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AI 시대, 세상의 판이 바뀐다. 7. AI의 일자리 영향
요즘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내 일자리는 안전한가’다.
안전하지 않다면 ‘언제쯤 사라질까’,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라는 물음으로 이어진다.
사실 이런 걱정은 낯설지 않다. 산업혁명 시절에도, 컴퓨터가 사무실에 처음 들어왔을 때도 똑같았다. 방직기가 들어오자 직공들은 러다이트 운동으로 저항했고, 신문에는 “사무직의 종말”이라는 기사가 넘쳐났다.
그러나 역사는 다른 길을 보여주었다. 기계를 다루는 기술자,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전문가라는 전혀 새로운 직업이 생겨났고, 사라진 자리만큼 새로운 자리가 열렸다. 변화에는 늘 두 가지 그림자가 있었다. 두려움과 기회다.
이번의 주인공은 인공지능(AI)이다. 과거의 자동화가 손과 발을 대신했다면, AI는 머리의 일부를 대신한다. 자료 조사, 요약, 기초 통계, 보고서 초안—예전에는 신입사원이나 보조 인력이 하던 일이 이제는 AI에게 넘어갔다. 챗GPT나 깃허브 코파일럿 같은 도구는 몇 초 만에 보고서를 만들고 코드를 작성한다.
실제로 2024년 한 해 동안만 전 세계에서 26만 명 이상의 테크 인력이 해고되었다는 통계가 있다. 언론은 “개발자의 종말”이라는 자극적인 표현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 산업 현장에서 내려진 결론은 조금 다르다. 완전한 대체가 아니라 ‘역할의 재편’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프로그래머는 단순히 코드를 치는 사람이 아니라, AI가 만든 코드를 설계하고 검증하며, 비즈니스와 연결하는 역할로 변하고 있다.
전문직도 예외는 아니다. 변호사와 회계사의 신입 업무—판례 검색, 표준 계약서 작성, 단순 기장—은 이미 AI가 더 빠르고 정확히 처리할 수 있다.
의료도 마찬가지다. 영상 판독에서 AI는 인간보다 더 정확한 경우가 많다. 실제로 미국의 일부 병원에서는 AI가 엑스레이 진단의 정확도를 97%까지 끌어올린 사례가 보고됐다.
그러나 그렇다고 전문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소송 전략, 협상, 환자와 가족의 상황을 고려한 치료 결정, 윤리적 책임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이미 에스토니아에서는 소액 민사 사건에서 AI 판사가 시범적으로 활용되고 있고, 중국은 ‘스마트 코트’를 운영하며 AI 판결 보조 시스템을 도입했다. 하지만 가까운 미래의 모습은 “AI가 추천하고, 인간 판사가 최종 판단하는” 협업 구조일 가능성이 크다. 법과 의학은 단순히 규칙과 데이터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맥락과 감정, 책임이 개입되는 인간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AI가 가져온 또 하나의 변화는 ‘분업의 재편’이다. 산업화 시대에는 효율성을 위해 업무를 세분화했다. 조사팀, 분석팀, 디자인팀, 마케팅팀이 따로 움직였다.
그러나 이제는 역량 있는 한 사람이 AI를 잘 활용하면 아이디어를 세우고,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고, 보고서를 만들고, 슬라이드까지 혼자 만들 수 있다. 과거라면 10명 이상이 나눠서 하던 일을 한 사람이 끝낼 수 있는 시대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많은 신입사원보다 AI를 활용할 수 있는 소수의 역량 있는 인재를 선호한다.
하지만 이 흐름에는 역설도 있다. 신입을 줄이면 장기적으로 경력자도 사라진다. 신입이 없으면 5년, 10년 뒤에는 중견 인력이 부족해진다. 조직의 학습과 승계가 끊어질 위험이 생긴다. 결국 기업은 소수 정예를 뽑아 집중적으로 육성하거나, 외부에서 경력자를 수혈하거나, 프로젝트 단위의 느슨한 네트워크 협업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
대학도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지식을 암기하고 말하는 능력이 중요했다. 하지만 이제 지식은 손바닥 위에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물어야 할까, 왜 물어야 할까, 어떻게 검증할까”다. 문제 정의 능력, 비판적 사고, 협업, 커뮤니케이션, AI 리터러시가 새로운 교양이 된다. 학위 그 자체보다 실제 프로젝트와 포트폴리오가 더 중요해지고, 졸업은 끝이 아니라 다음 학습의 시작점이 된다. 대학은 종착지가 아니라 평생학습의 허브로 바뀌어야 한다.
기업이 던지는 질문도 달라졌다. “당신의 능력이 AI로 대체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AI는 빠르고 정확하지만, 윤리와 맥락, 공감과 설득, 책임과 신뢰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가 길러야 할 능력은 뚜렷하다. 문제를 정의하는 힘, 장기적인 파급효과를 고려한 판단력, 타인의 마음을 듣고 공감하는 능력, 삶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를 전하는 창의성, 그리고 팀을 이끌고 협력하는 리더십이다.
AI 덕분에 새로 생겨나는 일자리도 많다. AI에게 더 나은 질문을 던지는 프롬프트 엔지니어, 데이터를 정제하는 데이터 큐레이터, AI의 편향과 오류를 감시하는 윤리 감독자, 전문직과 AI를 결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융합 전문가. 또한 돌봄, 예술, 상담, 리더십 같은 인간적인 영역은 오히려 더 소중해지고 있다. AI가 대신하지 못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습관이다. 뉴스를 볼 때 스스로 질문하는 습관. AI의 답을 그대로 믿지 않고 검증하는 습관. 사람을 만나서 듣고 공감하는 습관. 작은 일상도 기록하며 이야기를 쌓는 습관. 그리고 AI를 도구로 자연스럽게 활용하는 습관이다. AI가 초안을 만들면 우리는 맥락과 의미를 더하고, AI가 표를 만들면 우리는 전략을 읽는다. “AI가 내 일을 빼앗을까”라는 질문을 “AI를 통해 어떤 더 큰 가치를 만들 수 있을까”로 바꾸는 순간, 같은 하루가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언론의 헤드라인은 종종 과장된다. 빅테크의 대규모 해고 소식이 업계 전체의 종말을 뜻하지는 않는다. 많은 경우 팬데믹 시기의 과잉 채용을 조정하는 과정이다. 역할과 경로는 바뀌고 있지만, 기술과 데이터의 수요는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사라지는 것은 ‘예전 방식’이지 ‘일’ 자체가 아니다.
AI가 모든 정보를 즉시 알려주는 시대, “사람이 쓴 글은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냉소도 들린다. 그러나 정보와 이야기는 다르다. 정보는 빠르고 편리하지만, 이야기는 삶에서 길어 올린 통찰과 울림을 담는다. AI가 정리한 데이터 위에 인간이 쌓은 경험과 책임이 얹힐 때 비로소 길이 보인다.
정리하면, AI는 일을 없애는 기계가 아니다. 일을 새로 배치하는 거대한 손이다. 분업은 통합으로, 반복은 자동화로, 인간성은 더욱 빛나는 길로 옮겨가고 있다. AI가 두려움이라면, 그만큼 기회도 크다. AI가 잘하는 것은 AI에게 맡기고, AI가 못하는 것은 더 깊이 단련하자. 그 두 축을 동시에 잡을 때, 우리는 “사라지는 직업”의 불안에서 “새로운 일”의 설렘으로 나아갈 수 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AI 그 자체가 아니라, AI와 함께 성장하는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