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동 도시숲 호러체험

여자 혼자서 산에 가는 게 아니래.

by Ubermensch





최근 몇 년간 살면서 가장 무서운 경험을 하고 오는 길이다. 심장이 콩닥콩닥 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지상의 공기를 마시며 살아 숨 쉴 수 있다는 건 몹시 행복한 일이니 사람들이 하나뿐인 목숨을 소중히 여겼으면 좋겠다. 이번 부산 집필 여행이 시작된 이래 3일 내내 숙소에 콕 박혀 벗어나지 않다가, 마침내 여행객답게 관광지에 나서보기로 마음먹었다. 현지인의 추천으로 기장에 있는 아난티 코브에 가봤다. 내가 좋아하는 예쁜 쓰레기로 가득한 소품샵도 있고 볼거리가 많았다.


촉감이 엄청 보들보들한 알파카인형을 하나 사고 싶었는데, 그리 크지도 않으면서 4만 8천 원이나 해서 시무룩하게 내려놓았다. 만약 내 농노랑 같이 왔다면 내가 시무룩하게 인형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고 박력 있게 사준다고 했을게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 내겐 농노가 없고 난 더 이상 왕도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예쁜 쓰레기는 구경만 하고 하나도 가져갈 수 없었다. 혹시 이다음에 부자가 되면 꼭 가지고 싶다. 보들보들한 촉감이 몹시 좋았지만 놀랄 만큼 비싸서 차마 가질 수 없던 그 귀여운 알파카인형.


인근 산책길 코스를 휘휘 돌다 보니, 3일 내내 닳을 만큼 봤던 광안리 야경 말고 부산의 다른 야경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색을 대충 해보니 우암동 도시숲이 눈에 띄었다. 내가 좋아하는 커다란 달 건조물도 있고. 마침 딱 일몰 시간이라 무계획 즉흥 여행치고 아주 잘 골랐다 싶어 스스로 기특하게 여겨졌다. 혼자서도 이렇게 잘 다니고.


우암동 도시숲을 내비에 찍고 달려 입구를 굽이굽이 올라가서 대충 적당해 보이는 언덕 골목에 주차를 하고 걸어갔다. 안내표지판이 눈에 안 띄길래 길 잃은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직진을 했다. 나는 우회를 선호하지 않는 노빠꾸 인생을 살기 때문이다. 부산의 야경이 한눈에 내려다보는 명소라고 했으니, 분명 고도가 높은 곳이겠지. 산이라고 하니 좀 으슥해 보이지만 이 길이겠지 하고 갔다. 그런데 명소치고 가는 길에 사람은커녕 청설모도 다람쥐도 아무것도 없고 나밖에 없었다. 또 야경 명소라면 사람들이 분명 밤에 많이 찾아올 텐데 위험하게 조명이 아주 먼 거리에 하나씩 있어서 사이사이 꽤 긴 경로가 칠흑같이 어두워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초입부터 약간 여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하지만 이미 입구를 넘어왔고 나는 한번 발을 들이면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위험하고도 고집스러운 성격이기 때문에 계속 직진을 했다. 가다 보면 그래도 언젠가 사람들을 볼 수 있겠지 하면서. 그런데 아무리 가도 사람의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말도 안 되게 어둡기만 해서 핸드폰의 불빛에 의지해 한 발 한 발 걸음을 뗐다.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은 계속 들었다.


몇 년 전 관악산에 갔을 때 동기가 내게 해준 무서운 이야기가 떠올랐다. 북한에 어떤 여자 장교가 있었는데, 남자 군인들이 그 여장교를 강간한 다음에 신고를 못하도록 눈을 찌르고 절벽으로 밀어버렸대. 뒤이어 내 생각은 요 몇 년 여자 혼자 산에 갔다가 강간을 당하거나 살인을 당한 몇몇 사건들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갔다. 깜깜하고 고요한 숲 속에는 내 심장이 콩닥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너무 늦기 전에 돌아갈까 하는 망설임이 계속 들었지만, 이 길이 맞는지 아닌지는 끝까지 가봐야 아는 것이고. 그걸 내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 포기할 수는 없다는 몹쓸 곤조가 이겨버렸다. 겁에 질린 심장은 계속 콩닥거렸지만. 나는 사후세계를 믿지 않기 때문에 귀신이 무섭진 않다. 사람이 가장 무섭다. 특히 그 칠흑같이 어두운 숲 속에서 홀로 걸어오는 남자를 마주칠까 봐 제일 무서웠다. 그 남자는 틀림없이 내게 접근할 것이므로. 중년의 커플이나 나처럼 혼자 야경을 보러 온 여자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간절하게 하면서 한참을 더 올라갔지만 내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고. 나는 계속 혼자였다.


그리고 쉬가 엄청나게 마려웠다. 어차피 칠흑같이 어둡고 나를 제외한 인간의 기운은 전무하므로 그냥 으슥한 수풀에 쪼그려 방뇨를 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혹시 여기서 하의를 내렸다가 하필 그 순간 내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남자가 갑자기 나타난다면. 그 뒤로 펼쳐지는 상상이 너무 끔찍해서 노상방뇨는 꾹 참기로 했다. 결국 이러구러 고지에 이르렀으나 무성한 나무에 가려져 야경은 잘 보이지도 않았고, 블로그에서 봤던 커다란 달 포토존 같은 것도 없었다. 그제야 내 두 눈으로 확인하고 인정할 수 있었다. 내가 길을 잘 못 들었다는 것을. 이제 똑똑히 알았으니 하산하기로 했다.


이래서 역시 집 밖은 위험하고, 어디 모르는 곳에 다닐 때는 농노를 동반해야 하는데. 후회가 밀려왔고, 다시 내 차가 주차된 골목을 찾아 무사히 귀환할 수 있을지 걱정이 컸다. 만약 무사히 살아서 돌아갈 수 있다면 정말 착하게 살겠다고 다짐했다. 지독한 야맹증으로 통굽 크록스 신은 발을 헛디뎌가며 어려운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고 영혼이 너덜너덜해진 채 마침내 산을 내려오자, 선량해 보이는 중년 부부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왜 거기서 혼자 내려오냐고. 거기 뭐 있냐고.


나는 산에서 그토록 마주치기를 바랐지만 끝끝내 마주치지 못했던 중년 부부가 너무 반가워서, 거의 울듯이, 아무것도. 아무도 없었어요. 엄청 깜깜하기만 하고. 저 위는 야경 명소가 아니었어요, 했다. 아주머니는 내가 너무 딱하다는 듯이 정말 무서웠겠다고 했다. 나는 정말로 정말로 무서웠다고 칭얼거렸다. 그들은 이런 곳을 젊은 여자 혼자 다니면 위험하니까 조심하라고 했다. 그리고 어디서 왔는지 등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대화를 나누어주며 내 놀란 마음을 다독여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정말 친절하게도 원래 가고자 했던 그 야경 명소로 나를 데려다주었다. 아주머니는 헤어지면서도 내가 딱하고 짠해 보였는지 왜 혼자 온 거냐고 묻기에, 저는 다 컸으니까요. 하고 대답했다. 그들은 웃음을 터트리며 떠났다.


비록 길은 잃었지만 낙상도 안 하고, 강간이나 살인을 당하지도 않고, 달과 야경도 보고 무사히 살아서 귀환했으므로. 나는 앞으로 하나뿐인 내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착하게 살기로 굳게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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