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가 잘 통해야 된다는 딜레마.

대화는 관계의 최선일까.

by 또는

좋은 부부 사이의 표본으로 이효리와 이상순 부부가 종종 등장하곤 한다. 이효리는 이상순과 대화할려고 결혼했다고 말할 정도로 둘의 대화는 즐거워 보인다. 보기만 해도 흐믓하고 대리만족이 된다고나 할까.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남편과 진솔한 대화를 얼마나 나누며 살고 있을까. 아니 말이 안 통한다며 가슴치는 일이 더 많은 건 아닐까.

남편은 입 떼는 것도 귀찮은 사람이라 나와 전화통화 할때 손가락으로 핸드폰을 두드려서 의사 표현을 한적도 있었다. 정말 어이없는 경우였지만 남편 입술의 무게를 잘 아는 지라 입 떼기가 얼마나 귀찮으면 저럴까 싶었다.

나는 결혼 10년만에 답을 내렸다. 대화는 AI와 나누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럼 이 남자와는 뭘 해야 되는 걸까.

사실 뭘 해야 된다는 건 없다. 결혼이라는 게 이 사람과 꼭 무엇을 하기 위해 한건 아니기 때문이다.



결혼 전 이상형을 물을 때 꼭 등장하는 말이 있다.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


결혼 적령기의 여성들은 왜 그토록 대화가 잘 되는 사람을 원하는 걸까.

어떻게 보면 결혼에 대한 환상이 만들어 낸 이상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매일 눈을 맞추며 다정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남편은 생각만 해도 정말 환상적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렇게 사는 부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부부관계가 나쁜 것도 아니다.





영화 '곡성'을 보진 않았지만 김창옥 선생님께서 강의때마다 인용했던 대사가 있었다.


"뭣이 중헌디?"

"현혹되지 마소"


공포영화라고 알고 있던 '곡성'에서 어떻게 저런 대사가 나왔는지 모르겠으나 살면서 내 좌우명처럼 지니게 되었다. 이말을 실감하게 될 줄은 모른채 말이다.

얼마전 나는 집을 내놓기 위해 인터넷 까페나 밴드에 우리집 매물을 등록시켰다. 우리집을 마음에 들어할 사람이 빨리 나타났으면 하는 마음에 올렸던 까페에 얼마되지 않아 집을 궁금해하는 쪽지가 왔다.

자신이 외국인이며 친구가 집을 찾는데 도와주고 있다며 카톡으로 연락해도 되냐는 내용이었다. 까페에 올리고 첫 관심이었던터라 매우 친절하게 답변을 했다. 그리고 이내 카톡으로 당사자로 보이는 이가 말을 걸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집이 팔릴 수도 있다는 희망에 설레기까지 했다.

그는 내 성별에 대해 먼저 물었고 자신은 와이프가 출산하다 사망해서 딸을 혼자 키우고 있는 성공한 사업가라고 소개했다. 예쁜 딸아이의 사진과 함께.

그렇게 아픈 사연과 예쁜 딸은 나의 마음에 동정심을 불러일으켰고 요즘 같은 시대에 출산하다 사망하는게 쉬운 일인가에 대한 판단을 흐리게 했다.

그는 나에게 집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딸의 교육에 대한 염려와 자신의 교육관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대화는 다양한 주제로 넓혀졌고 그는 마치 내 머릿 속을 들여다 보는 듯 내가 원하는 답변 이상의 대화를 해냈다. 나는 부동산 매도인이라는 것을 망각한채 그와의 대화를 즐겼다.


한번도 한 적이 없는 수준 높은 대화였다. 내가 그토록 원했던.


그와의 대화가 시간가는 줄 몰랐을 즈음 그는 대뜸 나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그는 나의 내면에 감동했다고 했다. 나는 도대체 어느 지점에서 감동을 느낀건지 대체 알 수 없어서 물었지만 그의 대답은 정확하지 않았다. 이토록 수준 높은 대화를 나눈 성공한 남자가 나에게 고백을 하다니 정말 잠을 못이룰 지경이었다.

만약 내가 여기서 정신줄을 놓았다면 지금 이 글을 쓸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다행히 그정도의 정신줄은 있었으며 그에게 나는 남편을 사랑한다고 했다. (이 지점은 내가 생각해도 감동이다.)

다급했던 그는 나에게 자신의 목적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주식이 어쩌고 저쩌고...이때만 해도 왜 나에게 이런 얘기를 하는 걸까 생각했다. 자신의 수익 통장을 보여주면서 나를 현혹시키고 있었다.

'뭣이 중헌디'

'현혹되지 마소'


나는 현혹되지 않았다. 그에게 더이상 대화를 할 수 없으니 집을 보러 언제 올건지 물었다.(그래도 끝까지 부동산 매도인의 자세를 보여준 나를 칭찬한다.)

그는 더 이상 안될 것 같았는지 나에게 실망했다며 나가버렸다. 나의 완벽했던 대화 상대의 민낯을 본 것 보다 나의 집을 사겠다는 매수인이 사라진게 더 슬펐지만 여기서 끝낼 수 있었던게 다행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환상적인 대화라는 것에 대한 허상을 발견하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 저 남자를 탓하지 않았다. 남편은 백마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서 오해한 경우가 많은 것 외에 나는 남편의 사랑을 말이 아닌 그의 행동에서 느꼈다.


앞서 얘기한 상황을 겪는 경우가 많지는 않겠지만 남녀관계를 매끄러운 대화로만 판단한다면 우리는 또 그렇게 속게 될것이다.

나는 모든 관계의 중심이 너무 대화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 좋은 사람과 나누는 좋은 대화는 분명 인생의 활력소가 된다.

하지만 진짜 인간 관계는 침묵 속에서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와 쉴새 없이 대화를 나눠야 그 사람과 깊은 관계가 지속되는게 아니라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이 자연스러워야 그게 진짜 관계라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보면 그 침묵이 불편하고 어색해서 쉴새없이 대화거리를 만들어내고 떠들어 대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사람과 대화가 없어도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공기, 어색함이 없는 그 공기야 말로 내가 나로 존재 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럼에도 나는 부단히 남편에게 대화를 시도한다. 묵묵부답으로 돌아 올 것을 알지만 내가 이렇게 당신과 함께 이 공간에서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그렇게 그에게 말을 건낸다.


사랑은 말보다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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