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정신분석, 왜 내 삶에 들어왔을까

by 홍종민

운명의 설계도, 그 너머를 보다


나는 15년째 사주명리학을 연구하는 상담가다.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이 스물두 개의 기호로 인간의 타고난 기질과 운명의 흐름을 읽어낸다. 목생화, 화생토, 토생금, 금생수, 수생목. 오행의 상생상극 원리는 우주의 섭리를 담은 정교한 체계다. 나는 이 동양의 오랜 지혜가 얼마나 정확하고 과학적인지 매일 경험한다.

하지만 상담실에서 수천 명을 만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사주팔자가 보여주는 운명의 설계도는 분명 존재하지만, 그것을 현실로 구현하는 데는 또 다른 차원의 무언가가 작동한다는 것을. 마치 건축 설계도가 완벽해도 시공 과정에서 수많은 변수가 생기는 것처럼.

2019년 11월, 한 내담자와의 만남이 전환점이 되었다. 서른셋의 대기업 마케팅 팀장. 그녀의 사주는 훌륭했다. 식상생재(食傷生財) 구조에 관성(官星)이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재능을 발휘해 부를 창출하고, 사회적 지위도 얻을 수 있는 구조였다. 실제로 그녀는 커리어적으로 성공했다.

"선생님, 제 사주대로라면 저는 행복해야 맞는데, 왜 이렇게 공허할까요?"

나는 그녀의 대운과 세운을 다시 살폈다. 역시나 순조로웠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깊은 우울이 서려 있었다. 그때 그녀가 덧붙였다.

"제 쌍둥이 언니는 평범한 주부인데 저보다 훨씬 행복해 보여요. 같은 사주인데 왜 이렇게 다를까요?"


사주가 보여주지 못하는 것


그 질문이 나를 새로운 탐구로 이끌었다.

사주명리학은 인간의 선천적 기질과 운의 흐름을 정확히 포착한다. 하지만 왜 어떤 사람은 자신의 좋은 사주를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는가? 왜 어떤 사람은 어려운 사주를 가지고도 그것을 극복하고 성장하는가?

나는 상담 기록을 다시 들춰봤다.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 CEO의 사례가 있었다. 그의 사주는 형충파해(刑沖破害)가 심했다. 전형적인 파란만장한 인생의 구조다. 실제로 그는 세 번의 사업 실패를 겪었다. 하지만 네 번째 도전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실패할 때마다 오히려 더 강해졌어요. 사주의 충(沖)이 저를 부수는 게 아니라 단련시킨 거죠."

반대로 완벽한 사주를 가진 한 청년은 10년째 공시생이었다. 문창귀인(文昌貴人)에 학당귀인(學堂貴人)까지 갖춘, 시험운의 끝판왕이었다.

"부모님이 제 사주를 보고 무조건 공무원이 되라고 하셨어요. 근데 전 사실 공부가 싫어요."

그제야 보였다. 사주는 가능성의 지도를 보여주지만, 그 지도를 따라 걷는 것은 그 사람의 내면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내면에는 사주가 포착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무의식이라는 미지의 영역


상담을 하다 보면 자주 마주치는 순간이 있다. 내담자가 갑자기 침묵에 빠지는 순간이다. 사주 해석을 듣다가 불현듯 먼 곳을 바라보며 멍해지는 그 순간.

한 40대 남성이 기억난다.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늘 불안에 시달렸다. 그의 사주는 비겁(比劫)이 강하고 재성(財星)도 왕성한, 전형적인 사업가형이었다.

"당신의 사주는 독립적이고 추진력이 강합니다. 재물운도 좋고요."

그가 갑자기 말했다. "아버지도 그런 사주였나요?"

"아버지 사주를 보지 않아서..."

"아버지도 사업을 하셨어요. 그리고 실패하셨죠. 저는 아버지보다 성공했지만, 왜 똑같은 불안을 느낄까요?"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사주가 보여주는 운명의 패턴 뒤에는 대물림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가족의 역사, 상처,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전해지는 두려움들.

