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살이를 정리한다.

by 또는

올해 여름, 나는 뜨거운 여름보다 더 뜨거웠던 내안의 불덩이를 쓰기 시작했다.

작은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글쓰기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위로 받았으면 했던 누군가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회차를 더해가며 글을 써내려갈 때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위로 받았다는 것을.


그 위로가 도움이 되었던 건지 내안의 불덩이가 꺼진 것인지 여름이 끝나갈 즈음이 되자 글을 쓰기가 어려워졌다. 12년의 제주살이를 끝낼건지 말건지에 대한 나의 고민이 여름이 지나면서 더 가까워졌기도 했기 때문이다.

내인생에서 12년동안 한 곳에서 지낸 경우는 제주가 처음이었다. 반백살이 아직 안됐지만 나는 유년기와 청소년기, 결혼 전 까지 10년을 한 곳에서 지낸 경우가 잘 없었다. 그래서 누군가 고향을 물으면 어디라고 답해야 될지 잘 몰라 지금 부모님이 계신 곳을 말하면서도 나의 고향은 어디일까라는 고민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제주에서 이렇게 오래 살게 될줄은 몰랐다.

그저 신랑 직장따라 이주해 온 낯선 제주에서의 생활이 12년 동안 지내면서 이제는 다른 곳으로 간다는 게 더 어색해졌다.

그동안 이곳에서 알고 지낸 인연들이 육지로 떠나 갈때 마다 왠지 모를 남겨진 쓸쓸한 마음으로 인사했었는데 막상 내가 떠날 생각을 하니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어제는 내가 여기서 알고지낸 몇 안남은 인연중 가장 가깝게 지낸 지인이 마지막 인사를 하러 왔다. 아이들 나이도 같아서 함께 아이를 키우며 남편없이 혼자하는 독박육아도 쓸쓸하지 않았는데 그 친구가 간다고 하니 그동안 내가 보낸 이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함께 아이를 키우며 힘들때나 기쁠때나 함께 했던 시간들이 나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었던가. 서로의 힘듬과 아픔을 나누며 보낸 시간들이 다시 떠오르자 왈칵 눈물이 났다. 그 친구도 나도 그렇게 나눈 눈물 속에 우리는 알고 있었다. 서로의 슬픔과 아픔에 대해 그동안 다 말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얼마나 깊이 남아 있었는지.

내가 남아서 이 이별을 감당해야 했다면 앞으로의 겨울이 얼마나 더 시렸을까. 나는 아직 계약도 되지 않은 집을 정리해야만 했다.


제주에서 맞이했던 수많은 가을이 생각났다. 그 맑은 하늘과 설렘을 주던 선명한 공기가 떠나야 될것을 알고 맞이하자 전혀 설레지가 않았다.

봄이면 들판에 널린 고사리를 따러가고 뜨거운 여름엔 푸른 바다로 가을엔 1100도로를 따라 드라이브 했던 그길과 하얀눈과 맞이한 따뜻했던 겨울을 생각하면 나에게 제주는 선물이었다.

한때는 아파트에 살며 아이들 학교보내고 브런치 먹으며 학원정보를 얻고 주말엔 백화점 쇼핑하는 생활을 동경하기도 했다. 때맞춰 해외 여행도 가고 나를 위해 사치 부리는 삶이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나간 해외에서도 제주가 제일 좋다며 누가봐도 촌스러운 제주 찬양을 하고 있었다. 그랬던 내가 그렇게 좋던 제주에서의 삶이 함께하는 소중한 이가 옆에 없으니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


제주에 처음 왔을 때의 설렘이 다시 떠올랐다. 집을 보러오시는 분들의 설레는 모습에 그때의 내 모습이 생각났다. 이제는 헤어짐의 아쉬움만 남아있으니 그때의 설렘이 다시 새롭게 느껴졌다. 이별은 그때도 지금도 슬프긴 마찬가진데 말이다. 오늘 따라 맨발로 아름답게 춤추던 화사의 굿바이가 더 슬프게 느껴진다.


나의 찬란했던 가을과 선물같던 사계절을 함께 해준 국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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