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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파일럿 시대, 인간과 함께 일하는 인공지능

3부 AI시대, 세상의 판이 바뀐다. 7. AI의 일자리 영향

by 신피질

요즘 우리는 대부분 잘 실감하지 못하지만, 이미 ‘코파일럿’ 시대 한가운데를 걷고 있다.

코파일럿은 원래 비행기의 부조종사를 뜻하지만, 이 글에서는 “사람의 일과 생각을 옆에서 보조하고 확장하는 인공지능”을 통칭하는 말로 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코파일럿 Copilot처럼 제품 이름으로도 존재하지만, 더 넓게는 ChatGPT, GitHub Copilot, Notion AI, 디자인·영상·음악 생성 도구 등 사람이 주도하고 AI가 협업하는 전반의 방식을 가리킨다.

한마디로, 코파일럿은 도구의 이름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의 이름이다.


프로그래머인 막내 동생은 “AI 없이는 이제 업무가 불가능하다”라고 말한다. 코드 자동 완성, 오류 제안, 테스트 케이스 설계까지 AI가 곁에서 계속 손을 빌려준다.

반면 음악 프로듀서인 둘째 아들은 직접 스스로 춤의 호흡과 감정을 읽으며 비트를 쌓아 올린다.

그는 AI 작곡 도구들을 시험해 보았지만 “수준이 매우 낮고 쓸모가 없다”라고 느낀다.


논리의 일과 감정의 일, 오픈 데이터가 넘치는 영역과 저작권으로 닫힌 영역, 정답이 있는 문제와 해답이 늘 새로워야 하는 문제—그 차이가 코파일럿의 진입 속도를 갈라놓는다.

그렇다고 예술이 코파일럿과 무관하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성덕대왕신종’ 앞에서 쓴 한 편의 시를 통해, 인간의 경험이 언어로 응결되는 순간을 다시 확인했다.

AI는 소리의 파형을 분석할 수 있지만, “천년의 침묵과 울림”을 몸으로 듣고 의미를 만드는 일은 아직 인간의 일이다.

AI는 계산을 잘하지만 의미를 모른다. AI는 글을 쓸 수 있지만 삶을 느끼지 못한다. AI는 논리를 따라가지만 책임을 지지 않는다. 코파일럿 시대가 깊어질수록, 인간의 질문과 책임, 경험과 감정은 더 또렷해진다.


코파일럿을 오해하지 말자. AI를 쓰면 “내가 한 일이 아니다”라는 죄책감이 스며들 때가 있다. 그러나 코파일럿은 사기나 편법이 아니라 새로운 문해력이다.

붓이 화가를 대체하지 않았듯, 코파일럿은 창작자를 대체하지 않는다.

“AI는 손이 아니라 거울이다.” 좋은 질문을 던지면 그 거울은 내 생각을 더 선명하게 비춘다. 나쁜 질문을 던지면 거울은 흐릿한 반영만 돌려준다.

AI시대 코파일럿의 품질은 대부분 ‘질문의 품질’에서 비롯된다. 결국 인간은 답을 내는 존재가 아니라, 질문을 설계하는 존재다.


현장에서 코파일럿은 ‘작업의 분업’을 ‘사유의 통합’으로 바꿔 놓는다. 예전에는 조사팀, 분석팀, 문서팀, 디자인팀이 나뉘어 움직였다면, 이제는 한 사람이 AI를 잘 묶어 아이디어 구상→자료 수집→요약/해석→초안 작성→슬라이드 구성까지 한 호흡으로 끌고 간다.


이것은 신입 사원의 단순 업무부터 전문가 수준의 반복 루틴까지 재배치된다는 뜻이고, 조직은 “AI를 다룰 줄 아는 소수 정예”를 더 선호하게 된다. 다만 신입을 지나치게 줄이면 나중에 경력 사원이 점차 축소된다. 그래서 교육, 멘토링, 내부 표준작업절차 SOP와 프롬프트 공유, 외부 네트워크형 협업 같은 보완 장치가 필요하다.


코파일럿을 “두 번째 뇌”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그 뇌는 스스로 질문하지 않는다. LLM(대규모 언어모델)은 인간의 언어 패턴을 학습해 다음에 올 단어를 ‘예측’할 뿐이다. 이해가 아니라 추정, 사유가 아니라 통계다. 그래서 우리는 코파일럿의 결과물을 바로 믿지 않고, 근거를 확인하고, 맥락을 붙이고, 윤리와 책임의 자리에 사람을 앉혀야 한다.