또 다른 사례도 있었다. 50대 여성이었는데, 인성(印星)이 과다한 사주였다. 명리학적으로 어머니의 영향이 강한 구조다.

"어머니가 늘 저를 보호하려 하셨어요. 그게 숨막혔는데... 이상한 건 제가 제 딸에게 똑같이 하고 있다는 거예요."

사주는 이런 패턴을 보여주지만, 왜 그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마치 병명은 알지만 병의 원인을 모르는 것처럼.


우연한 발견


2018년 겨울, 나는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상담을 하면 할수록 한계를 느꼈다. 사주로 문제를 진단할 수는 있지만, 해결책을 제시하기는 어려웠다. "용신(用神)을 보하세요", "수(水) 기운을 강화하세요" 같은 처방은 너무 추상적이었다.

어느 날 새벽, 잠이 오지 않아 서점을 배회하다 한 권의 책을 발견했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었다.

"꿈은 무의식으로 가는 왕도다."

이 문장이 나를 사로잡았다. 무의식.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마음의 영역. 혹시 이것이 사주가 포착하지 못하는 그 무언가가 아닐까?

나는 정신분석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프로이트가 말하는 무의식의 작동 방식이 사주명리의 원리와 묘하게 닮아 있었다.

압축(condensation) - 하나의 천간이 여러 의미를 동시에 담는 것 전치(displacement) - 운의 흐름에 따라 같은 기운이 다르게 발현되는 것
상징화(symbolization) - 오행이 구체적 현실로 나타나는 것

'동양과 서양이 다른 언어로 같은 것을 말하고 있구나.'


정신분석과의 만남


2019년 1월, 나는 정신분석 스터디 모임에 참여했다.

"저는 사주명리 상담가입니다. 동양의 운명론과 서양의 정신분석을 통합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사람들이 신기하게 쳐다봤다. 진행자인 K 박사가 물었다.

"사주로 무의식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주는 무의식의 구조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천간은 의식의 영역, 지지는 무의식의 영역처럼요. 하지만 그것을 해석하고 변화시키는 도구가 부족했습니다."

K 박사가 흥미롭게 고개를 끄덕였다.

매주 목요일, 나는 프로이트, 융, 라캉을 공부했다. 특히 라캉의 이론이 인상적이었다.

"무의식은 타자의 담론이다."

이것은 사주에서 말하는 선천적 기질이 어디서 오는지 설명해주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의 무의식, 가족의 역사, 문화적 코드를 물려받는다. 사주팔자는 그것의 결정체일지도 모른다.


두 세계를 잇다


공부가 깊어질수록 연결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는 의식과 무의식의 구조와 같았다. 천간은 겉으로 드러나는 성격과 행동이고, 지지는 숨겨진 욕망과 동기다. 지장간(地藏干)은 전의식, 즉 억압되었다가 특정 운에서 튀어나오는 콤플렉스였다.

**형충파해(刑沖破害)**는 단순히 흉한 것이 아니라 무의식의 갈등이 표면화되는 계기였다. 충(沖)은 억압된 것과 억압하는 것의 충돌, 형(刑)은 초자아와 이드의 갈등으로 읽을 수 있었다.

**대운(大運)**은 프로이트가 말한 발달 단계와 유사했다. 10년마다 바뀌는 대운은 인생의 과제가 바뀌는 시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제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그 사람의 무의식적 준비 상태에 달려 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용신(用神) 개념이었다. 사주의 균형을 맞추는 핵심 오행인 용신은,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결핍'과 통했다.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우리를 가장 성장시킨다.


통합 상담의 시작


2019년 여름, 나는 조심스럽게 두 가지를 결합한 상담을 시작했다.

한 30대 여성이 찾아왔다. 결혼을 앞두고 불안해하고 있었다. 사주를 보니 올해 천을귀인(天乙貴人)이 들어와 좋은 인연을 만날 운이었다.

"사주로는 좋은 시기입니다. 하지만 불안하신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그녀가 놀랐다. "어떻게 아셨어요?"

