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온도_32

by 슬로우

도윤은 가끔, 가게 문 너머로 사람들이 들어오는 장면을 멈춰서 바라보곤 했다.


바쁘게 달려 들어오는 사람도 있었고, 천천히 유리문을 열고 망설이며 들어오는 이도 있었다. ‘더 슬로우’라는 이름과 다르게, 사람들의 걸음은 언제나 제각각이었다.


매일 아침 8시 50분에서 55분에 오는 남자가 있다. 출근 전 커피 한 잔을 꼭 챙기는 습관을 가진 그는, 늘 같은 자리에 앉아서 늘 같은 메뉴를 마셨다. 말은 없지만, 가끔 도윤이 먼저 인사를 건네면 짧게 미소로 응답하는 그런 사람이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목요일 아침마다 들르는 여대생은 늘 책 한 권을 들고 들어온다. 커피가 다 식을 때까지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지만, 다 마시고 컵을 돌려줄 땐 꼭 “잘 마셨어요”라고 말한다.


비 오는 날마다 찾아오는 커플도 있다. 그들은 우산을 반쯤 접은 채, 서로 말없이 앉아 있다가 조용히 나간다. 그들이 앉았던 자리는 늘 물방울이 흩뿌려져 있어 도윤은 그곳을 닦으며 늘 같은 생각을 한다.


‘이 커플은 이 공간을 어떻게 기억할까.’


단골이 되는 사람도 있고, 한 번 오고 다시는 오지 않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도윤은 그 스침 하나하나를 다 기억하고자 노력했다. 누군가는 무언가를 피하듯 들어왔다가, 한참 머물다 조용히 나간다. 누군가는 휴대폰만 쳐다보다가 커피는 거의 마시지 않고 자리를 뜬다. 누군가는 갑자기 눈물을 보였고, 또 누군가는 커피를 마시며 작게 웃었다. 그 모든 순간을 도윤은 커피 머신 너머에서 조용히 지켜봤다.


‘사람마다 사는 속도는 다르구나.’


힘겨운 사람일수록 속도가 느리고, 웃음이 적은 사람일수록 오래 앉아 있는 듯했다. 그리고 도윤은 그 느린 속도를 억지로 빠르게 만들지 않았다. 그저 옆에서 커피를 내렸다. 커피 한 잔이 누군가의 하루를 완전히 바꾸진 않겠지만, 잠시 멈추는 힘이 되어줄 수는 있다고, 그는 믿고 있었다.


언젠가 다시 문을 열고 들어올 수도 있고, 다시는 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도윤은 여전히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더 슬로우’는 그래서, 언제나 조금 늦게라도 괜찮은 공간이었다.


그날도 창밖을 바라보다 문득 커피를 내리던 도윤의 손이 멈췄다. 자신도 처음 ‘더 슬로우’라는 이름을 떠올렸을 땐, 단순히 슬로건처럼 들릴까 두려웠다. 마케팅용 문구처럼 가볍게 소비되는 말이 되는 건 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회사를 그만두고 병원에 갔던 날이 떠올랐다.


"지속적인 불면과 불안, 공황 증상까지 있으시네요."


의사는 차분히 말했지만, 도윤은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때 의사가 말했었다.


"지금은, 속도를 줄이셔야 해요. 많이 멈추셔야 하고요."


그 말을 들으며 그는 마음속으로 되뇌었었다.


‘그럼… 나는 얼마나 빠르게 살고 있었던 걸까.’


그 기억은 이제는 아득해졌지만, 그날의 병원 대기실에서 내리쬐던 LED등 불빛만큼은 여전히 선명했다. 그래서 커피숍 이름은 '더 슬로우'였다. 그저 위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건네는 명령이자 약속 같은 이름이 바로 ‘더 슬로우’였다.


처음에 커피숍 이름을 지을 때는 ‘느린 속도’라고 직관적으로 지으려고 했다. 하지만, 대기업에서 패션 브랜드를 담당하며, 마케팅도 깊게 관여했던 그에게 ‘느린 속도’는 커피숍 이름으로 사용하기에는 시대에 뒤처진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생각한 이름이 바로 ‘더 슬로우’였다. 느린 속도의 의미는 간직한 채, 조금 더 감각적인 느낌의 이 가게명이 도윤은 마음에 들었다.


지금 그는 매일 그 약속을 지키는 중이었다. 한 잔씩 커피를 내리며, 한 사람씩 기억하며. 그리고 그 속에서 도윤 스스로도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는 걸, 언젠가 그도 알게 되었다.


도윤이 커피숍을 선택한 건, 단지 창업 아이템을 고른 결과는 아니었다. 사실 그는 오래전부터 커피를 좋아했고, 커피 그 자체보다, 커피를 둘러싼 풍경을 더 좋아했다.


회사에 다니던 시절에도 출근 전 들르던 작은 커피숍, 출장지에서 우연히 마신 거리의 테이크아웃 커피, 그리고 회의가 끝난 후 아무 말없이 앉아 있던 회의실 한편의 향기까지.


그 모든 순간의 공통점은…


“조금은 나를 살리는 시간이 되어주었다”는 것이었다.


도윤에게 커피는 ‘버티게 해주는 무언가’였다. 비가 오던 날, 보고서를 수십 번 고치고 나와 홀로 앉아 마신 커피 한 잔에서 그는 그저 ‘아, 나는 아직 괜찮다’는 마음을 되찾곤 했다. 하지만, 도윤에게 커피가 항상 좋은 이미지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커피가 싫어진 적이 있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아침엔 1층 편의점에서 산 캔커피로 잠을 깼고, 거래처 미팅 때는 “커피 한 잔 하시죠”로 시작해, 하루에 커피 다섯 잔은 기본이었다.


그러다 문득, 어느 날이었다. 회의실에서 종일 기획안을 뜯어고치고, 밤늦게 돌아와 책상 위에 있던 텀블러를 열었는데 식은 커피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그 순간, 토할 것 같았다.


‘아… 커피향이 너무 싫다.’


그때부터였다. 커피를 보면 속이 울렁이고, 커피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공간에 있으면 마치 회의실 LED등 아래에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커피는 언제부터인가 나에게 ‘회사’가 되어 있었다. 카페인의 힘으로 버틴 회사 생활, 그 버팀이 곧 상처가 된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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