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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언어패턴-파트1:무의식이 듣는 말,의식이 못 듣는말

by 홍종민

[멤버십 전용] 《말로 최면 걸다》 7장 확장판 공개

책의 2배 분량입니다. 책에 없는 내용도 많습니다. 가독성도 대폭 높였습니다.

최면언어패턴. 이게 《말로 최면 걸다》의 핵심 소스입니다. 이것만 알면

말로 최면 거는 건 일도 아닙니다.

개정증보판은 내년쯤 나옵니다. 멤버십 회원은 1년 먼저 만나보세요.

이번 확장판은 파트 3개로 나뉘어 공개됩니다.


말의 두 층위


사람은 말로 소통한다고 믿는다. 착각이다.

말은 표면이다. 의식이 만들어낸 포장지다. 진짜 메시지는 그 아래에서 흐른다. 무의식에서 무의식으로. 느낌에서 느낌으로. 파장에서 파장으로.

의식은 분석한다. 판단한다. 저항한다. "이게 맞나?" "저 사람 말이 논리적인가?" "나한테 이득인가 손해인가?" 끊임없이 계산한다. 24시간 가동되는 검문소다.

무의식은 다르다. 느낀다. 기억한다. 따라간다. "이 사람 느낌이 좋다." "이 상황이 익숙하다." "흐름에 맡기고 싶다." 계산하지 않는다. 흘러간다.

의식에게 말하면 논쟁이 된다. 반박이 돌아온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증거가 있어요?" 대화가 아니라 전쟁이 된다. 이기면 적이 생긴다. 지면 굴욕이 남는다.

무의식에게 말하면 연결이 된다. 공감이 돌아온다. "맞아요, 저도 그래요." "그러게요, 그런 것 같아요." 전쟁이 아니라 춤이 된다. 함께 흘러간다.

대화의 목표가 이기는 것이라면 의식에게 말해라. 논리를 펼쳐라. 증거를 대라. 상대방을 굴복시켜라. 승리의 쾌감은 잠깐이다. 적은 오래 남는다.

대화의 목표가 통하는 것이라면 무의식에게 말해라. 공감을 건네라. 기억을 나눠라. 상대방과 함께 흘러가라. 통하고 나면 동료가 생긴다. 관계가 남는다.

이제 무의식에게 말하는 다섯 가지 방법을 살펴보자.


1. "예"의 마취 효과


세 번의 "예"가 만드는 마법


사람은 세 번 "예"라고 하면 네 번째도 "예"라고 한다. 이건 인간의 기본 설정이다. 바뀌지 않는다.

뇌가 일관성을 추구하기 때문이 아니다. 무의식이 저항을 포기하기 때문이다. "예"를 연속으로 말하는 순간, 경계의 근육이 이완된다. 마치 마취제처럼. 의식은 여전히 깨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문이 열려 있다.

왜 그럴까?

사람은 에너지를 아끼려 한다. 매번 새롭게 판단하는 건 피곤하다. 그래서 패턴을 만든다. "이 사람은 맞는 말을 한다"는 패턴이 형성되면, 다음 말도 맞을 거라고 가정한다. 검증을 건너뛴다. 에너지가 절약된다.

심리학에서는 이걸 "일관성 편향(consistency bias)"이라고 부른다. 한 번 "예"라고 한 사람은 계속 "예"라고 하려는 경향이 있다. 자기가 한 말과 모순되기 싫어서다. 모순은 불편하다. 불편함을 피하려고 계속 동의한다.

하지만 더 깊은 이유가 있다.

"예"를 연속으로 말하면 신체적으로도 변화가 일어난다. 어깨가 내려간다. 호흡이 깊어진다. 표정이 부드러워진다. 몸이 이완되면 마음도 이완된다. 경계가 풀린다. 문이 열린다.


후배의 지갑을 여는 법


직장 후배가 있었다. 매번 밥을 먹으면 슬쩍 화장실에 간다. 계산할 때쯤 돌아온다. 한두 번이면 우연이다. 열 번이면 패턴이다. 의도가 있다.

