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의 아파트와 상수도 위생 시스템
나는 1994년경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의 개미 시리즈를 정말 재미있게 읽은 경험이 있다. 그는 약 10여 년간 개미를 관찰한 것을 기반으로 사실적으로 개미 도시를 묘사했다.
소설 속 주인공 개미 304호의 시선으로 인간과 유사한 개미 도시 및 삶과 협력 관계를 묘사했고 당시 나는 새로운 세상을 본 듯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작은 개미 한 마리 뒤에는 거대한 도시국가가 숨어 있다.
이 도시국가는 인간의 도시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개미는 땅속 깊은 곳에 아파트 같은 구조를 짓고, 상수도와 같은 수분 공급망을 유지하며, 쓰레기와 사체를 처리하는 위생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다.
마치 인간의 문명을 압축해 놓은 듯한 모습이다. 개미가 1억 년 이상이 되었고, 인간은 원시 인류를 포함해도 5백 만년 정도도 지나지 않았으니, 어쩌면 인류가 문명을 발달시키니 개미와 같이 군집한 아파트가 만들어지는지 모르겠다.
1. 도시 국가 규모.
개미 도시국가는 종과 환경에 따라 크기가 크게 달라진다. 작은 군집은 수천에서 수십만 마리 수준이며, 둥지 면적은 수 m²에 불과하다.
그러나 잎꾼개미나 불개미 같은 종은 수백만 마리 이상이 거주하는 거대한 군집을 형성한다.
더 나아가 아르헨티나개미는 수십억 마리가 연결된 슈퍼콜로니를 이루며, 지중해 연안에서 6,000km 이상 확장된 사례도 보고되었다. 이는 인간 사회의 마을, 도시, 그리고 제국에 각각 비견될 수 있다.
2. 지하 아파트 형태
개미의 둥지는 지하에 층층이 방과 통로가 연결된 아파트 단지와 같다.
잎꾼개미 둥지는 깊이 10m 이상, 수백 개의 방과 수 km에 달하는 통로를 가진다. 각 층은 기능이 구분되어 있다.
얕은 층은 먹이 저장과 경비용, 중간층은 유충 방, 가장 깊은 층은 여왕을 위한 공간이다.
일개미는 흙을 파내고 밖으로 운반해 지상에 흙무더기를 쌓으며, 굴 내부는 환기와 배수가 고려된 정교한 구조를 이룬다.
인간은 아파트를 기초에서 위로 층층이 쌓아 올리지만, 개미는 땅 위에서 시작해 아래로 파내려 가며 각 층을 만든다. 그리고 그 층마다 먹이 저장실, 유충 방, 여왕 방, 쓰레기장 같은 시설을 배치해 실질적으로 입체적인 도시 구조를 완성한다.
3. 상수도 시스템
인간이 수도 시설로 물을 공급받듯, 개미 도시국가도 수분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첫째, 일개미는 꿀, 과즙, 이슬 등 수분이 풍부한 먹이를 찾아내어 사회적 위(social stomach)에 저장하고, 이를 트로팔락시스(trophallaxis)라는 방식으로 다른 개미들과 나눈다.
(개미의 트로팔락시스의 모습)
둘째, 둥지 자체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환기구와 배수로가 있어 공기 흐름과 물의 유입을 조절한다.
셋째, 꿀주머니 개미처럼 몸속에 수분을 저장하는 개미가 물탱크 역할을 하기도 한다.
넷째, 서식지를 선택할 때부터 수분이 안정적으로 확보되는 장소를 고른다. 이 네 가지 요소가 합쳐져 개미 도시의 상수도 시스템이 완성된다.
인간이 약 70%가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개미도 몸무게의 약 50~60%가 수분이다. 따라서 수분은 개미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이 때문에 개미 사회는 수분 확보와 분배를 위한 체계를 반드시 유지한다.
4. 폐기물 처리와 위생 시스템
개미 도시국가도 배설물, 쓰레기, 죽은 개체가 발생한다. 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체계적인 방법으로 이를 관리한다. 배설물은 특정 공간에 모아 두어 ‘화장실 방’으로 사용한다.
먹이 찌꺼기와 각종 쓰레기는 ‘쓰레기장 방’이나 둥지 밖 특정 장소에 버려진다.
죽은 개미는 올레익산(oleic acid) 냄새로 즉시 인식되어, 사체 전용 구역으로 옮겨지거나 둥지 밖으로 버려진다.
또한 일부 개미는 항균 물질을 분비하거나 세균과 공생하며 곰팡이 번식을 억제한다. 이는 인간의 하수도, 쓰레기 처리, 묘지, 방역 시스템에 각각 대응한다.
작디작은 개미 사회는 인간 도시국가의 축소판과 같다. 지하 아파트 같은 둥지 구조, 상수도에 해당하는 수분 공급망, 쓰레기와 사체 처리 시스템, 방역 체계까지, 개미들은 이미 완전한 문명을 이룬 존재다.
우리 눈에는 작은 곤충일 뿐이지만, 그들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인간 사회와 닮은 또 다른 문명이 펼쳐져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