다시 말해, 코파일럿은 인간의 사고를 확장하지만, 인간의 의미를 대체하지 않는다.


개발자는 버그 리포트를 붙여 넣고 “원인 가설 3가지와 재현 단계, 단위 테스트 템플릿을 제안해 줘”라고 묻는다. AI는 로그와 증상에서 흔한 패턴을 끌어와 방향을 잡아준다.

마케터는 “작년 캠페인 A/B 결과와 이번 주 고객 문의 요약에서 공통 쟁점 5가지를 뽑아 페르소나별 메시지로 바꿔 줘”라고 요청한다.


교사는 학습 목표와 수준을 주고 “어려운 개념을 일상 비유로 설명하는 3 문단”을 받아 수업의 구상을 한다.


회의가 끝나면 “결정 사항·책임자·마감일”로 정리된 초안이 자동으로 도착한다.


이 모든 장면에서 인간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무엇을 위해 묻는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지, 그리고 무엇을 책임질지를 스스로 정하는 일이다.


그래서 코파일럿을 잘 쓰기 위한 개인의 능력은 아주 구체적이다.

첫째, 질문 설계력-목표, 제약, 출력 형식을 한 번에 명확히 말하는 힘.

둘째, 편집과 심사—AI 초안을 “좋아 보이게”가 아니라 “맞게” 만드는 힘.

셋째, 데이터 감수성—샘플의 편향과 한계를 읽는 눈.

넷째, 연결력—문서·스프레드시트·메일·메신저·자동화를 하나의 흐름으로 묶는 손재주.

다섯째, 윤리—개인정보와 저작권, 출처 표기를 지키는 마음.


요약하면 “질문·편집·데이터·연결·윤리”이다. 코파일럿은 질문의 언어로 시작해, 윤리의 문장으로 끝난다.

조금 더 철학적으로 말하면, 코파일럿은 ‘정답의 시대’를 ‘발전의 시대’로 바꿔 놓는다. 과거에는 정확함과 속도가 경쟁력이었다. 이제 그 둘은 AI가 더 잘한다.


인간에게 남은 경쟁력은 “무엇을 향해 가는가”라는 방향 감각과, 멈추지 않고 스스로를 업데이트하는 능력이다.

“AI 이전은 노력의 시대, AI 시대는 의미의 시대.” 손으로 하는 일보다 마음으로 하는 일이 더 중요해진다는 뜻이다.


지방자치단체의 교육도 여기에 맞춰야 한다. 단순한 도구 사용법 강의보다, 직무·현장에 맞춘 코파일럿 루틴을 가르쳐야 한다. 예를 들어 공공 문서 업무라면 “자료 수집→요약→근거 표시→검토 체크리스트→개인정보 익명처리”까지 하나의 SOP로 묶어야 한다.


중소기업이 코파일럿을 도입할 때 초기 비용이 부담될 수 있다. 지자체가 도입 초기의 일부 비용과 간단한 현장 컨설팅을 함께 지원하되, 다음 연장 여부는 실제 개선 수치(예: 처리시간 단축, 오류 재작업률 감소)로 판단하면 된다.

학교는 AI 디지털 교과서와 함께 “질문 쓰기·근거 찾기·낭독 토론”을 붙여, 도구 사용이 아니라 사고의 훈련이 되게 해야 한다.


코파일럿은 효율의 수단이면서, 동시에 사유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좋은 질문을 던지면 생각의 윤곽이 선명해지고, 서툰 질문을 던지면 모호한 반영만 돌아온다. 정답 중심, 경쟁이 지배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수정 보완 능력과 방향 감각이 경쟁력이 된다.


흔히 이렇게 정리한다. “AI 이전은 노력의 시대, AI 시대는 의미의 시대.” 기계가 잘하는 일은 기계에 맡기고, 인간만 할 수 있는 일—경험에서 의미를 길어 올리고 책임을 지는 일—을 더 깊이 단련할 시점이다.


예술은 그 기준을 가장 명확히 보여준다. 생성형 도구가 스타일을 만들어 내는 동안, 시와 음악의 핵심은 여전히 경험과 감정에서 나온다. 공명은 파형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는가가 아니라, 인간이 인공지능과 함께 어떻게 확장되는가가 오늘의 질문이다.


코파일럿은 적이 아니라 동료다. 질문을 더 정교하게, 의미를 더 멀리까지. 기술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함께 성장하는 인간이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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