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가 갱년기에 대해 정의할 수 있는가
자궁수술을 하고 생리를 하지않게 되자 엄마는 갱년기를 걱정했다. 난소도 그대로 있고 호르몬도 정상적인데 생리를 하지않으니 폐경이라 생각하고 자연히 갱년기와 연관지어 진 것이다. 내가 아는 갱년기는 얼굴에 열이 올라 화끈거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우울감이 드는 것이라 들었는데 그것만 놓고 보면 화병과 별다를 것 없는 것이었다.
얼마 전 나는 그 비슷한 증상을 겪긴 했다. 어느 한 부분에서 남편에게 서운함이 꽂혔는데 그게 몇 날 며칠을 가면서 그동안 쌓였던 설움이 한꺼번에 밀려왔었다. 나조차도 감당하기 버거운 감정이었다. 서러운 감정에 북받쳐 잠도 오지 않았다. 나는 며칠동안 남편에게 감정을 토해 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남편도 고생한다며 위로했지만 회복되지 않았고 나의 감정상태가 반복되자 남편도 자기도 힘들다며 받아주지 않았다. 나는 나대로 힘들었고 남편은 남편대로 힘들어했다. 나의 힘듬을 보고도 외면하는 남편을 보니 더 화가 났다. 풀리지 않는 마음을 어떻게 할수가 없었다. 자다가도 몇번을 깨야했다.
그렇게 몇번을 뒤척이다 신랑도 깨고 나도 깼다.
새벽 4시가 조금 넘은시각. 나는 다시 잠에 들수 없어 그길로 나왔다. 그시각에 나온 건 처음이었다.
깜깜하고 아무도 없는 거리. 까맣다 못해 안개까지 뿌옇게 끼어있었다. 여기서 누가 하나 죽어도 모를 것 같은 그 길을 차를 가지고 달렸다. 익숙한 바다길도 새벽길은 적막하고 낯설기만 했다. 좀 더 해안도로로 나가 보았다.
세상에..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안개가 끼여 더 어둡고 무서웠다. 반은 놀라기도 하고 반은 무서웠다.
이 시간의 바다의 모습이 이렇구나..
물귀신이 나의 우울함을 다 가져가길 바랬다.
나는 도대체 이시간에 왜 여기를 헤매고 있는 걸까..다시는 나오지 않겠다 다짐했다. 내가 이 시간에 나온 이유는 남편에게 보란듯이 조용한 저항 같은 거였다.
해가 뜨고 들어간 집은 조용했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그렇게 한 숨 자고 일어나니 남편이 설겆이를 해놨다. 새벽의 가출이 효과가 있었던 걸까.
남편을 데려다 주는 길에 조용히 얘기하기로 했다. 나의 예상과 다르게 말이 나오긴 했지만 내 생각을 얘기해야 했기에 내가 느낀 감정들에 대해 얘기했다. 남편은 말이 없었고 나는 내 얘기를 이해했는지 묻지않았다.
그렇게 긴 침묵이 흐르고 난 뒤 밤이 되서야 도착한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약간의 걱정이 담긴 염려스러운 목소리였다.
몸이 어디가 안 좋은 건 아닌지 나에게 물었다.
도대체 저 여자가 왜 저러는지 알길 없는 그 남자는 마음이 아픈건지도 모르고 몸이 아픈지 물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평소 표현이 없는 남편의 그 한마디는 며칠 동안의 해묵은 감정을 다 녹아내려 버렸다.
'아 이거 였구나'
내가 그동안 방황한 감정의 이유.
그 남자가 알아주기만 했는데 기다렸다는듯 기분이 나아졌다.
그 물귀신은 남편의 따뜻한 말한마디였다.
나는 알게 되었다.
갱년기는 약이 아니라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갱년기가 아니라 화병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