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드로 공항을 나서는 순간,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한숨과 함께 공항을 빠져나가는 사람들, 커다란 트렁크를 끌고 바쁘게 움직이는 여행객들이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나는 다시 런던에 왔다. 출장으로 스무 번 이상 찾았던 도시, 그리고 여행으로도 두 번이나 걸었던 길들.
이곳은 이제 낯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여행은 새로운 설렘을 안고 시작되고 있었다.
런던을 처음 찾았을 때, 이 도시는 거대한 회색빛 풍경으로 다가왔다. 잿빛 하늘 아래 빽빽이 늘어선 건물들, 빠르게 걸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어디에나 울려 퍼지는 빅토리아 시대의 흔적들. 처음에는 이 도시가 조금 차갑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딘지 모르게 늘 바쁘고, 늘 정리된 듯하면서도 혼잡한 거리. 하지만 출장으로 런던을 찾을 때마다, 그리고 두 번째 여행을 하면서, 나는 이 도시가 가진 독특한 매력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바쁜 듯하지만 여유로운 사람들. 빽빽한 건물들 사이로 숨어 있는 고즈넉한 공원들. 그리고 고풍스러운 전통과 현대적인 감각이 공존하는 풍경. 이제는 런던의 이 회색빛이, 차가움이 아니라 세련된 안정감처럼 느껴졌다.
다시 찾은 런던, 익숙한 길을 다시 걸을 때 이제는 길을 헤매지 않아도 된다. 언더그라운드 노선도 없이도, 내 발길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만큼 익숙한 도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런던에서 새로운 감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빅벤을 처음 보았을 때의 감동은 여전할까?
세인트 폴 대성당 앞에 서면, 그 웅장함에 또 한 번 압도될까?
내셔널 갤러리에서 다시 고흐와 터너의 작품을 보면, 그때와 같은 감정이 밀려올까?
누구나 같은 도시를 걸어도, 같은 감정으로 여행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번 런던은, 내가 처음 만났던 런던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나를 맞이해 줄 것이다.
나는 짐을 단단히 쥐고, 천천히 런던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익숙함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이 도시에서 무언가 새로운 감정을 마주하게 될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