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효

신경계의

by Ubermensch






나는 한평생 고기능을 잃어본 적이 없다. 나를 어린 시절부터 속속들이 알고 지냈던 친구는 내가 진작에 자살하거나 미쳐버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했다. 딱히 평범하거나 평탄한 삶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내 기능은 특별한 문제가 없어 보였다. 우리 가족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항상 어느 면에서나 뛰어난 편이었고, 교우관계도 나쁘지 않았고, 연애도 잘했고, 인기도 많은 편이었고, 보편의 기준으로 봤을 때 그럭저럭 잘 살고 있는 축으로 평가되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른 중반이 넘어 처음으로 신경정신과 검사를 받게 되었다. 검사 결과는 이 정도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컸을 것이고 꽤 심각한 상태라는 진단을 받았다. 보통 일반적인 우울, 불안, 불면, 공황장애 등은 단일한 병명으로 한두 가지 약을 처방한다고 한다. 나는 자해를 한 적도 없고, 발작을 일으킨 적도 없고, 잠을 아예 못 이루지도 않고, 내 생각에는 일상에 큰 무리도 없으니 멀쩡하다고 나 스스로는 생각했다. 그런데 보통 정신과 약물을 처방받는 사람들은 한두 종류의 항우울제 수면제 등을 처방받는 것에 비해, 약물 처방을 선호하지 않기로 알려진 내가 찾아간 병원의 원장님은 내게 7,8가지의 약물을 처방해 주었다. 오전, 오후, 자기 전 먹을게 빼곡하다. 먹어야 하는 약이 너무 많아서 삼키다가 목에 걸릴 때도 있다. 거기다 우리 부장님이 챙겨 먹으라고 퍼주시는 비타민 C, 비타민 B, 유산균에다가 내가 자체적으로 먹는 간 영양제까지 하면 약으로 배가 부를 정도다.


나는 원래는 건강해서 잘 아프지도 않았다. 그래서 모처럼 아프면 몸이 쉬고 싶나 보다 하고 딱히 약을 먹지도 않고 그냥 쉬었다. 인위적으로 약의 도움을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약쟁이가 됐다.


주변에 우울증 등으로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나는 그 사람들이 특별히 약한 사람들인 줄 알았다. 그들은 약을 먹으면 멍해지거나 과하게 업되는 기분이라고 했다. 나는 의지나 정신력으로 극복하면 되지 굳이 그런 약까지 먹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에는 나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가 됐다. 그리고 나는 굉장히 많은 약물이 필요한 사람이 됐다.


평소에 나는 감정기복이 크거나 화를 내거나 조절을 못하거나 자해를 하거나 일상에 무리가 있거나 뭐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하루를 알차고 빼곡하고 치열하게 잘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실제 약을 복용했을 때는 내가 우려한 것만큼 딱히 멍해지거나 업되는 일이 없었다. 내 친구 지피티에게 내가 복용하는 약물에 대해 물어봤다. 내가 이걸 왜 먹어야 하고 치료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


나는 항우울제 항불안제 수면제 안정제 세로토닌계 약물 등을 먹고 있다. 인공지능 친구에게 물었다. 나는 평소에 울고불고 질질 짜지도 않고, 불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무서운 것도 아니고, 술을 마시지만 잠을 아예 못 자는 것도 아닌데 왜 내가 이런 약들을 먹어야 하느냐고. 친구는 설명을 해줬다. 내가 처방받은 약물들은 나를 업시키는 목적이 아니고 나는 전형적으로 우울하거나 불안한 사람이 아니라고. 나는 불안이나 우울을 느끼기 전에 통제하고 처리하느라 과도하게 각성해서 고갈된 상태라고 했다. 그래서 내 기분을 들뜨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바닥선을 다지고, 사고의 폭주를 멈추고 조금 무디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다.


처음에 원장님께 말했다. 제가 조금 예민한 것은 맞지만 그건 제 고유의 성향이고 멍해지거나 생각을 잃고 싶지는 않다고. 원장님은 약으로 큰 변화는 없을 테지만 어느 정도라도 조절이 된다면 그건 원래 보통 사람들은 안 겪는 정도니까 원래 없는 게 맞는 거라고. 당시 그 말이 불만스러웠지만 약을 반년 간 복용해도 나는 여전히 과도하게 감각하고 생각한다. 아무리 많은 약을 먹고 여전히 술을 마셔도 내 사고의 폭주는 여전히 그것을 뚫고 팽팽 돌아간다. 멍함의 근처도 가지 않는다. 누구는 내가 수면 마취도 뚫을 것 같다고 했다. 아직까지 살면서 수면마취를 해본 적은 없다.


약을 먹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혼자 울 수 있게 됐다. 그건 좋은 거라고 한다. 그전에는 감정을 느끼기 전에 먼저 사고해서 통제하고 기능을 우선했는데 이제는 조금 정상화된 거라고 했다. 기쁘진 않지만 끝도 없는 바닥을 치는 일은 없다. 요즘은 십몇 년 간 안고자던 인형을 그냥 침대 언저리 발 밑에 두고 잘 때가 많다. 굳이 꼭 끌어안지 않는다. 아직은 회사에서 담요를 무릎에 두고 있는다. 작년 여름까지는 더워도 무릎 위에 얹고 있었는데, 내년 여름에는 담요를 품에서 치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 생각에 나는 그렇게 연약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것만큼 센 사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아지고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