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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면 미룰수록 깊어지는 수렁

라캉의 욕망 이론과 터널링의 심리학

by 홍종민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내 안의 센서가 깨어난다. '오늘 뭐부터 해야 하지?' 더듬이가 꿈틀거린다. 어제 못한 일, 그제 미룬 일, 지난주부터 밀린 일. 온몸의 레이더가 돌아간다.

이메일함을 열면 안 읽은 메일이 수백 개다. '급한 것만 봐야지.' 촉수가 활발하게 작동한다. 이건 나중에, 저건 주말에, 이것도 다음 주에. 탐색 시스템이 쉬지 않고 작동한다.

그런데 이상한 건, 주위를 보면 너나없이 다들 이렇게 산다는 거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내일 할 일을 모레로. 끊임없이 밀려난다. 멈출 수가 없다.

왜 그럴까?

시간은 공기와 같다. 공기 없는 곳에서 숨 쉬고 살라는 격이다. 그래서 우리는 빌린다. 오늘의 시간을, 내일에게서. 알고리즘이 있다. 지금 당장의 불을 끄는 게 먼저다. 미래의 불? 그건 나중에 생각하면 된다.

신호등 시스템처럼 작동한다. 빨간불이 켜지면 무조건 멈춰야 하고, 초록불이 들어오면 무조건 가야 한다. 지금 당장 방세가 밀렸다면? 카드 현금서비스를 받는다. 오늘 회의 자료가 없다면? 다른 일을 제쳐두고 그것부터 만든다.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돌아간다.

편견일 수도 있지만, 편견일지라도 이런 메커니즘이 있어야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다. 우선순위를 정하고, 급한 불부터 꺼야 생존이 가능하다. 최소한의 선택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잠깐.

다만 부작용도 있다. **내가 보기엔 부작용이 더 많다.**

오늘 꺼진 불은 내일 더 큰 불이 되어 돌아온다. 오늘 미룬 이메일은 내일 더 많은 이메일이 되어 쌓인다. 오늘 빌린 돈은 내일 더 큰 빚이 되어 목을 조른다.

바로 이게 현실이다.

센딜 멀레이너선이라는 행동경제학자가 그의 저서 『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서 이걸 '터널링'이라고 불렀다(멀레이너선 & 샤퍼, 2025: 197). 터널 안에 갇힌 사람은 터널 안의 것만 본다. 지금 당장의 문제, 오늘의 급한 불, 눈앞의 위기. 그것만 보인다. 터널 밖의 것? 보이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지금 당장의 급한 불을 끄는 데만 집중한다는 거다. 월세가 밀렸으면 부모님께 손 벌리거나 카드 현금서비스를 받는다. 카드값이 나왔으면 다른 카드로 돌려막기를 한다. 다음 달은? 그때 가서 생각한다.

왜 이자가 그렇게 높은 대출을 받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지금 당장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급하다고. 장기적으로 더 큰 빚이 되는 건 나중 문제라고.

그 사람이 잘못한 게 아니다. 터널 안에서는 그게 정답이다. 급한 불을 끄는 게 먼저고, 빠르고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게 최선이다. 터널 밖의 장기적인 문제? 그건 추상적인 어떤 것일 뿐이다.

주위를 보면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침마다 출근 준비하느라 허둥지둥 뛰는 사람. 어제 밤 술 마시느라 일찍 못 잤다. 그래서 아침에 못 일어났다. 그래서 지각이다. 내일? 내일은 일찍 자야지. 하지만 오늘 밤에도 술을 마신다. 왜? 오늘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내일의 지각보다 오늘의 스트레스 해소가 급하니까.

프로젝트 마감일을 맞추지 못하는 사람. 한 달 전에 시작했어야 하는데 미뤘다. 2주 전에 시작했어야 하는데 또 미뤘다. 일주일 전? 여전히 다른 급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마감 전날 밤. 밤을 새운다. 품질? 형편없다. 다음엔 미리 하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다음 프로젝트도 똑같다. 왜? 매번 지금 당장의 다른 급한 일이 있으니까.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 이번 달 카드값을 내려면 다음 달 생활비를 빌려야 한다. 다음 달 생활비를 갚으려면 그다음 달 카드값을 못 낸다. 무한 반복. 빠져나올 수 없다.