직접 말하면 어떻게 될까.

"야, 너 왜 맨날 나만 쏘게 해."

변명의 벽이 세워진다. "아, 그게 아니라..." 저항의 성이 쌓인다. "선배님이 먼저 가시라고 해서..." 관계만 어색해진다. 다음부터 밥 먹자는 말도 꺼내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다르게 접근했다.

"요즘 회사 빡빡하지. 야근도 많고."

"네, 진짜 그래요. 이번 주 세 번이나 야근했어요."

첫 번째 "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야근이 많은 건 진짜니까.

"집에 가면 또 쉬는 것도 아니고. 이것저것 신경 쓸 일 많잖아."

"맞아요, 주말에도 편하게 못 쉬어요."

두 번째 "예"다. 이것도 사실이다. 집에 가면 쉬는 게 아니라 다른 일이 기다린다.

"그래서 이렇게 같이 밥 먹는 시간이 더 소중한 거지. 바쁜 와중에 시간 내서 만나는 거니까."

"정말 그래요, 선배님."

세 번째 "예"다. 이제 문이 열렸다.

"오늘은 내가 쏠 테니까 마음껏 먹어. 대신 다음엔 네가 쏘는 거다."

"아, 네! 감사합니다!"

자연스럽게 합의가 됐다. 내가 요청한 적 없다. 강요한 적 없다. 그가 스스로 동의했다. 자발적으로.

다음 약속에서 후배가 먼저 카드를 꺼냈다. 화장실에 가지 않았다. 계산대 앞에 서 있었다. "선배님, 오늘은 제가 쏠게요."


핵심 원리


이게 핵심이다.

무의식에 심어진 것은 "타인의 강요"가 아니라 "자신의 선택"으로 경험된다.

사람은 자기가 결정했다고 믿는 것에는 저항하지 않는다. 주인의식이 생긴다. 책임감이 생긴다. 누가 시켜서 한 일에는 불만이 생긴다. 억울함이 생긴다. 같은 행동이라도 어떻게 시작됐느냐에 따라 감정이 완전히 달라진다.

"야, 다음엔 네가 쏴"라고 직접 말했으면 어땠을까. 후배는 쏘긴 쏠 것이다. 하지만 마음이 불편할 것이다. "선배가 강요했다"는 느낌이 남을 것이다. 다음에 또 밥 먹자고 하면 핑계를 댈 것이다. "그날 약속이 있어서요..."

하지만 스스로 동의하게 만들면 다르다. "내가 그러겠다고 했다"는 기억이 남는다. 다음에 쏘는 것도 자연스럽다. 관계가 유지된다. 오히려 더 좋아진다.


아내 설득의 참패


자신감이 붙으면 위험하다. 과신은 독이다.

한번은 아내에게 골프채를 사고 싶다고 말해야 했다. 몇 번의 성공 경험이 있으니 이것도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제 이 기법을 마스터했다." 착각이었다.

"여보, 요즘 스트레스가 많잖아. 회사 일도 그렇고."

"그래, 맞아."

첫 번째 "예". 순조롭다.

"운동도 부족하고. 건강을 위해서라도 취미 생활이 필요한 것 같아."

"응, 당연하지."

두 번째 "예". 완벽하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두 번의 동의를 받아냈다. 흐름이 잡혔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된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실수를 저질렀다.

"그래서 골프채 세트 하나 사려고 하는데..."

"뭐? 골프채가 얼마인데!"

완패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아내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당신 지금 나 조종하려고 한 거야?" 그 느낌이 전해졌다. 변명하려 할수록 더 나빠졌다. 그날 저녁 분위기가 최악이었다.


실패 분석


왜 실패했을까. 나중에 분석해보니 답이 보였다.

"운동이 필요하다"에서 "골프채를 사자"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중간 단계가 빠졌다. 징검다리가 없었다.

