞으로 자동차가 반도체를 얼마나 더 필요로 할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오늘날 소비자가 경험하는 자율주행은 대부분 레벨 2 수준이다. 차선 유지, 자동 긴급 제동, 차간 거리 유지가 대표적이다. 일부 고급차가 레벨 3 인증을 받았지만, 이는 고속도로 등 제한된 조건에서만 작동한다. 자율주행이 더 확대되지 못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안전성을 100% 보장해야 하고, 날씨나 조명에 따른 센서의 한계도 크다. 사고 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규제 문제, 그리고 모든 상황을 학습하기엔 부족한 데이터도 장애물이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기업들은 센서를 다양하게 조합해 단점을 보완하는 센서 퓨전 방식을 발전시키고, 악조건에서도 작동 가능한 알고리즘을 개발한다. 방대한 도로 주행 데이터를 모아 AI를 학습시키고, 정부와 규제 당국도 법과 제도를 조금씩 정비하고 있다. 완전 자율주행까지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한 걸음씩 벽을 넘는 과정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가 지능을 가지려면 뇌와 같은 반도체가 필요하다. 수많은 센서 데이터가 밀려드는 순간, 이를 해석해 즉각적인 판단을 내리는 건 사람이 아니라 반도체다. 테슬라는 자체 FSD 칩을 개발해 카메라 영상을 바로 신경망으로 처리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DRIVE 플랫폼으로 GPU와 NPU를 결합해 자율주행과 인포테인먼트를 통합적으로 다루고 있다. 퀄컴은 스냅드래곤 기반 디지털 새시를 통해 차량용 인포테인먼트와 보조 주행 기능을 아우르고 있고, 현대자동차도 자체 반도체 개발 계획을 세우며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전력 반도체 분야에서는 인피니언, NXP, ST가 전기차의 배터리, 인버터, 모터 제어에 필요한 핵심 부품을 공급한다. 자동차는 점점 더 반도체의 집합체가 되어가고 있고, 반도체 없이는 단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인포테인먼트라는 말은 정보(Information)와 오락(Entertainment)의 합성어다. 과거 라디오나 CD 수준에 머물던 차 안은 이제 대형 화면과 음성 인식으로 무장해 작은 영화관, 오피스, 심지어 비서로 변하고 있다. AI는 운전자의 취향과 상황을 학습해 맞춤형 음악과 경로를 제안하고, 파운데이션 모델과 연결되면 자연스러운 대화까지 가능해진다. 자동차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달리는 비서, 작은 오피스, 작은 영화관이 되고 있다.
또 다른 변화는 OTA, 즉 Over The Air다. 무선 업데이트를 뜻하는 이 기술은 스마트폰이 앱 업데이트를 통해 새로운 기능을 얻듯, 자동차도 정비소에 가지 않고도 소프트웨어가 자동으로 업그레이드된다. 테슬라는 이미 OTA로 자율주행 기능을 꾸준히 개선하고 있으며, 다른 완성차 업체들도 뒤따르고 있다. 자동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똑똑해지고, 살아 있는 제품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이 모든 변화는 결국 운전자를 위한 것이다. 더 안전해지고, 더 편안해지며, 더 개인화된 경험을 준다. 사고는 줄어 보험료와 유지비가 낮아지고, 장거리 주행의 피로도는 덜하며, 이동 시간은 작은 영화관이나 오피스로 변한다. 운전자가 직접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자동차 산업은 이제 엔진과 기계의 시대를 넘어, 인공지능과 반도체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도로 위의 자동차는 더 이상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인공지능이 깃든 지능형 동반자다. 완전한 자율주행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기술과 제도는 그 벽을 하나씩 낮추고 있다. 자동차는 이제 바퀴 달린 데이터센터이고, 인공지능은 그 안에서 우리를 안전하게, 편리하게, 자유롭게 이끌고 있다. 21세기의 자동차는 더 이상 단순히 이동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 삶을 확장시키는 새로운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