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또 지랄이야!"
나는 또 그렇게 첫째에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첫째의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부딧히는 일이 종종 생겼다. 챙겨주면 챙겨준다고 짜증, 안챙겨주면 안챙겨준다고 짜증이니 내입에선 절로 지랄이라는 말이 입밖으로 나왔다.
참고로 나는 결혼 전 욕을 한번도 쓴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나마 초6이 되면서 좀 나아졌다고 느낄만큼 첫째는 뱃속에서 나온 이후부터 그렇게 울어댔다. 얼마나 울어댔으면 밤마다 달랜다고 동네 방네 돌아다닌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한번은 비오는날 달래러 나갔다가 뒤쫓아오던 엄마가 계단에서 미끄러진적도 있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아이의 울음이 주는 스트레스는 상상 이상이었다. 나는 온전히 감당할 에너지가 없었다.
첫째의 예민함은 나의 육아 강도를 높였고 나는 훈육의 문제라 생각하고 아이를 다그치고 혼내는 일이 많아졌다.
기질이라면 기질의 문제라 이렇게 예민한 아이는 친구와의 관계도 신경써야 됐고 학교생활도 잘하는지 항상 촉을 세워야했다. 학교 다니는 내내 나는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학교에 친한 친구가 없어도 내가 억지로 친구를 만들어 줄수도 없으니 아이가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들이었다.
그러다가 5학년이 지나서 였을까 아이가 여럿의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또래의 학교 친구를 지나가다 만나도 인사조차 못하는 아이였는데 어느날 갑자기 아이들과 게임도 하고 어울려다니기 시작했다. 아이의 변화가 조금 놀랍기도 했고 다행스럽기도 했다. 그냥 친구들과 잘 놀기만해도 더 이상 바라는게 없을 정도 였다.
그렇게 봄이 오나 싶었더니 아이에게 사춘기가 왔다.
나는 예전의 강도를 생각하면 사춘기야 뭐 아무것도 아니다 싶었다. 하지만 사춘기는 레벨업된 지랄병이었다. 아침에 깨울때부터 지랄병이 시작되니 나는 혼내기에만 급급했다.
요근래 들어 집 문제로 어디 물어보러 가는 일이 많아졌다. 저번에 철학관을 다녀온 뒤 이번엔 점집에 가기로 했다. 집나가는 시일을 정확히 맞췄다해서 반신반의하며 예약을 했다.
주소대로 찾아간 곳은 일반 가정집이었다. 간판도 없어 어디로 가야될지 모르고 있었는데 일반 가정집일줄은 생각도 못했다. 주방에서 일하시다가 방 한켠에 마련된 신당으로 들어오시면서 말하셨다.
"오늘 예약 잡으면 안되는데 깜박하고 잡았네. 오늘 아들 제삿날인데.."
웃으며 덤덤하게 얘기하시는 말에 어떠한 대답도 하지 못했다.
'아들 제삿날이라니..얼마나 마음 아프실까..'
나는 이것 저것 물어보다가 큰아이에 대해서 체념한듯 물었다.
"얘는 지 살길 잘 찾아 갈까요?"
"아직 어린데 잘 살고 말고가 어딨어?"
답해줄 말이 없다는듯 얘기하셨다. 아이가 예민해서 걱정이라고 한말에 그분은 이렇게 답하셨다.
"이제 아이가 사춘기라 머리도 커지고 몸도 커지면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울텐데 잘알려주고 다독여줘야지 그런말이 어딨어?"
한참을 혼났다. 나는 아이의 기질을 문제 삼았는데 그분은 그런 나의 태도가 잘못이라고 하셨다.
"내딸이 지금 살아있으면 자기랑 같은 나이야..나도 지금이면 잘 다독여주고 했을텐데 예전에 못해준게 마음에 걸려..나는 딸이 죽었다고 생각안해. .지금 저기 유럽 어디쯤 여행하고 있을려나..."
그분의 촉촉해진 눈가에 나도 눈물이 났다.
집에 와서도 계속 그말들이 생각났다. 아이에 대해 내가 너무 모르고 있었던건 아닐까 했다. 여전히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워했다. 평소의 나였으면 또 혼을 내야 직성이 풀렸겠지만 그분을 만나고 와서인지 아이를 혼낼 수가 없었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우는 아이 옆에서
다독였다. 아이를 만져주고 쓰다듬으며 괜찮다며 기다려주었다. 이건 아주 잠깐의 노력이었는데 혼자 방에 자주 있던 아이가 내옆으로 다가왔다. 집 어디에 있는줄도 몰랐던 아이가 내 옆에 붙어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이도 그동안 외로웠던거구나.'
혼자 있고 싶어서 안보이는 건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맨날 구박만 하고 혼내던 동생과 같이 게임도 해주는 자상한 누나가 되었다.
'이 또한 쉬운 일이었네..'
어렵게만 생각했던 문제들이 알고보니 너무나 쉬운 답을 가지고 있었다.
'사랑'
왜 우리는 알고 있어도 표현법을 몰라 그렇게 서로를 힘들게 했던걸까.
그분의 젖은 눈동자가 잊혀지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