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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비밀 2부 — 성장과 쇠퇴, 다시 태어나는 뇌

by 신피질

나이가 들면 새로운 경험의 빈도가 감소하고 생활의 패턴이 단순화된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삶의 양식 변화가 아니라, 뇌의 구조적·기능적 변화를 촉발하는 생물학적 사건이다. 해마의 치아이랑(Dentate Gyrus, DG)은 새로운 경험을 분리하고 정리해 기억의 씨앗을 만드는 관문으로, 성인기에도 신경세포가 생성되는 거의 유일한 영역이다. 그러나 DG의 신경발생은 자극이 있을 때만 활성화되며, 새로운 경험이 부족하면 빠르게 위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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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G에서 생성되는 신생 뉴런은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고 환경의 변화를 학습하기 위한 ‘회로의 신생아’에 해당한다. 이 뉴런이 충분히 생성되어 회로에 통합될 때 우리는 새로운 정보를 정확히 구별하고, 복잡한 상황에 유연하게 적응하며, 전략적 사고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경험이 사라지면 DG는 새로운 뉴런을 만들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신경발생을 멈춘다. 그 결과 과거에 형성된 엔그램(engram), 즉 기억의 신경학적 흔적만 반복적으로 활성화된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뇌는 “과거 중심적 회로”로 고착되며, 사고는 경직되고, 변화에 대한 적응 능력이 약화된다.


새로운 활동을 하지 않고 반복된 생활만을 이어가는 노인들은 과거의 기억을 빈번하게 언급하고 사회 변화에 대해 보수적이거나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며 새로운 흐름에 대한 비판적 반응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이는 단순한 성향 문제가 아니다. 새로운 자극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DG에서 신경세포 생성이 거의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뇌는 기존 엔그램만을 반복적으로 활성화하며 현재를 해석하게 된다. 이러한 회로의 편중은 사고의 가소성을 약화시키고 변화에 대한 적응 능력을 더욱 떨어뜨리며 결과적으로 뇌 노화를 가속화한다.


근대 이전의 노인들은 사회 변화 속도가 느려 과거 경험만으로도 일상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현대는 변화의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 이 속도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지식, 기술, 인간관계, 환경 변화를 지속적으로 흡수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뇌는 급격히 뒤처지게 된다.


반대로 활동이 풍부하고 새로운 경험을 지속적으로 받아들여 살아가는 노인은 전혀 다른 뇌를 가진다. 이들의 뇌에서는 DG에서 신경줄기세포가 활발히 분열하고 새로운 뉴런이 회로에 편입되며, 과거의 엔그램만 사용하는 뇌가 아닌 “새로운 정보에 반응하는 뇌”가 유지된다.


이런 노인들은 과거의 회상 능력은 다소 떨어질지라도 새로운 경험을 통해 생성된 신생 회로가 활성화되기 때문에 사고의 유연성, 문제 해결력, 전략적 판단력에서 젊은 사람들 못지않은 역량을 보인다. 노년기에 어떤 삶을 살 것인가는 결국 “새로운 회로를 얼마나 만들어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신경발생을 촉진하는 핵심 물질은 흔히 BDNF로 불리는 ‘뇌 성장 촉진 인자’다. 이 물질은 신경세포가 살아남고 연결을 강화하며 새로운 시냅스를 형성하는 데 필수적이다. 운동, 학습, 사회적 교류, 새로운 환경 탐색 등은 모두 BDNF 분비를 증가시켜 뇌의 성장 가능성을 극대화한다.


반대로 만성 스트레스에서 분비되는 코르티솔은 DG의 신경줄기세포 분열을 억제하고 신생 뉴런의 생존율을 떨어뜨려 뇌의 회복력을 약화시킨다. 코르티솔은 특히 DG의 세포에 민감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스트레스 관리 여부는 신경발생 유지에 결정적이다.


뇌 건강을 유지하고 신경발생을 촉진하는 활동으로는 유산소 운동이 가장 강력한 효과를 낸다. 빠르게 걷기, 조깅, 등산, 자전거는 모두 해마의 혈류를 증가시키고 BDNF 분비를 촉진한다. 명상과 호흡 훈련은 스트레스를 줄이고 코르티솔을 낮추어 신경세포 생성 환경을 안정화한다. 숙면은 손상된 회로를 복원하며 신생 뉴런이 회로에 통합되는 과정을 돕는다. 또한 규칙적 독서와 학습은 해마의 활성도를 높이고 DG의 회로 구조를 촉진해 새로운 뉴런이 생존할 확률을 높인다. 뇌는 “사용하는 기능은 강화하고 사용하지 않는 기능은 약화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활동이 곧 구조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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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또한 뇌 건강과 신경발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오메가 3(DHA)은 신경세포 막의 유동성을 유지하며 시냅스 전달을 매끄럽게 하고, 폴리페놀(블루베리, 포도, 딸기)은 항산화 작용을 통해 신경세포 스트레스 손상을 줄인다. 녹차의 EGCG는 염증을 억제하고 신경세포 생존을 돕는다. 커큐민은 해마의 신경 성장 인자를 증가시키며 비타민 D는 신경 면역을 조절해 신경발생 환경을 최적화한다. 이런 영양 요소들은 단순한 보조제가 아니라 뇌세포가 “다음 세대 뉴런을 만들 수 있는 생화학적 토대”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성인 신경발생의 개념은 1960년대 조셉 알트만이 쥐의 해마에서 신경세포 생성 증거를 처음 제시하면서 출발했다. 그러나 당시 학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인간에게 신경발생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은 1998년 피터 에릭슨과 프레드 게이지의 연구에서였다. 이후 수많은 연구가 운동, 학습, 환경, 영양이 신경발생을 조절한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입증하며 뇌는 평생 가소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패러다임이 확립되었다.


노년기 뇌의 변화는 나이가 아니라 선택이 결정한다.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는 노인은 DG에서 지속적으로 신생 뉴런이 생성되고 새로운 엔그램이 축적되며 회로는 확장된다. 익숙함만을 유지하고 새로운 자극을 피하는 노인은 과거 엔그램만으로 사고가 이루어지면서 뇌 전체의 가소성이 감소한다. 현대의 빠른 변화 속도를 고려할 때 새로운 학습과 경험은 단순한 취미나 여유 활동이 아니라 뇌가 시대를 따라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생물학적 조건이다. 노화는 피할 수 없지만 노화의 속도와 방향은 우리가 매일 어떤 경험을 선택하느냐로 결정된다. 인간이 80~90세까지 살아가는 시대에서 뇌는 여전히 변화할 수 있으며, 그 가능성은 새로운 자극을 선택하는 삶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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