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는 나를 책임지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변화의 흐름 속에 선 한 개인으로서

by 윤숲



지난 글이 퇴사를 결심한 감정의 기록이었다면, 이번에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나의 퇴사이유를 적어보려 한다.

이건 내 개인의 이야기이지만 단순히 개인의 사정으로만 보기는 어려운, 어쩌면 꽤 복잡한 이야기이다.



여러 매체들은 2030에 대해 흔히 이렇게 말하곤 한다.


-내 집마련의 희망을 잃은 세대.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

-'쉬었음 청년'의 세대.

-100세 시대를 살아갈 세대.


가만히 생각해 보면 부정하기 어렵다.

나는 내 집마련을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특히 서울엔)

부모보다 더 많이, 오랜 시간 공부했지만 더 좋은 직장을 구하지 못했으며, '과연 이게 내가 원하는 삶일까'하는 고민 끝에 얼마 전 퇴사함으로써 '쉬었음 청년'이 되었다.


다시 말해, 나는 그 누구보다 요즘 말하는 2030 세대에 부합하는 사람이다.


물론 맨 마지막 항목인 수명에 관한 것은 아직 겪어보지 않았기에 알 수 없다.

하지만 '의료 수준의 발달로 인해 너희 세대는 100세 가까이 살게 될 거야.'라는 그 소식이 나에게 꽤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얘기는 이 몸뚱이를 가지고 앞으로 60여 년을 더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 된다. 평소 내 몸 상태의 평균값은 '피곤함'이다. 일주일에 5일을 새벽까지 불살라도 끄떡없던 20대와는 달리, 내 체력은 단 하루를 나갔다 와도 바닥을 기어간다.

'이 몸을 가지고 사지멀쩡하게 늙어가는 게 가능할까?'

내가 이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였냐면, 몇 개월간 식단과 운동을 시작해서 무려 13kg의 체중을 감량했을 정도다.


하지만 진짜는 그게 아니었다. 그보다 더 커다란 두려움으로 다가왔던 건, '그럼 대체 몇 년을 더 일해야 나를 평생 먹여 살릴 수 있는가'하는 무지막지한 현실이었다. 당장 주변을 돌아보면 그 막막함은 배가 되었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중소기업 치고 규모가 꽤 큰 회사였지만, 모든 면에서 빡빡한 편이었다. 야근은 물론 퇴근 후에도 거래처의 전화를 받아야 했으며, 주말 출근까지 잦았다. 그래서인지 20대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30대면 매우 젊은 축이었다. 몇 안 되는 내 또래의 동료들은 눈치를 보면서도 서로 의지해가며 '칼퇴법칙'을 고수했지만, 40대의 상급자들은 그렇지 못했다.


어느 날, 회사에서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끼리 한 고깃집에 모였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던 중 한 과장님이 자신의 고충을 토로했다. 일하다 짝도 못 만나고 늙어 죽겠다, 대표님이 직원들에게 일을 맡기지 못하고 마이크로 매니징을 한다 등등.

물론 나도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지만 떠오르는 한 가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그분에게 물었다.


"과장님이 능력 없으신 것도 아닌데, 이직할 생각은 해본 적 없으세요?"


그분은 고기 한 점을 질겅 씹으며 대답했다.


"그게 말처럼 쉽냐, 이 나이에."


그 답변에 주변에 앉은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만 빼고.

회사가 한 인간의 여가시간을 부당하리만치 앗아가도, 그들은 그 회사에서 벗어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슬픈 현실이었다.

전문직이 아니고서야, 그 말이 단순한 푸념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보고 듣고 있었다.

'그래도 한번 도전해 보면 안 되나. 지금 생활보다는 좋은 조건으로 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물론 그들의 선택이 옳고 그른 건 절대 내 짧은 생각으로 판단할 수 없다. 그들은 나보다 더 오랜 사회생활을 한 인생선배들로서, 배울 점이 참 많은 분들이다. 어쩌면 겉으론 툴툴대면서도 그 생활을 즐기고 있을 수도 있고. 하지만 '이직이 쉽지 않다'는 말에 그 자리 모두가 동의한 것은 사실이다. 이건 중소기업이 아니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기저기서 50대면 벌써 퇴직해야 하나 눈치가 보인다는 이야기들이 적지 않게 들려오니까.


40대면 정말 젊은 나이다. 인생의 반절도 살지 않은 40대가 많은 나이 탓에 몸담은 조직에서 쉬이 벗어나질 못한다니. 불쑥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나도 그러면 어쩌지? 내가 돈 벌 줄 아는 방법이라곤 직장생활 하나밖에 없는데.


