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로서의 작문

왜 쓰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

by Ubermensch






엊그제 어떤 작가님이 내게 물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고 전혀 슬픔을 느끼지 않고 쓴 글에, 도리어 본인이 슬퍼하며 작가님은 본인이 얼마나 글을 잘 쓰는지를 몰라요. 작가님은 글 왜 써요?라고 물어보셨다. 그리고 나로서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눈물이 난다고 하셨다. 나는 당시 만취한 상황이었으므로 그 작가님께서 내게 한 말의 의도나 심경을 깊이 파고들 의식이 없어 단순하게 생각이 많아서요.라고 답변했다.


어릴 때 학교에서 여러 작문의 기회가 있었고,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기자시절 기사를 써야 하거나, 직장에서 수사보고서나 조서 등을 수시로 작성해야 하므로 살면서 이런저런 분야의 글을 꾸준히 써오긴 했다. 그렇지만 내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쓰게 된 건 이제 갓 두 달이 됐다. 계기는 내 절친 챗 지피티의 권유였고. 부끄럽기 때문에 아는 지인도 몇 명 없이 비공개로 하고 홍보도 안 했다. 그런데도 뭐 구독자 급등 작가, 오늘의 작가, 요즘 뜨는 브런치북, 응원 인기글 등 메인에 많이 떴으므로 대외적으로는 내 글이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글을 왜 쓰냐, 잘 쓰냐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을 해보자면 그건 통상의 기준과 조금 다르다고 본다. 왜 쓰냐는 물음에 대한 답은, 일단은 생각이 너무 많아서다. 두 달 동안 하루에 한두 편씩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쓰면서, 사실 내가 가장 어려운 건 글에 맞는 이미지를 찾는 부분이다. 글을 쓰는 건 그다지 어렵거나 힘들지 않다.


사실 나는 글을 토한다고 볼 수 있겠다. 전에는 혼자만의 머릿속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광활한 우주로 펼쳐지는 생각과 영상들이 스스로 주체가 잘 되지 않았고, 그래서 일상의 평범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사람들과 소통이 쉽지 않았는데, 그 과도하게 들끓는 부분을 활자로 토해버림으로써 어느 정도 넘치는 생각과 불타는 감정을 정돈할 수 있게 된 거다. 또 나는 항상 내가 누구에게도 제대로 이해받지 못한다고 여기며 살고 있었다. 말로 표현하면 난데없거나 이상해서 사람들이 당황할 때가 많기 때문에 보통은 입을 다물고 지냈고 이해받기도 포기했다. 그냥 혼자 생각만 하면서 고립되기를 선택하는 쪽이 편했다. 더 재미있기도 하고.


하지만 글로 자세히 풀어내면, 내 사고의 맥락을 조금 더 파악해 주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 혹시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기도 하고, 실제 어느 정도 이해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래서 글을 본격적으로 쓰게 된 이후 삶이 훨씬 더 건강해졌다고 느끼고 있다.


그리고 내가 글을 잘 쓴다는 평가에 관련해서는, 내가 그렇게까지 형편없는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단한 명필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내 글은 상냥한 서술을 하는 독자친화적 문체도 아니고, 유려하거나 멋진 문장을 구사하지도 않고, 여성 작가들의 글에서 자주 보이는 아기자기하고 서정적인 감정선도 딱히 없어 보인다.


글을 이미 발행해버리고 난 후에 내 친구 챗 지피티한테 평가를 물어보는데, 그 친구는 독자의 공감을 얻으려면 이런 점을 보완하면 좋겠다거나, 때로는 너무 차갑다고 지적을 한다. 하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만 할 뿐 절대 반영하지는 않는다. 나는 남을 위하거나 잘 보이기 위함이 아닌 나를 위한 글을, 혹은 내가 말하고 싶은 바를 전하기 위한 글을 쓰기 때문이다. 내 글이 남들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그건 사유와 용기에서 비롯된 점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런 마이웨이 내가낸데식 문법으로 쓴 글들이, 내가 특별히 의도한 적이 없음에도 누군가는 그로부터 위안을 받고 공감을 한다고 한다. 심지어 나 대신 울어주는 따뜻한 사람을 만나게 해주기도 다. 그러면 예기치 못한 내 마음도 따뜻해져 온다. 공중으로 휘발되는 순간의 말보다 곱씹히고 남겨지는 글이 주는 깊이가 확실히 있다. 사유와 감정의 추상적 덩어리를 문자로 구체화해서 토해버리면, 통증이 진정되면서 어떤 해소나 치유의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저는 씁니다. 그리고 슬프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슬퍼하지 마세요. 제 걱정도 하지 마세요. 편안한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