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by 홍종민

두 개의 거울 앞에서


2019년 늦가을, 나는 서울 강남의 한 정신분석 세미나실에 앉아 있었다. 15년차 사주상담가로서 처음 참석한 정신분석 입문 강좌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대부분 심리학과 학생들이거나 정신과 레지던트들이었다. 나는 내가 그곳에 있는 것이 어색하면서도, 동시에 운명적이라고 느꼈다.

"무의식은 타자의 담론이다."

강사가 라캉의 유명한 명제를 칠판에 적었을 때, 나는 전율했다. 그것은 마치 내가 15년간 사주를 통해 읽어왔던 '하늘의 언어'가 다른 방식으로 번역되는 순간이었다. 사주팔자에서 읽어내는 운명의 기호들과, 정신분석에서 해독하는 무의식의 언어들이 어딘가에서 만나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해왔던 일의 의미가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다.


운명을 읽는다는 것


사주상담실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절박하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요?" "이 고통이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내 운명은 정해진 건가요?"

15년간 수천 명의 사주를 봐오면서, 나는 점점 더 깊은 의문에 빠져들었다. 같은 사주를 가진 사람들이 왜 이토록 다른 삶을 사는가? 운명이 정해져 있다면, 상담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그들의 사주에서 읽어내는 것과 그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삶 사이의 간극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어느 날, 한 내담자가 물었다. "선생님, 제 사주에는 부모와의 인연이 박약하다고 나와 있는데요, 저는 부모님을 너무 사랑합니다. 이건 어떻게 설명하시겠어요?"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녀의 사주에서 읽어낸 '박약한 부모 인연'과 그녀가 느끼는 '사랑'이라는 감정 사이에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사주 해석의 오류가 아니었다. 오히려 인간 존재의 복잡성, 운명과 자유의지 사이의 긴장, 그리고 무의식이라는 미지의 영역에 대한 질문이었다.


두 세계를 잇는 다리


정신분석을 공부하면서, 나는 놀라운 발견을 했다. 사주명리학에서 말하는 '선천적 기질'과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무의식적 구조'가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것을 가리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었다.

동양에서는 음양오행의 기(氣)로, 서양에서는 리비도와 욕동으로. 동양에서는 천간지지의 조합으로, 서양에서는 시니피앙의 연쇄로. 두 체계는 전혀 다른 문화적 토양에서 자라났지만, 인간의 마음과 운명을 이해하려는 같은 열망을 품고 있었다.

이 책은 그 두 세계를 잇는 다리를 놓으려는 한 상담가의 여정이다. 15년간 사주상담가로 살아온 내가 정신분석을 만나면서 겪은 혼란과 깨달음, 의심과 확신, 그리고 통합의 시도들을 담았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묻고 싶다. 운명은 정해진 것인가, 만들어가는 것인가? 사주팔자의 기호들과 무의식의 언어들은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고통받는 한 인간을 이해하고 돕는 데 있어 동양의 지혜와 서양의 통찰은 어떻게 협력할 수 있는가?

이것은 단순히 두 학문을 비교하는 책이 아니다. 한 인간으로서, 상담가로서, 구도자로서 걸어온 길에 대한 고백이며,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모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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