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큰 산이었다.
나는 점술이나 미신을 그닥 믿지 않는 편이었으나 중요한 시험을 앞두거나 결혼을 앞두고 몇번 철학관에 갔었던 기억이 있다. 사주를 명리학적으로 해석한 철학관은 통계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으나 나는 학문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운명을 사주와 팔자로 구성해 분석해 놓은 것을 보면 단순히 미신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우주의 커다란 분석이 들어가 있는 느낌이다.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를 놓고 그 사람의 운명을 판단할 수 없겠지만 사람의 기질과 성향을 분석한 걸 보면 대체로 맞는 편이었다.
그때도 나는 임용시험을 앞두고 철학관에 갔었다. 내 이름이 사주와 맞지 않는다는 말을 그곳에서 처음 들었다. 이름의 탄생비밀을 그 곳 덕분에 알게 되었으니 나는 철학관 선생님의 말을 믿고 개명까지 했다. (이 얘기는 나중에 자세히 풀어볼 예정)
그때 나의 사주를 어찌나 자세히 풀어 주셨는지 (선생님께서 말이 많으신 편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당시 시험에 관한 얘기는 기억나지 않고 내가 큰 산이라고 하셨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라고 하면서 나무 하나가 땅속에 숨어 있었다고 하셨다. 그 나무가 신랑이었던 건지 확인할 순 없지만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철학관 선생님은 내 사주에 남편과 헤어진건 아닌데 매일밤 달을 보며 그리워 할 사주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부분은 소름이다. 뭐 그렇게까지 달을 보면서 그리워 한건 아니지만 남편이 옆에 없다는 의미는 맞았다. 그리고 남편이 필요한 순간도 많았다. 최근에도 나는 이 같은 얘기를 또 들어야 했으니 이 정도면 정말 나의 운명이랄까.
결혼하고 나서는 마치 숙명인것 처럼 나는 이 부분을 받아들이며 산 것 같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되는 것처럼 남편이 옆에 없다고 절대 외로워 하지 않고 나는 그렇게 씩씩하게 10년이 넘는 세월을 보냈다. 그렇게 지나고 보니 지금의 나의 생활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겼다.
주말부부는 3대가 덕을 쌓아야 된다며 남편 밥도 안차려도 되고 얼마나 좋냐는 부러움을 받기도 했다. 그들은 10년이 넘는 세월을 붙어 있었으니 떨어져 지내는 내가 부러웠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함에도 같이 지내는 부부들이 더 부러웠다.
최근에 갔던 철학관에서는 내가 큰산이고 남편은 계곡물이어서 내가 품어줘야 된다고 했다. 나는 어떠한 남자를 만나도 내가 큰산이기 때문에 품고 살아야 된다고 했다.
'이런 젠장, 새로운 남자를 만나도 품고 살아야 된다니 구관이 명관이다. 그냥 저 남자랑 살아야지'
어떻게보면 그런 얘기를 들어서 인지 오히려 내 삶을 받아들이게 되고 내려놓게 되는 부분도 생겼다. 내가 큰 산인데 그정도 계곡물 정도야 못받아줘서 되겠는가.
나는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스스로 하며 나의 인생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를 알고 내가 선택한 인생이 나를 결정하는 것, 그것이 나의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