나이가 들어할 줄 아는 건 없고, 불만족스러운 현실을 꾹 참고 버텨야만 하는 지경에 이른다면? 그래서 '일'로서 얻을 수 있는 자아실현의 기회를 박탈당한다면? 그때의 나에게 주어질 새로운 기회가 있을까?

수많은 질문이 나를 덮쳐왔다.


물론 내가 다녔던 회사의 환경이 폐쇄적인 면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 더 극단적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나이에 대한 우리의 인식변화가 현실적인 개인의 생애주기 변화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요즘 40~60대를 보면 정말 나이를 분간하기 어렵다. 그만큼 사람들이 젊어지고 있고, 그들의 사회적 역할 또 달라지고 있다.


"우리나라 중위나이가 약 47세인데 우리의 역할에 대한 인식은 약 20년이나 뒤처져있다. 요즘 나이로 60세면 한창일 나이에 '이제 곧 죽을 건데 뭘 굳이 도전하나'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한다. 그들은 그런 의욕 없는 상태로 생각보다 아주 긴 세월을 살아가야 할 수도 있다."


얼마 전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에서 접한 한 강연영상에서 요약한 문장이다. 강사님은 자신의 나이에서 20살을 빼고 하루를 살아간다면 뭘 할 거냐고 사람들에게 물었다. 정말 일리가 있는 말이라 기억에 박혔다.

(출처를 밝히자면 김미경 강사님의 강연이었다.)


내가 퇴사한 이유가 바로 그거였다.

강사님의 말처럼 내 나이에서 20살을 빼면 나는 아직 초등학생이다. 그런데 벌써부터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일을 하면서 이미 그것에 생사가 걸린 듯, 나는 그 둥지에서 떠나길 두려워하고 있었다.


예전에 읽었던 책에서 소개한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다.

원숭이는 먹이를 구하기 위해 아주 작은 나무옹이에 손을 넣었고, 먹이를 꼭 쥔 손은 좁은 나무옹이에서 빠지지 않았다. 다른 방법으로 구할 생각을 하지 않고, 그 안의 먹이를 놓지 않은 원숭이는 끝내 죽는다.


원숭이처럼 이 생활을 놓지 못한 채, 월급이라는 먹이에 안주하며 살아갈 나. 그런 내가 나이 지긋한 어른이 되었을 그때를 상상해 보았다. 회사에서의 역할만이 내 능력이라고 믿고 살았을 내가, 그 집단에 속하지 않게 되었을 때 과연 뭘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안정적인 생활로 돈을 따박따박 모으라고 하지만, 이제 우리는 이전세대보다 더 긴 세월을 일해야 한다. 그렇다면 내 생계를 스스로의 가치와 능력이 아닌, 회사라는 조직에 의존하는 게 오히려 더 위험한 일 아닐까?


더욱이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님에도 '나 이만큼 열심히 일해요'를 어필하며 억지열정을 쏟아붓는 인생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 열정이 절대 오래가지 않으리라는 걸, 나는 이미 여러 번의 퇴사로 증명하고 있었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달리 생각하지 않는 자에게 새로운 세상은 없다.


일단은 자유의 몸이 되어보자.

회사에 다니면서는 스트레스에 절어 고민거리에서 도망치기 마련이고, 매달 통장에 꽂히는 월급이라는 안정감에 취해 이 문제를 덮어버릴지도 모르니까.


어쨌든 나는 밥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100세 시대'를 살아갈 우리가 앞으로 몇십 년을 더 일해야 할지 가늠할 수 없다. 그러니 나이가 들어도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 조금 벌어도 오래오래 내가 기쁨을 느끼며 성장할 수 있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다.



퇴사라는 선택으로 얻어낸 짧은 시간.

평소와는 조금 다른 생각, 새로운 각도의 시선으로 내 미래를 고민할 그 시간이, 나를 낯선 세상에 눈뜨게 할 수도 있다는 막연한 희망이 샘솟았다.


그렇게 인생의 방향을 스스로 정한 그 첫 순간에, 나는 사직서를 냈다.


그리고 그때 나는 몰랐다.

내 앞에 생각보다 더 소중한 깨달음과 그에 따른 커다란 파도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끝으로, 지금 이 순간 우리 모두가 자신의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어떤 체념이나 포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조용히 돌아보면 좋겠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나눠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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