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사랑

낭만적 말고 니체적. 그리고 나르시시즘을 동반한.

by Ubermensch






나는 사랑을 잘 못한다. 잘 안 하려고 한다가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멜로 로맨틱 장르의 영화나 드라마나 소설도 관심이 없다. 스릴러만 본다. 인류애를 자극하는 휴먼 드라마 장르도 안 본다. 마치 인생처럼, 사랑이 주는 달콤함은 전체 비중에서 아주 아주 티니 타이니하고, 그 나머지 상당량이 남기는 고통과 상처와 울음과 후유증을 겪느니 차라리 감정을 느끼지 않고 사는 것이 정신과 신체 건강 모두에 이롭다. 정 사랑을 하고 싶다면 타인 말고 나 자신을 듬뿍 사랑하는 나자신친화적이고 에너지효율적인 길을 택하는 것이 좋겠다.


나는 그 길을 주로 선택해 걸으며 살아왔는데, 그럼에도 운명이란 인간의 단단한 계획이나 굳은 의지를 무시하고 엉뚱한 곳으로 휩쓸어 가는 경우가 종종 있으므로, 나 역시 이따금씩 타인에 대한 사랑에 빠질 때가 있다. 그 타인에게 절대 내색하지 않고자 사력을 다하지만, 한번 마음속에 생긴 사랑의 씨앗은 바오밥나무처럼 내 자아와 의지의 토양에 거대한 뿌리를 내리고 확장해 나가며 내 존재를 부수고 참기 힘든 고통을 선사하기도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이라는 주제는 전 인류의 문학⋅미술⋅음악계 등 예술 전반의 소재가 되어 셀 수 없는 작품으로 태어났다. 낭만적이고 찬란하고 아름다운, 이상적으로 표현된 사랑의 형상도 많지만, 내 생각에 사랑의 본질은 환희보다 고통에 더 가깝다고 본다. 그리고 곧잘 파멸을 동반한다. 파멸의 대상은 둘 중 하나일 때도 있고. 혹은 둘 다일 때도 있다. 그래서 항상 사랑과 그에 수반되는 감정들이 넘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지적이고 매혹적인 러시아 출신의 사상가 루 살로메에게 두 번이나 청혼했지만 끝내 거절당하고 한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위대한 철학자 니체의 사랑에 대한 관점도 나의 그것과 유사하다. 그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서 니체는 "사랑은 가장 위험한 것 가운데 하나이다. 사랑 때문에 인간은 쉽게 자신을 잃어버린다."라고 한다. 그의 다른 저서『선악의 저편』에서는 "사랑은 권력의지의 상태이다. 사랑하는 자는 소유하고자 하고, 지배하고자 하며, 자신을 확장하고자 한다."는 문장이 나온다. 사랑에는 분명 어떤 권력관계가 존재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이란, 오래 참고 온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한다지만. 적어도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사랑은 두 사람만이 존재하는 세상 속 위계 구도가 너무나도 뚜렷한 세상이 아닐 수 없다. 내 연애사의 경우는 대체로 내가 왕이고 내 연인은 백성과 노예의 중간 정도의 입장으로 존재했다. 농노랄까?


니체는『도덕의 계보』에서 "사랑은 언제나 무언가를 정복하려는 욕망을 가진다. 사랑은 자신을 넘치게 하고, 넘친 힘은 타인에게로 흘러간다." 고 말한다. 니체가 본 사랑은 권력의지의 발현이고, 위험이며, 창조적 긍정이다. 사랑에 쉽게 빠지지 않아서 그렇지 일단 빠지면 나는 그 사랑의 충만함에 스스로 빛나는 걸 느낀다.


내 지난 왕국의 농노들은 나를 추앙하고, 나를 위해 노동하고, 나만의 장군이 되어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나를 지켜주었다. 하지만 그 농노들도 때로는 불만을 표출하며 어떤 쟁의를 일으키거나, 태업을 하거나, 심지어 반역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 나로서는 추방할 수밖에 없다. 애초에 둘로만 구성된 왕국이므로 농노를 추방한 왕국의 왕은 더 이상 왕 노릇을 할 수가 없다. 농노의 추앙으로 생성된 빛을 잃고 하나뿐이던 장군도 없으므로 여러 위험에도 노출된다. 궂은일도 스스로 해야 하고. 농노의 빈자리와 노고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눈물도 조금 흘린다. 그렇지만 이미 우리만의 왕국은 소멸했으므로 재건을 할 순 없다.



그리하여, 이미 장기간 그러고 있었지만, 당분간은 그냥 나자신친화적이고 에너지효율적인 나르시시즘에 빠져 살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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