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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탐지, 흉측한 것의 연속

그래도 금속탐지는 좋아

by 팔레오

강원도는 금속탐지를 할 만한 곳이 많습니다. 산지가 많아 고개가 많고, 현재에는 타 지역에 비해 개발이 덜 된 곳이라 옛길과 고개가 잘 남아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강원도의 힘'이죠.

하지만, 현재도 그렇지만 과거에서 인구가 많지 않은 탓에 고갯길에서 찾을 수 있는 엽전이 좀 적다는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강원도가 힘은 있긴 한데 막 엄청 센 천하장사 그런 수준까지는 아닌 듯합니다.



뻥뻥 뚫린 영동고속도로를 시원스럽게 질주하다가 빠져나갈 고속도로 나들목을 불과 몇 km 남기고는 갑자기 정체가 시작되더니 이윽고 모든 차량들이 완전히 멈춰버렸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한 시간이 넘도록 꼼짝도 못 하고 있다가 한 개 차로가 열리면서 겨우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그나마도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세월아 네월아 거북이 주행을 하였습니다. 걸어갔어도 벌써 터널 지나 요금소까지 통과했을 듯합니다. 그런데 걸어서 고속도로 요금소 통과하면 돈 안내도 되는 것이겠죠?


어쨌든 시작부터 일진이 안 좋네요.


응? 그런데 고속도로 중앙분리대 위에 저건~???



오호라 이게 그 유명한 '마당을 나온 암탉'인가요?


어디서 왔는지 모를 야생(?) 닭 한 마리가 중앙 분리대 위에 올라서서 100km 이상의 속도로 달리는 반대편 차량 사이를 피해 건너가려고 타이밍을 재고 있는 듯합니다.


"어이, 그 앞은 지옥이다!"라는 만화 대사가 문득 떠오르네요.

"뛰지 마~ 죽어!" ㅠ



터널 안에서도 거북이 주행은 매한가지였습니다. 화재경보와 함께 즉시 대피하라는 안내음이 엄청 크게 울려 퍼지고 있어 분위기가 후덜덜했습니다. 터널에 이런 자동 시스템이 있었는지 몰랐네요. 이러다가 영화 터널 속편을 찍은 건 아닐지.



지나면서 보니 유조차 탱크가 찌그러져 있고 뒤에서 추돌한 트럭은 전면부가 화재로 흉측하게 전소되어 있었습니다. 나중에 뉴스를 검색해 알아보니, 터널 안에서 유조차와 트럭의 추돌사고로 화재가 발생해 자칫 초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으나 다행히도 신속히 진화가 되어 사망자나 큰 부상자는 없었다고 하네요. 터널에서 손 쓸 수 없는 대화재가 발생하고 차량마저 고립되어 멈춰버린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교통지옥에서 겨우겨우 벗어나 드디어 첫 번째 옛길에 도착했습니다. 풀향과 나무향을 맡으며 녹음이 우거진 옛 길을 느긋하게 걷고 있자니 여기가 천국처럼 느껴집니다.



금상첨화로 고개 한 편에 작은 돌무더기가 보입니다.



짐을 풀기도 전에 당오전 하나가 마중을 나왔습니다.



그 옆에서는 하부에 월표가 있는 '昌' 당오전이 나옵니다. 창원관리영에서 주조한 것으로 나름 귀한 편에 속합니다.



엽전 노다지 돌무더기를 만난 듯 해 시작은 대박 느낌이었으나 딱 3개가 끝이었습니다. 단숨에 3개를 찾아내고 난 이후에 거짓말같이 입을 다물어버린 탐지기를 보고 고장을 의심할 정도였습니다. 멋진 곳이었지만 천국까지는 아니었네요. 천국 앞에서 입구컷을 당한 느낌입니다.



두 번째 포인트에 도착했습니다. 강원도 답게 감자밭이 광활합니다. 우스개로 강원도에서는 지역화폐로 감자를 쓴다는 말도 있죠. 감자밭이 끝나는 곳에서 조금만 더 오르면 옛길입니다.



