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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는 왜 공중에서 짝짓기 하나?

by 신피질

맨발 산행에서 시작된 호기심


한여름의 숲길.
나는 오늘도 맨발로 산을 오른다. 발바닥에 닿는 흙의 촉감과 작은 돌의 압박, 그리고 바람이 식혀주는 땀방울까지, 모두가 산행의 일부다.


맨발로 걷다 보면 시선은 자연스레 땅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 땅 위에서 내가 가장 자주 만나는 생명체가 있다. 개미다.



길 위, 바위틈, 나뭇잎 그늘 아래—어디든 개미가 있다. 여름에는 말 그대로 개미 천지다.
전 세계 개미 개체수는 약 2천억 마리. 일부 연구에선 그 수를 20경(2 ×10 ¹⁶) 마리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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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마어마한 숫자를 한국으로만 좁혀도 수조 마리 이상이 땅속과 지상에서 부지런히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내가 산에서 마주치는 개미는 대부분 날개가 없다.
그런데 어떻게 일부 개미는 하늘로 날아올라 짝짓기를 하는 걸까?

개미의 기원: 땅을 선택한 말벌의 후손


개미는 지금으로부터 약 1억 3천만 년 전, 공룡이 지구를 지배하던 중생대 백악기에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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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억 2천만 년 전 지옥개미 화석 >


놀랍게도 그 조상은 말벌이다.


유전학적 분석에 따르면, 개미와 말벌은 상당 부분 DNA를 공유한다. 원래 개미도 날개를 가졌지만, 생존 전략으로 땅속 생활을 택했다.

땅을 선택한 이유는 명확하다.
하늘보다 안정적인 환경, 더 풍부한 먹이 저장, 그리고 번식지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조건이 땅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완전히 날개를 버린 것은 아니다.
번식기가 되면, 여왕개미와 수개미에게만 ‘날개’가 생긴다.

결혼비행: 하늘에서 벌어지는 생애 단 한 번의 만남
개미 세계에서 번식은 극적으로 진행된다.


여름 장마가 끝난 뒤, 습도가 높고 바람이 잔잔한 날, 여왕개미와 수개미는 일제히 집을 떠난다. 이를 결혼비행(nuptial flight)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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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중에 날아오른 개미 떼 >

수천, 수만 마리의 개미가 하늘로 솟아오르는 장면은 장관이다.
하늘에서 이뤄지는 이유는 단 하나—유전적 다양성과 번식 성공률 때문이다.


같은 집단 안에서만 짝짓기 하면 유전적 결함이 누적될 위험이 크다.
그래서 그들은 집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 서로 다른 개미 집단과 섞인다.

하지만 이 비행은 목숨을 건 도전이다.
새, 잠자리등 천적이 기다리고 있고, 비나 바람도 치명적이다.



수컷의 운명과 여왕의 여정


공중에서 여왕개미와 짝짓기를 마친 수개미는 곧 죽는다.
수컷의 평균 수명은 6개월 정도이지만, 번식 후 대부분은 그 자리에서 생을 마감한다.



여왕개미는 몸에 저장한 정자를 평생 사용하며, 일부 종은 20년 이상 산다.

짝짓기를 마친 여왕개미는 스스로 날개를 떼어버린다.


그 후, 태어난 곳에서 멀리 떨어진 안전한 땅을 찾아 새로운 왕국을 건설한다.
땅속 깊이 첫 방을 만들고, 알을 낳아 혼자 돌보며 초창기 식민지를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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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 사이에서
나는 맨발로 걷다 개미들을 본다.
땅 위에서 먹이를 옮기는 작은 일개미, 줄지어 행진하는 병정개미, 그리고 아주 가끔—날개 달린 여왕과 수개미를.
그 짧고 장엄한 ‘하늘의 결혼식’을 떠올리면, 개미의 세계는 단순히 부지런한 노동의 상징이 아니라,
목숨을 건 사랑과 도전의 세계로 다가온다.

한 번의 비행, 단 한 번의 사랑, 그리고 새로운 도시.
개미는 땅의 생명이지만, 그 사랑은 하늘에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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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