"당신의 월지(月支)에 강한 비겁(比劫)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형제자매와의 경쟁이나 갈등이 있었을 것 같은데, 혹시 그것과 관련이 있나요?"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남동생이...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했어요. 전 늘 양보해야 했고... 지금 결혼하려는 사람도 막내라서..."

사주는 패턴을 보여주고, 정신분석은 그 패턴의 원인을 찾아준다. 나는 두 가지를 함께 사용하기 시작했다.


저항과 돌파


모든 내담자가 이런 통합 접근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전 그냥 제 운세가 궁금한 건데요."

"언제 결혼하는지만 알려주세요."

"복잡한 심리 이야기는 필요 없어요."

하지만 진짜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은 달랐다.

한 40대 CEO가 기억난다. 그는 비겁이 강한 사주로, 독립심이 강하고 고집이 센 성격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부인에게 의존적이었다.

"사주와 현실이 다른 이유를 찾아보겠습니다. 어머니와의 관계는 어떠셨나요?"

그가 경직됐다. "그게 사주와 무슨 상관이죠?"

"당신의 비겁은 독립을 원하지만, 무의식은 의존을 원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거나, 정서적으로 부재하셨나요?"

그가 놀란 눈으로 나를 봤다.

"어머니가 제가 다섯 살 때 돌아가셨어요. 어떻게..."

"사주의 인성(印星)이 극파(剋破)되어 있고, 그것을 비겁으로 과도하게 보상하려 합니다. 겉으로는 독립적이지만 내면은 돌봄을 갈구하고 있습니다."

그날 상담은 3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사주 상담이 아닌 일종의 정신분석적 탐구였다.


새로운 발견들


1년 동안 통합 상담을 하면서 놀라운 패턴들을 발견했다.

상관(傷官)이 강한 사람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 자기표현이 억압된 경험이 있었다. 상관은 창의성과 반항의 에너지인데, 이것이 억압되면 우울이나 신체화 증상으로 나타났다.

편인(偏印)이 강한 사람들은 어머니와의 애착 문제를 겪는 경우가 많았다. 편인은 일반적이지 않은 어머니상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불안정 애착으로 이어졌다.

칠살(七殺)이 강한 사람들은 권위자와의 갈등이 반복됐다. 하지만 정신분석을 통해 보니, 그들이 싸우는 것은 외부의 권위가 아니라 내면화된 아버지상(father figure)이었다.

사주는 증상을 보여주고, 정신분석은 원인을 밝혀준다. 두 가지가 만날 때 진정한 이해가 가능했다.


전환점


2020년, 코로나가 터졌다.

대면 상담이 어려워지면서 온라인으로 전환했다. 의외로 이것이 전화위복이 됐다. 화면 너머의 거리감이 오히려 내담자들을 더 솔직하게 만들었다.

한 내담자가 말했다. "선생님, 사주만 보는 곳은 많은데 이렇게 깊이 들어가는 곳은 처음이에요."

나는 더 깊이 공부했다. 융의 그림자 이론은 사주의 기신(忌神) 개념과 통했다. 우리가 거부하는 부분이 오히려 우리를 완성시킨다. 클라인의 대상관계 이론은 육친(六親) 관계를 새롭게 보게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깨달음은 이것이었다:

사주팔자는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살아내는 방식은 바뀔 수 있다. 같은 상관(傷官)을 가지고도 누군가는 예술가가 되고, 누군가는 반항아가 된다. 그 차이는 무의식이 그 에너지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통합의 길


2021년, 나는 상담 방식을 완전히 바꿨다.

첫 상담에서는 사주 분석과 함께 생애사를 듣는다. 태어난 순간부터 현재까지, 사주의 운이 어떻게 현실에서 펼쳐졌는지 추적한다.

두 번째 상담에서는 무의식의 패턴을 탐색한다. 반복되는 실패, 관계의 어려움,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들. 이것들이 사주의 어떤 구조와 연결되는지 찾아낸다.

세 번째 상담부터는 통합적 접근을 시작한다. 사주가 보여주는 가능성을 현실화하기 위해 무의식의 장애물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예를 들어, 재성(財星)이 강하지만 돈을 모으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사주로는 재물운이 좋은데 왜 그럴까? 정신분석적으로 보면, 돈에 대한 무의식적 죄책감이나 성공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수 있다.

