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철학은 나와 맞지 않다.
"좀 약게 살아라"
엄마와의 통화 끝에 들은 말이다.
나는 기분좋게 전화했는데 또 통화 끝에 이상한 찝찝함이 밀려왔다. 엄마는 참 희한한 재주가 있었다. 엄마와 통화하면 꼭 이렇게 기분이 찝찝해진다.
한번 생각해보았다. 나는 이말에 왜 기분이 찝찝해졌을까.
'약게 살아라니...'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약게 살지 못해 이 말에 반응했다는 것을.
엄마는 밖에 나가서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면 기분이 안좋다고 했다. 나는 결혼 전 친정집에 살면서 엄마의 그런 모습을 종종 보았다.
'뭐 조금 손해를 볼 수도 있지 그게 그렇게 기분이 나쁠 일인가'
내 생각과 다르게 엄마는 동전 몇 푼이라도 깎아야 했다.
시장에서도 할머니들과 가격흥정을 했고 더 대단하다고 느낀 건 백화점에서도 깎았다.
'세상에..백화점에서도 깎는 사람은 엄마 밖에 없을꺼야..'
나는 정찰제인 줄만 알았던 백화점에서 엄마에게 할인해 주는 걸 보고 엄마가 대단한 건지 직원이 대단한 건지 헷갈릴 정도 였다.
그나마 다행인건 엄마의 일관적인 모습이었다. 만약 시장에서 그렇게 깎고 백화점에서 있는 척 돈을 썼다면 나는 엄마에게 실망했을 것이다.
엄마는 분명 자신이 좀 더 이득 본것에 뿌듯해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엄마를 보고 '왜 저렇게 힘들게 살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그렇게 흥정을 할려면 엄마의 에너지와 감정도 그만큼 써야될텐데.
나도 그때는 결혼 전이라 몰랐다. 하지만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살고 보니 엄마의 그런 억척스러움이 이해는 갔다. 엄마는 자식 네명을 키워야 했으니 엄마의 체면과 감정소모보다 한푼이라도 더 아끼는게 기쁨이었을테니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엄마는 그렇게 손해보지 않고 살았음에도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매일 달리면서 기부하는 션이 더 행복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엄마가 나에게 약게 살아라고 말한 의도는 딸이 자기것 잘챙기며 야무지게 살길 바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특히나 요즘 처럼 자신을 잘가꾸고 야무지게 사는 여인들이 얼마나 또 많은가. 나는 태생이 여우보다는 곰에 가깝고 약아빠진 여우보다 곰을 더 좋아한다. 사람들이 곰에 더 친근함을 느끼는 것도 이러한 이유가 아닐까. 나는 곰이 왜 부정적으로 사용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엄마의 소원이 그것이라면 약게 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손해보며 사는게 삶이 더 풍요롭다는 말을 믿고있다. 손해보지 않겠다는 마음을 품고 살면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게 되는 상황이 오면 견디기 힘들것이다. 누군가에게 사기당하고 뒷통수 맞는게 아니라 너그러이 조금 손해보더라도 좋은 감정을 가지고 사는게 삶이 더 풍요로울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건 사실상 손해가 아니라 더 큰 나눔으로 돌아올 것이다.
가진게 없어도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을 내어 줄수 있는것, 그게 행복을 지켜주는 일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