농업용수로 쓰려고 비닐을 깔아 둔 간이 웅덩이에 귀여운 소금쟁이들이 모여 있네요.

응? 그런데... 자세히 보니... 헉~ 배가 빨간 무당개구리였네요. 이 녀석은 나름 독개구리인지라 만지면 가렵습니다. 그래서 보기만 해도 온몸이 가려워지는 듯하네요.



조금 더 올라가니 화려한 색상의 길앞잡이 한 마리가 혜성처럼 나타나 길 안내를 시작합니다. 기특하게도 풀이 아닌 흙으로 된 좋은 길로만 날아다니며 앞장을 서네요. 그야말로 살아있는 내비게이션입니다. 마치 "따라와~ 내가 엽전 많은데 알려줄게"하는 것 같습니다.


"길앞잡이야, 고맙다.~ ^^"



하지만 고개 끝에 올랐더니 기대했던 돌무더기는 고사하고 옛길마저 중장비로 싹 밀려버린 몹쓸 포인트였네요.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 틈에 도망가버린 길앞잡이.


'길앞잡이 녀석 두고 보자!'


이래서 앞잡이를 조심해야 하나 봅니다.

'일본군 앞잡이', '인민군 앞잡이'



어쩔 수 없이 앵벌이 모드로 전환 후 엽전 수색을 합니다. 그 찌질함이 불쌍했는지 작은 당일전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뒤이어 전라감영에서 주조한 당이전 '全'천자문전이 튀어나왔습니다. 서체가 참 단아하고 예쁘네요.



그나저나 앵벌이 하기 힘듭니다. 최대의 비용으로 최소의 편익을 얻고 있습니다. 경제원칙에 반하고 있는 비합리적 손해네요. 하지만 금액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정신적 만족이 크니 비용-편익 분석 결과, 5:5 본전치기였다고 억지를 부려봅니다.



세 번째 포인트에 왔습니다.



고개에 오르자 멀찍이 보이는 큰 나무 하나가 기대감을 갖게 만듭니다. 고갯길 큰 나무는 못 참죠. 아낌없이 주는 나무입니다.



역시 나무 아래 엽전이 하나 숨어있었네요.



나무 주변에 돌이 듬성듬성 얹어져 있는 엉성한 포인트라 여기서도 앵벌이 모드로 전환합니다. 그러자 곧 선명한 '開'당이전이 나왔습니다. 개성관리영에서 만든 것으로 비교적 흔한 당이전입니다. 상태가 좋으면 만원 정도?



오늘은 포인트마다 꽝은 없으나 찔끔찔끔 감질나게 나옵니다. 그래도 지난번처럼 아예 꽝은 아니니 기분이 썩 나쁘진 않습니다.



오늘의 마지막인 네 번째 포인트에 왔습니다. 여기는 앞서 갔던 세 곳과는 달리 조금 걸어야 하는 곳이라 15인치 코일을 장착한 무거운 에퀴녹스 800 대신 가벼운 심플렉스를 꺼내 들고 산행을 시작합니다.



풀이 무성해 혹시 뱀이 있을지 몰라 신경을 쓰고 걸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3스텝 앞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칠점사(까치살모사)를 보고는 가슴이 철렁합니다.



물리면 금방 죽는다는 말도 있으나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런데 이 녀석은 도망도 잘 안 갈뿐더러, 심지어 열받으면 쫓아오기도 한다죠. 어쨌든 살모사 종류 중 최고의 공격성과 맹독을 가지고 있으니 제일 무섭습니다. 하지만 뱀도 약점은 있죠. 뱀은 기름냄새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기름 성분이 들어있는 에프킬라를 뿌리면 바로 도망갑니다. 그래서 산에 오를 때 장화에 미리 에프킬라를 뿌려 놓기도 하죠.



