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를 처음 찾았을 때, 나는 런던이 예술을 대하는 방식에 감탄했다. 수세기 동안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작품들을 누구나 무료로 감상할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둔 이 미술관. 예술은 돈을 주고 사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시간을 들여 천천히 바라보고, 감상하며, 마음에 담는 것이라는 걸 이곳이 알려주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런던에 올 때마다, 이곳에서 다시 한번 나만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침부터 런던 특유의 흐린 하늘. 거리를 가득 채운 사람들과 비둘기들 사이를 지나, 트라팔가 광장 한가운데 섰다. 광장을 감싸듯 서 있는 네 마리의 커다란 사자상. 넬슨 제독의 동상을 올려다보며, 이곳이 영국의 위대한 역사 한가운데라는 것을 다시금 실감했다. 하지만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광장 북쪽, 고풍스러운 기둥과 클래식한 파사드가 돋보이는 건물로 향했다. 그곳이 바로, 내셔널 갤러리이다.
건물 앞에 서는 순간, 나는 익숙하면서도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낯설지 않은 공간이지만, 여전히 그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이제, 나는 다시 한번 예술 속으로 들어간다. 미술관의 문을 통과하는 순간, 시간이 느리게 흐르기 시작했다.
첫 번째 전시실에서, 나는 가장 먼저 터너(J. M. W. Turner)의 작품들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그의 그림은 빛과 색으로 가득한 혼돈이었다. 구름과 바다가 맞닿은 경계, 태양이 부서지는 듯한 노란빛, 그리고 보이는 듯하면서도 사라지는 형체들.
나는 그의 대표 작품인 ‘전함 테메레르(The Fighting Temeraire)’ 앞에 섰다. 거대한 군함이 마지막 항해를 하며, 작은 증기선에 의해 끌려가는 장면.
위대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는 순간을 이렇게 황홀하게 담아낸 그림이 또 있을까?
다음으로 향한 곳은, 내셔널 갤러리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반 고흐의 ‘해바라기’였다. 가까이 가기도 전에 ’ 해바라기’의 강렬한 노란빛이 멀리서도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색감은 단순한 노랑이 아니라, 빛과 그림자가 얽혀 있는 하나의 감정처럼 다가왔다. 그림 속에서 해바라기들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서로를 향해 몸을 기울이고 있었고, 붓자국은 거칠고도 따뜻했다.
고흐가 이 그림을 그릴 때, 그는 어떤 감정을 품고 있었을까? 어쩌면 그는 단순한 꽃이 아니라, 태양을 품고 싶었던 것 아닐까? 그 뜨거운 빛을, 사라져 가는 온기를, 그림 속에 남기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고흐의 그림 앞에서 눈을 감고 조용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그 순간, 고흐의 영혼이 이곳에 함께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셔널 갤러리는 거대한 예술의 숲이었다. 터너와 고흐를 지나쳐, 나는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작품들 앞에서 멈추었다.
‘삼미신(The Three Graces)’ 우아한 세 여신이 서로를 향해 몸을 기울이며 춤을 추듯 서 있는 그림. 이곳에서는 인간의 아름다움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수련(Water Lilies)’ 앞에 섰다. 물 위에 떠 있는 부드러운 빛, 반사된 하늘, 몽환적인 색감이 한데 어우러져 마치 현실이 아닌 곳을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예술은 순간을 영원하게 만든다."
모네의 그림을 바라보며, 나는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위안이 무엇인지 느꼈다. 어떤 순간은 스쳐 지나가지만, 이렇게 그림 속에서는 영원히 머물 수 있다는 것. 한참 동안 미술관을 걸으며, 나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시간 속을 오갔다.
밖으로 나오자, 트라팔가 광장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고, 회색빛 하늘 아래에서, 런던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나는 미술관에서 보고 느낀 감정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이제 내셔널 갤러리는 단순한 미술관이 아니라,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