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 응시

존재의 파도에 던져진 인간(Dasein)

by Ubermensch





세상에는 두 가지 파가 있다. 육류파와 해산물파. 채식파도 있지만 나와는 무관하므로 끼워줄 생각이 없다. 나는 해산물을, 특히 날 것을 몹시 좋아한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회를 먹는다. 해산물 전체의 범주로 따지자면 주 3회 이상은 먹는 듯하다. 어느 날은 오랜 기간 가까이 지내며 나를 살뜰히 챙겨주던 후배가 나를 그림으로 그려주었는데, 입에 파닥거리는 물고기를 물고 해맑게 웃고 있는 그림이었다. 조금 원시적인 느낌이 들었지만 내 기호와 특성을 잘 파악해 주어서 고마웠다.


회를 아주 맛있게 자주 먹으면서 나는 늘 생각한다. 이 껍질이 벗겨져 살점이 잘게 발라진 물고기도 한때 광활한 바다를 헤엄쳤겠지. 양식장에서 왔으려나? 만약 바다에서 왔다면 뭘 먹고 자랐을까. 세월호처럼 어떤 배가 침몰해서 많은 사람들이 바다에 빠져 죽었는데, 미처 구조되지 못한 사람들도 있겠지. 해수욕하던 사람들이 급물살에 휩쓸려가서 아직까지 발견되지 못했을 수도 있고. 삶을 견디지 못하고 죽을 작정으로 뛰어든 사람도 많을 거야. 살해당해 바다에 유기된 시신도 많다고 들었고. 그 사람들의 사체는 깊은 바닷속에서 천천히 분해됐겠지.


물고기들은 아마 그 사람들의 부패한 신체의 파편이 섞인 물도 먹고, 그 파편을 먹은 플랑크톤도 잡아먹었을 테지.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내가 주 몇 회씩 이 해산물을 먹음으로써, 바다에서 죽은 사람들의 신체 조각을 먹고 있는 셈이겠구나. 끔찍해라. 나는 식인종인 걸까. 이 생각에 이른 이후 나는 바다에 절대 몸을 담그지 않고 바라만 본다. 하지만 회는 계속 먹는다.


나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친가가 동해이므로 명절마다 동해에 갔고, 어릴 때 그쪽에서 몇 년 살았던 적도 있었기 때문에 바다가 마음의 고향처럼 익숙하고 편안하다. 바다가 가진 하늘색, 코발트색, 딥블루 계열의 푸른 색조도 마음을 청명하게 해 주어서 참 좋다. 그래서 서울에 살면서도, 그리고 경제적 이유로 경기도로 밀려나 살면서도, 주기적으로 바다가 보고 싶어 진다. 서해는 바다로 안쳐준다. 바다는 역시 동쪽이다. 남쪽 바다도 예쁘긴 하지만 너무 멀어서 한번 가려면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가만히 바다를 보고 있자면 몇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바다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다.


바다는 늘 그곳에 있는 듯 하지만, 거대 바다를 이루는 단 한 조각의 방울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묘하다. 그것이 바다를 아름답고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지점이 아닐까 싶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는 바다의 이런 시시각각 변화하는 순간을 화폭에 담으려 애썼다. 존재하는 장소는 같지만 빛에 따라 수만 가지 얼굴을 보여주는 찰나의 바다를 수도 없이 그렸다. 지금 내 눈앞의 광안리 바다도 태양의 위치와 구름의 이동에 따라 계속해서 다른 표정을 보여준다. 아름답다.


니체식 심연(深淵, Abgrund)이란 존재와 의미의 근원이자 동시에 그 부재를 뜻한다. 심연은 단순히 깊은 구렁이나 낭떠러지가 아니라, 인간이 마주할 수 있는 가장 깊고 위험한 무(無)의 자리를 뜻한다. 그 심연은 커다랗고 깜깜하고 텅 비어서, 나약한 인간은 혹시라도 그에 빠져 죽진 않을까 겁낼 수 있지만, 초인이 되어 용감한 마음을 먹고 탐구하고 극복하고 조금씩 채워나가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눈뜨고 보니 세상이라는 험한 파도에 던져진 채 이리저리 휩쓸려 다닐 수밖에 없는 비극적이고도 나약한 존재인 우리는, 심연을 응시함으로써 내 존재의 근원과 목적과 삶의 방향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다. 바다는 심연 그 자체다. 많은 생명을 품어내고, 키우면서, 또 순식간에 앗아가 버릴 엄청난 힘도 있다. 마치 운명 같다. 우리는 그 심연 저변에 발목정도 담가볼 수 있을 뿐이겠지만. 나는 계속 바다를 찾아 그 깊은 심연을 살펴보고자 한다.






"당신이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당신을 들여다볼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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