그런 이유일까.

주위를 보면 명확해진다. 터널링에 빠진 사람은 내일을 볼 수 없다. 정확히 말하면, 볼 필요가 없다. 오늘이 너무 급하니까. 오늘이 너무 절박하니까.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사람에게 "내일부터 시작하세요" 하고 말하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가. 오늘 먹고 싶은데 내일의 몸매가 무슨 소용인가. 마찬가지다. 지금 당장 월세를 내야 하는데 3년 후 신용등급이 중요한가. 터널 안에서는 오늘이 전부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문제는 그 다음이다.

오늘 끈 불이 내일 더 큰 불이 되어 돌아온다. 오늘 빌린 돈이 내일 더 많은 빚이 되어 쌓인다. 오늘 미룬 일이 내일 더 급한 일이 되어 덮친다. 터널이 깊어진다. 더 깊어진다. 계속 깊어진다.

내 지인 한 명이 그랬다. 직장 다니면서 대학원을 다녔다. 논문 쓸 시간이 없었다. 매일 회사 일이 급했다. '이번 주만 넘기면'이 반복됐다. 한 학기가 지나고, 두 학기가 지났다. 논문은 한 줄도 안 썼다. 결국 자퇴했다. 등록금만 날렸다.

왜? 오늘의 회사 일이 급했으니까. 내일의 논문보다 오늘의 보고서가 급했으니까. 터널 안에서는 그게 맞다. 하지만 터널 밖에서 보면? 2년 동안 등록금 수백만 원을 날린 셈이다.

오늘의 결핍은 내일의 보다 큰 결핍을 낳는다. 줄어들 수가 없다. 그게 작동 방식이다.

업무 메신저도 마찬가지다.

오늘 답장을 안 하면 내일은 더 많은 메시지가 쌓인다. 모레는 더더욱. 계속 쌓인다. 담장이 높아진다. 터널이 깊어진다.

"오늘은 진짜 바빠서……."

그래서 미룬다. 그런데 그 '오늘의 바쁨'도 사실은 어제 미룬 일 때문이다. 어제의 터널링이 오늘의 터널링을 만들고, 오늘의 터널링이 내일의 터널링을 만든다. 연쇄 반응이다. 멈추지 않는다. 스스로는 멈출 수 없다.

바로 이거다.

멀레이너선과 샤퍼는 이렇게 말했다. "결핍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지금 당장 결핍을 경험할 뿐만 아니라 나중에도 결핍을 경험한다"(멀레이너선 & 샤퍼, 2025: 198). 오늘 가난해서 대출받은 사람은, 그 이자 때문에 내일은 더 가난해진다. 오늘 시간이 없어서 일을 미룬 사람은, 쌓인 일 때문에 내일은 더 시간이 없다. 왜? 오늘 빌렸으니까. 오늘 미뤘으니까. 오늘 빌린 돈은 내일 이자와 함께 갚아야 하고, 오늘 미룬 일은 내일 두 배의 무게로 돌아온다. 그 빚과 그 밀림이 내일을 잠식하니까.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흥미로운 걸 발견했다.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욕망한다는 것. 저 물건을 사면, 저 사람을 만나면, 저 직업을 가지면 채워질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채워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진짜로 원하는 건 그 대상이 아니라, 욕망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엄마 품을 떠나는 순간부터 우리 안에는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가 생긴다. 그 빈자리를 평생 메우려고 애쓴다. 완전히 채워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조금 더 현명하게 욕망할 수 있다.

터널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고금리 대출이 완벽한 해결책처럼 보인다. 일을 미루는 게 최선의 선택처럼 느껴진다. 오늘만 중요하다. 그리고 그 '터널 안'이라는 세계가, 그 사람의 전부가 된다. 터널 밖?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지금 터널 안에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시야는 조금 넓어진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게으름의 문제가 아니다.

구조의 문제다. 결핍이 만든 터널의 문제다. 빈곤이 빈곤을 낳고, 바쁨이 바쁨을 낳고, 밀림이 밀림을 낳는 시스템의 문제다.