"골프가 건강에 좋은 운동이다"


"요즘 골프 치는 사람들이 확실히 건강해 보인다"


"동료 중에 골프 치는 사람이 스트레스도 잘 풀고 좋아 보이더라"


"장비가 좋아야 부상도 적다"


이런 단계들이 필요했다. 각 단계에서 "예"를 받아야 했다. 그래야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급발진이었다. 두 번 "예" 받았다고 바로 결론으로 뛰어들었다. 무의식은 성급함을 감지한다. 조금이라도 억지가 보이면 경계가 다시 올라온다. "이 사람이 뭔가 꿍꿍이가 있구나." 문이 다시 닫힌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야 한다. 한 단계씩. 천천히. 상대방이 따라올 시간을 줘야 한다. 뛰어넘으려 하면 넘어진다. 나처럼.

다시 도전하다

몇 달 후 다시 시도했다. 이번엔 전략을 바꿨다.

일단 골프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대신 주변 이야기를 했다.

"여보, 김 부장 알지? 요즘 골프 치더니 살이 빠지고 건강해 보이더라."

"그래? 골프가 그렇게 좋아?"

"응, 걷는 양이 많대. 하루에 만 보 넘게 걷는다더라."

"오, 그러면 운동이 되겠네."

첫 번째 "예"다. 골프가 건강에 좋다는 것.

며칠 후.

"그 김 부장 말인데, 골프 치면서 스트레스가 확 풀린대. 자연 속에서 치니까."

"그럴 것 같아. 요즘 당신도 스트레스 많잖아."

두 번째 "예"다. 골프가 스트레스 해소에 좋다는 것.

일주일 후.

"나도 한번 골프 배워볼까 생각 중이야. 건강도 챙기고."

"그래, 해봐. 좋을 것 같아."

세 번째 "예"다. 내가 골프를 치는 것.

이제 문이 열렸다.

"근데 장비가 좀 필요하더라고. 괜찮은 거 사야 부상도 안 나고."

"그럼 좋은 거 사야지. 싼 거 사서 다치면 더 돈 들어."

성공했다. 아내가 먼저 "좋은 거 사라"고 했다. 내가 졸라서 산 게 아니다. 아내가 권해서 샀다. 적어도 아내 기억 속에서는 그렇다.


광고가 아는 것


광고 제작자들은 이 원리를 정확히 안다. 수십억을 들여 연구한다.

보험 광고를 보자.

"당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소중한 사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정할 수 없다. 누가 가족을 생각하지 않겠는가. "맞아."

"당신은 가족을 지키고 싶어 하고, 미래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사실이다. 누가 미래를 걱정하지 않겠는가. "맞아."

"그리고 당신은 아마도 이 모든 것을 든든하게 지켜줄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무의식이 두 번 "맞아"라고 끄덕이는 순간, 세 번째 문장이 미끄러져 들어온다. 보험이 필요하다는 메시지가. 저항 없이.

명품 브랜드 광고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맞아. 누가 자신이 특별하지 않다고 하겠는가.

"당신은 더 좋은 것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맞아. 누가 자격이 없다고 하겠는가.

"이제 뭔가가 당신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뭘 사라는 말이 없다. 하지만 "특별한 경험"을 기대하게 만든다. 모호하지만 강력하다. 무의식은 빈칸을 스스로 채운다. 그 빈칸에 명품 가방이 들어간다.


영화가 아는 것


영화 <인셉션>을 보라. 꿈속에서 생각을 심는 이야기다. 주인공 코브가 상대방의 저항을 무너뜨리는 장면이 있다.

"당신은 지금 꿈을 꾸고 있습니다."

관객은 안다. 영화 속 인물이 꿈을 꾸고 있다는 걸. "맞아."

"모든 것이 실제로 느껴질 것입니다."

꿈속에서는 모든 게 실제 같다. "맞아."

"이 꿈은 당신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꿈은 자기 무의식이 만든다. "맞아."

"당신은 지금 나와 함께 있습니다."

세 번의 "맞아" 이후, 마지막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수용된다. 관객도 저항 없이 이 설정을 받아들인다. 영화에 몰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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