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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버(Giver)와 테이커(Taker)

애덤 그랜트의 관계패턴 중심의 고찰

by Ubermensch





후천적으로 형성되었든 선천으로 타고난 기질이든, 인간 사회에는 주는 사람, 베푸는 사람인 기버(Giver)와 받는 사람인 테이커(Taker)가 존재한다. 이리저리 계산을 해서 주는 만큼 받고 받은 만큼 주는 매쳐(Matcher)도 있다. 나는 테이커다. 운이 좋게도 내가 살아온 환경에는 기버가 많았다.


조직심리학자 애덤 그랜트는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에서 인간의 관계 패턴과 성공 전략을 기버와 테이커의 틀로 제시하여 설명했다. 기버는 타인의 이익과 감정을 먼저 고려하여 행동하고, 도움을 주는 것에서 스스로의 정체성과 의미를 느끼며, 인정욕구보다는 기여욕구가 강한 특징이 있다. 심리적 기제로는 타인의 감정 변화를 빠르게 읽고 불편을 최소화하려는 심리와,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도덕적 자기 정체성 개념에 기반하며, 거절이나 충동을 회피하며 관계의 유지를 우선시하는 경항성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성향의 사람들은 과도한 공감으로 인한 자기 소진과, 경계 설정을 실패하며,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희생당할 수 있다는 약점을 가진다.


테이커는 타인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자신의 필요를 채우고, 상호작용을 교환이 아닌 획득으로 인식하며, 외부의 인정과 통제감을 확보하고자 한다. 이는 세상을 경쟁의 장으로 인식하는 자기중심적 사고로부터 기인하며, 서열에 민감하고, 이 바탕에는 통제권을 행사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안을 관리하려는 보상심리가 있다고 한다. 테이커는 인간관계의 신뢰를 붕괴시킬 수 있고, 단기 성취 후 장기적 고립에 빠질 수 있으며, 자신의 성공을 타인의 덕으로 잘 인식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처에 속한다고 한다. 주고받음의 균형을 중시하는 유형으로, 주는 만큼 받아야 한다는 공정성의 원리 중심이고, 도움을 주더라도 나중에 회수가 가능하다고 느낄 때만 행동하는 관계 회계적 사고를 한다. 손해 보는 느낌에 매우 민감하여 사회적 시스템에서 현실적이고 지속가능하지만 혁신적인 성취나 깊은 신뢰 관계를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단점이 있다.


애덤 그랜트는 기버에게는 도움의 범위를 조정하며 거절 능력을 훈련해야 하고, 테이커에게는 공감 능력과 신뢰자본의 가치를 인식해야 하며, 매처에게는 계산을 내려놓고 진심으로 주는 경험을 늘릴 것을 권한다.


나는 테이커의 삶을 살았다. 특별히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항상 뭔가를 받는 게 자연스러웠다. 지위나 상황과 무관하게 남이 내게 베푸는 호의와 혜택을 편안하게 누렸다. 내 주변, 특히 연애 관계에 있어 내 지난 남자친구들은 기버의 역할을 맡았다. 이 관계의 기본 구조에는 어떤 착시가 있다.


기버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상대방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을 동력으로 삼아 감정적 안정을 제공한다. 테이커는 관계를 통제하기 위해 어떤 균열을 일으킨다. 보이지 않는 의존과 통제의 심리전이 벌어진다. 감정 교환의 목적은 기버에게는 애정과 공감이지만 테이커에게는 인정을 받고 우위를 점하는 것이고, 기버는 상대에게 돌봄과 헌신과 희생을 주지만 테이커는 평가와 칭찬과 무시를 교차해서 사용한다. 이 관계에서 보상은 기버에게는 상대방의 행복, 테이커에게는 상대방의 의존이다. 기버는 따뜻한 감정표현을 지속적으로 하고, 테이커는 간헐적으로 냉온을 교차한다.


단기적으로, 그리고 표면적으로만 보면 기버가 테이커에게 이용당하고 끌려다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 권력은 어느 순간 역전된다. 테이커에게는 죄책감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다. 기버의 방식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무언가를 받는 사람은 주는 사람이 있기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고, 그 관계는 주는 사람의 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므로 기버를 잃은 테이커의 박탈감은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더 크다. 진심을 주고 최선을 다한 사람은 관계가 종료된 후 후회가 적다. 주는 게 익숙한 사람은 누구에게든 줄 수 있다. 하지만 받는다는 것은 본인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계속 받아오다 어느 날 공급이 끊기면 그 충격과 상실감, 죄책감, 후회가 굉장히 오랫동안 남는다. 그리고 테이커가 무작정 받고 관계를 통제하고 조종하는 것이 단순히 그 위치가 편하거나 좋아서가 아니다. 선뜻 털어놓지 못했던 사실은 본인의 진짜 마음을 오롯이 꺼내보여 주는 게 무섭고 불안해서 그렇다. 이후를 감당하지 못하게 될 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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