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주는 '시간'이라는 소중한 선물.
"우리 회사 사람들은 금요일엔 연차 잘 안 쓰는데."
안경사이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두 눈동자.
연차를 쓰려고 상무님께 결재판을 들이밀었다가 또 한소리 들었다.
반사적으로 양 입꼬리를 슬쩍 들어 올려 보이고, 나는 뒤돌아서서 소리도 내지 못하며 길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직 안 끝났다. 이번엔 전무님 차례다.
정말이지 숨이 턱 막혔다.
자리로 돌아와 피곤이 가득 달린 무거운 눈을 들어 거울을 보니 윤기 없이 메마른 얼굴이 보였다.
비 오는 날 따뜻한 커피 한잔과 함께 소파에 기대 조용히 책 한 권을 읽고 싶어도, 직장인에게 그건 타이밍이 맞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즈음 나는 그날의 기분과 컨디션에 따라 자유롭게 움직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시피 한 이 생활이,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학창 시절을 무척이나 괴로워했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등교하고 밥 먹고 하교하는 지겨운 일상.
그래서인지 초등학교 때 이후로 개근상을 받아본 기억이 없다.
대학생 때도 강의에 빠지고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할 때가 꽤 많았던 것 같다.
한 교수님은 "결석하는 윤 씨"라고 나를 기억할 정도였으니 정말 어지간했나 보다.
물론 이건 절대 자랑이 아니다.
의지력이 부족한 것 아니냐고 묻는 다면,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그 누구보다 이런 나를 부끄러워했고 죄책감에 시달렸다.
'밥줄이 달린 일이라면 남들처럼 달라질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바람과는 달리 나는 직장생활마저 진득하게 해내지 못했다.
처음 입사할 땐 모든 게 좋았다.
웃는 인상의 얼굴과 명랑한 성격 때문인지 주변의 평가는 대체로 평균 이상이었다.
업무 습득력도 빠른 편이라 칭찬을 듣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4개월, 8개월, 1년...
열심히 일한 만큼 주변에서 내게 거는 기대는 커졌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내 열정은 차갑게 식어버렸다.
처음과 달리, 주변에 신경 쓸 여력도 없었다.
에너지가 고갈된 채 좀비처럼 일하다 퇴근할 때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팔팔해졌다.
회사에서 내 평판이 곤두박질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매번 같은 패턴이 반복되었다.
항상 주변을 필요 이상으로 의식하고 인정욕구가 센 편인 나는 이런 상황에 깊은 자괴감에 빠져든다.
하지만 다시 일어설 에너지와 의지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결국 그 모든 것에서 탈출하기 위해, 퇴사한다.
그렇게 나는 2년 이상 같은 회사에 머물지 못하고 이직을 반복했다.
처음엔 이 회사는 나랑 안 맞는 다며 핑계를 대보기도 했다.
하지만 되풀이되는 상황 속에서 나는 이내 질타의 화살을 내게 돌리기 시작했다.
'그냥 버텨. 남들은 다 힘들다면서도 잘하는데 왜 너만 맨날 이 모양이야? 부모님한테, 친구들한테 창피하지도 않아?'
퇴사할 때마다,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며 스스로를 점점 더 세게 채찍질했다.
내가 마치 부모님이나 친구라도 되는 냥 무심한 말로 스스로를 몰아세웠다.
돈 버는 일에 힘이 들지 않은 사람이 어딨겠는가.
챗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그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 너무도 부럽고 진심으로 존경스러웠다.
그리고 나도 마음의 소리에 귀 닫고 입막음하며 그들을 따라가려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노력을 하면 할수록 나는 더욱더 삶의 의미를 잃어갔다.
억지로 끼워 맞추려다 보니 무기력감이 점점 나를 집어삼켰다.
나는 하루 24시간 중 출퇴근 시간을 포함하면 12-13시간을 꼬박 일하는데 투자했다.