라캉이 통찰했던 근원적 결핍처럼, 이 결핍은 태어날 때부터 우리 안에 있다. 완전히 채워질 수 없는 공백. 그 공백을 메우려고 애쓸수록, 공백은 더 커진다.

그 시스템 안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오늘의 불을 끄는 것뿐이다. 내일의 불? 그건 내일의 내가 끌 일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터널 안에서는 합리적이니까.

그래서 나는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떤 터널 안에 있는가?

오늘 미루는 것이 무엇인가? 오늘 빌리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내일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 것인가?

카드 현금서비스를 받지 않더라도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빌린다. 시간을 빌리고, 에너지를 빌리고, 집중력을 빌린다. 오늘의 나에게서 내일의 나로. 그리고 그 빚이 쌓인다. 터널이 깊어진다.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면 내일의 문제가 생긴다. 내일의 문제를 해결하면 모레의 문제가 생긴다. A를 욕망하지만 A를 얻으면 B를 욕망하고, B를 얻으면 C를 욕망한다. 끝이 없다. 무한 반복. 그리고 그 과정에서 터널은 더 깊어진다. 결핍은 더 커진다.

놀랍지 않은가.

우리는 모두 터널 안에 산다. 크든 작든, 깊든 얕든, 터널 안에 산다. 그리고 터널 안에서는 터널 밖을 볼 수 없다. 시야가 차단된다.

오늘의 결핍은 내일의 더 큰 결핍을 낳는다. 그게 우리가 사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먼저, 자책하지 마라. 당신이 게으른 게 아니다. 의지가 약한 게 아니다. 터널 안에 있을 뿐이다. 터널 안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행동한다. 그게 정상이다.

둘째, 터널 밖으로 나오려면 터널 안에 있다는 걸 먼저 알아야 한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미루고 있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들여다봐라. 오늘 빌리고 있는 게 무엇인지 직면해라. 그것만으로도 시야가 조금 넓어진다.

셋째, 작은 것부터 끊어라. 오늘 미루려던 이메일 하나만 답장하라. 내일로 넘기려던 전화 한 통만 걸어라. 카드 현금서비스 받기 전에, 딱 5분만 다른 방법을 찾아봐라. 터널이 얕아지기 시작한다.

넷째, 혼자 끙끙대지 마라. 터널 안에 있는 사람은 터널 밖을 볼 수 없다. 하지만 밖에 있는 사람은 본다. 친구에게 말해봐라. "나 요즘 이것만 하느라 정신없어." 그 사람 눈에는 네가 뭘 미루고 있는지 보인다. 가족에게 물어봐라. "내가 지금 뭐 하는 거 같아?" 다른 관점이 생긴다. 심각하면 전문가를 만나도 좋다.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터널에서 나오려는 시도일 뿐이다.

한 가지만 더.

행동경제학자들이 발견한 게 있다. 가난이 가난을 만들고, 바쁨이 바쁨을 만드는 악순환. 이 고리를 끊으려면 때로는 다른 사람의 눈이 필요하다. 터널 밖에서 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당신이 잘못한 게 아니다. 당신의 존재 자체가 문제인 게 아니다. 시스템이 당신을 터널 안에 가둔 것이다.

하지만 시스템이 바뀔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터널은 지금도 깊어지고 있으니까. 시스템을 탓하면서 아무것도 안 하면, 터널은 더 깊어질 뿐이다.

그래서 필요한 건 두 가지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스스로도 움직이는 것. 혼자 끙끙대지 말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 지금 이런 상황이야" 하고 말해봐라. 그들의 관점을 빌려서, 작은 행동을 시작하면 터널은 조금씩 얕아진다.

오늘 빌린 시간은 내일 갚아야 한다. 오늘 미룬 일은 내일 더 무거워진다. 그 구조를 인식하는 것. 그리고 오늘, 단 하나라도 미루지 않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당신도, 지금 이 순간, 무언가를 미루고 있을 것이다.

그걸 하나만 지금 하라. 딱 하나만.

거기까지다.


참고문헌

센딜 멀레이너선 & 엘다 샤퍼/ 이경식 역(2025). 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빌리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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