"아버지가 사업 실패로 고생하시는 걸 봐서... 돈을 많이 벌면 불행해질 것 같아요."

이런 무의식적 신념이 좋은 재물운을 막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의식화하고 재해석할 때, 비로소 사주의 가능성이 현실이 된다.


사례: 쌍둥이 자매


그 쌍둥이 자매가 다시 찾아왔다. 2년 만이었다.

"선생님, 그때 답을 못 주셨잖아요. 지금은 아시나요?"

"네,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나는 천천히 설명했다.

"같은 사주를 가져도 다른 삶을 사는 이유는 무의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태어난 순서, 부모의 기대, 초기 경험의 차이가 다른 무의식을 만듭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언니는 첫째로서 책임감과 부담을 짊어졌고, 동생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웠겠죠. 같은 식상(食傷)의 에너지를 언니는 성취로, 동생은 즐거움으로 사용하게 된 겁니다."

동생이 끼어들었다. "맞아요. 언니는 늘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어요."

"사주는 같은 악기를 주지만, 연주하는 사람의 마음이 다르면 다른 음악이 나옵니다. 언니는 의무의 음악을, 동생은 자유의 음악을 연주한 거죠."


운명과 자유


이제 나는 내담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주팔자는 당신에게 주어진 조건입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이죠.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당신의 자유입니다."

한 청년이 물었다. "그럼 운명은 정해진 건가요, 아닌가요?"

"운명은 가능성의 지도입니다. 서울에서 부산 가는 길이 여러 개 있듯이, 같은 사주도 여러 방식으로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에서 출발해서 뉴욕에 도착할 수는 없죠. 그것이 사주의 한계입니다."

"그럼 자유의지는요?"

"자유의지는 주어진 조건 안에서 최선을 선택하는 능력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의 족쇄에 묶여 자유의지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정신분석이 필요한 겁니다."


새로운 시작


2022년, 나는 '마음과 운명 상담소'를 열었다.

간판에는 이렇게 적었다. '사주명리와 정신분석의 통합 상담'

처음엔 반응이 미지근했다. "너무 복잡한 거 아니에요?" "그냥 운세만 봐주세요."

하지만 진짜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왜 제 사주대로 살지 못하는지 알고 싶어요." "좋은 운이 와도 불안한 이유를 찾고 싶어요." "사주의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고 싶어요."

한 내담자가 6개월간의 통합 상담을 마치고 말했다.

"이제야 제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아요. 사주는 제 뼈대를 보여주고, 정신분석은 제 마음을 보여주네요. 둘 다 저잖아요."


동양과 서양의 다리


나는 이제 두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를 놓는 사람이다.

동양의 사주명리학은 인간의 타고난 기질과 운명의 흐름을 보여준다. 하지만 왜 그 운명대로 살지 못하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서양의 정신분석학은 무의식의 작동을 밝혀준다. 하지만 개인의 타고난 성향과 시기별 변화는 포착하지 못한다.

두 가지가 만날 때, 비로소 온전한 인간 이해가 가능하다.

천간지지 여덟 글자는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해석하고 살아내는 방식은 바뀔 수 있다. 억압된 상관(傷官)을 창의성으로, 과도한 비겁(比劫)을 건강한 자존감으로, 충(沖)의 갈등을 성장의 기회로.

이것이 내가 걸어온 길이다. 사주명리 15년, 정신분석 6년. 두 세계를 넘나들며 깨달은 것은 이것이다.

운명은 정해져 있지만 자유롭게 살 수 있다.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진실이다. 우리는 주어진 조건(사주) 안에서 최선의 선택(자유의지)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선택이 진정 자유로우려면, 먼저 우리를 묶고 있는 무의식의 사슬을 알아야 한다.


본 사례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일부 수정되었으며, 실제 상담 내용의 본질은 유지하되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이름,나이,직업등 정보는 변경되었습니다.


해담 사주 명리 상담 : 네이버 엑스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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