잠은 7시간 이상 자야 하니, 밥 먹는 시간을 포함한 나의 가처분 시간은 하루에 고작 4시간 남짓.
운동이라도 하려면 정말 남는 시간이 없으니 큰맘 먹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그 무엇도 하고 싶지 않았고, 재밌는 일들도 점점 사라졌다.
'어차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것 같은데. 그냥 다 놓으면 이 고통이 끝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울컥 눈물이 쏟아지기도 했다.
감옥살이를 버티는 심정을 숨긴 채 겨우 스스로를 붙들고, 여느 때와 같이 멍하니 사무실에 앉아 있던 어느 날.
한동안 어떤 흥미도 솟지 않던 머릿속에 뜬금없이 집에 사둔 책 한 권이 떠올랐다.
그 책이 너무 읽고 싶었다.
평소라면 온갖 눈치를 보며 엄두도 못 냈겠지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나는 상사가 뭐라고 생각하든 그냥 무작정 반차를 써버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책 읽으려고 반차를 쓰다니.'
그 소소한 일상을 위해 사용하기엔 비싼 값을 치렀단 생각이 들면서도 왠지 모를 해방감에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한편으론 생각했다.
'내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진짜 나랑은 안 맞는 걸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관심 있는 일에 몰두하면 모든 에너지를 불태워서 그 일을 해내는 사람이다.
호기심도 많아서 다 채울 수 있을지 걱정이 들만큼 이것저것 관심사도, 하고 싶은 것도 다양하다.
반면 내게 주어진 에너지를 소분해서 매일 비슷한 양으로 유지하는 일을 잘하지는 못한다.
'그냥 이런 사람도 있을 수 있는 거 아니야?'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소심한 반항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이대로 살다 보면 언젠가 행복해질까?
대체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 거지?
지금 내가 하는 일, 평생 하면서 살 수 있을까?
월급 따박따박 나오는 안정적인 생활이 아직은 정답처럼 여겨지는 사회.
사무직에 종사해야 내가 초라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은 강박.
그 길에서 벗어난 도전이란 마치 도박처럼 위험하게만 느껴지고 때로는 주변의 우려를 산다.
하지만 현 직업이 내게 돈벌이 수단,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안정적인 삶을 살지는 않더라도, 내 기준을 가지고 사유할 줄 아는 사람.
흐리멍텅한 동태눈이 아니라, 내면의 빛을 담아 반짝이는 눈동자로 세상을 관찰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매일 아침 움직이지 않는 몸을 이끌고 고비를 넘기듯 회사에 출근하는 이 생활은 내가 좋아하는 일에 도전할 용기도, 스스로를 탐색할 여력도 남기지 않았다.
남의 눈치를 보며 주변사람들의 기분을 맞추는 데에 내 에너지의 대부분을 쏟아내기 바빴다.
내게 주어진 세상을 살아가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다.
내가 보고, 만지고, 듣기에, 오감으로 만물을 느끼기에 이 세상이 존재한다.
그런데 왜 나는 다른 사람의 기준에 나를 억지로 끼워 맞춰야만 하는 걸까?
우주의 작디작은 티끌로 태어나 단 한 번 사는 소중한 인생을, 대체 나는 누구의 만족을 위해 살고 있는가.
우리 모두는 매 시간 '첫 순간'을 살고 있다.
그런 인생에 정답이 있을까?
누가 그걸 정할 수 있을까?
모두가 동등하게 첫 회차의 인생인데 말이다.
나는 이미 그 답을 안다.
수없이 다양한 개성을 가진 인간들 대부분이 비슷한 패턴의 인생을 살아가는 게 당연할 리 없다.
'안전하다'라고 규정된 길에서 벗어나기 두려울 뿐.
나는 나를 탐색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남이 원하는 삶, 남에게 걱정 끼치지 않는 삶이 아닌,
정말 내가 만족하고 즐기는 삶이란 무엇일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채, 이를 악물고 버틴 내게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일단 백수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나'라는 미지의 대륙을 탐험할 시간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