오래된 덫이 낙엽 속에 숨여 있다가 탐지기에 걸렸습니다. 다행히 입은 다물고 있었네요. 이런 종류의 덫에 걸리면 두 손으로는 빼내지 못합니다. 덫이 벌어지지 않게 하는 좌우 쇠를 누른 상태에서만 덫을 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뢰처럼 대상을 가리지 않는 악마의 도구죠. 녹이 슨 것으로 보아 꽤 오래전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덫을 이용한 이런 밀렵은 당연히 불법입니다. 요즘에도 그런 밀렵꾼이 있냐고요?



물론 있습니다. 이건 전에 다른 곳에서 보았던 올무 덫입니다. 나무를 휘어 줄을 매 놓았죠.




야생동물이든 사람이든 지나가다 줄을 건드려면 올가미가 발을 잡아 하늘로 끌고 올라가죠.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바로 그겁니다. 위험한 것이므로 보이는 족족 못쓰게 조집니다. 그렇지만 그래봐야 밀렵꾼이 또 설치할 테니 참 노답이네요.



이 올무 덫을 건드리는 경우 어떻게 되는지 보겠습니다.



고갯마루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보통 운이 좋으면 고갯마루를 올라가며 엽전도 여러 개 찾는데 오늘은 터널화재로 시작하더니만, 뱀이나 덫 같은 흉측한 것들뿐이네요.



길 옆에 떨어져 있는 전기 애자가 보입니다. '1950'이 제조년도이니 무려 70년이 넘은 오래된 물건이네요.



작년에 다른 장소에서 발견했던 애자입니다. 이것은 '1969'라고 쓰여있네요. 산행을 하다 만나는 이런 오래된 물건도 잘 챙기면 돈이 되긴 합니다만 번거롭기도 하고 너무 무거워서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옛날에 이처럼 전봇대에 매달아 전깃줄을 감아 거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나저나 세상에~ 전봇대용 나무가 없어 생 소나무에다가 저렇게 해놓다니 놀랍습니다.



고개 끝에 이르러 탐지를 시작하는데 심플렉스가 삐익~하고 "여기 돈 있다~~~!"라고 소리를 꽥 지릅니다. 실로 오랜만에 심플렉스의 친숙한 엽전음을 들어봅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천 번은 족히 들어본 듯하네요.



여기는 일제시대 알루미늄 동전이 꽤 나오는 걸로 미루어 예전에 작은 돌무더기가 있었는데 길을 넓히면서 평탄화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당일전,



비녀,



쇠도끼,

이걸 금도끼나 은도끼로 바꿔주는 스윗한 산신령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이 산에는 그런 분이 없을까요?

"이 놈아 금값 은값 올라서 이젠 어림도 없다."라고 호통이라도 안 들으면 다행이겠네요.



철마,



다양한 동전,

한자리에서 모두 나온 것은 아니고 주위에서 나온 것을 임시로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최종 결과입니다. 그리 넓지 않은 포인트에서 꾸준히 탐지음이 이어지고, 많이 파낼 필요도 없어 꿀잼이었습니다.



이 고개에서는 동전들이 왼쪽 작은 나무 주변에서 주로 나왔습니다. 탐지 후에는 발로 슥슥~하기만 하면 돼서 마무리하기도 간편했습니다. 모든 포인트가 이랬으면 좋겠네요.



귀찮음 병이 도져 아침에 나갈까 말까 고민하고, 또 교통정체까지 겪어 시작부터 삐걱거리긴 했지만, 탐지기를 들고 공기 좋고 풍광 좋은 산을 두루두루 다니니 묵은 스트레스도 사라지고, 다양한 탐지물도 얻을 수 있었기에 오늘도 역시 길을 나서기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돌아갈 길이 머니 아직 해가 많이 남았을 때 산을 내려와 차에 올랐습니다. 돌아가는 길에는 교통정체가 없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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