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도시의 수사관
요즘은 일주일에 몇 명씩 사람을 불러 조사하고 있다. 작년에 본격적인 첫 조사를 앞두고 얼마나 요란을 떨었던지, 사무실 모두가 내 일정을 알고 있었다. 당시에는 재판을 담당하는 부서에 있었으므로 마땅한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구경할 수 있는 공개된 넓은 테이블에서 조사를 해야 해서 부담이 더 컸었다. 지금은 조사자의 권위를 보일 수 있는 나만의 책상과 피의자를 위축되게 만드는 전용 의자도 가지게 됐다. 내게 조사를 위임하시긴 하지만 등 뒤엔 든든한 부장님도 계신다.
경험이 없을 때는 조사를 앞두고 모든 면에 신경을 많이 썼다. 피의사실뿐만 아니라 관련사건까지 다 파악하느라 몇 주를 쏟아 공부했고, 조사 당일의 화장과 의상까지 심혈을 기울여 고르곤 했다. 마음이 콩닥거리는 걸 감추고 싶어서, 립스틱도 진한 색으로 바르고 아이라인도 평소보다 올려 그렸다. 전문적인 수사관처럼 보이려고 노력했다. 조사 당일 출근을 하면 사무실 직원들에게 내가 차가운 도시 수사관처럼 보이는지 확인하고 다녔다. 사람들은 내게 합격입니다, 해줬다. 경험이 좀 쌓이자 차림에 대한 신경은 좀 내려놨다. 대신 기록을 상세하게 검토해서 조서 초안을 꾸리는 일에 더 공을 들였다. 피의자의 변명을 예상하고 반박할 자료를 미리 복사해 두고, 빠져나가지 못할 만한 질문을 만드는 방법을 더 궁리했다. 이건 굉장히 재밌는 과정이다. 경험은 사람에게 여유를 준다.
오늘은 참고인 조사, 내일은 구속 피의자 조사 일정이 있다. 대면 조사 일정이 있는 날에 나는 책상 정리를 한다. 책상 위에 예쁜 쓰레기들과 귀여운 소품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내가 늘 무릎 위에 두고 있는 분홍색 담요도 캐비닛에 넣어둔다. 사람을 앞에 앉혀두고 조사를 할 때면, 나는 아기자기한 소품이나 보들보들한 담요를 좋아하는 여자가 아니라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고 혐의유무를 입증해야 하는 차가운 도시의 수사관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피조사자를 소환하기 전 기록을 검토하다 보면 먼저 동정심이 드는 사람도 있고, 너무 파렴치해서 화가 나는 사람도 있고, 범죄의 잔혹함과 무시무시한 전과에 겁이 나는 사람도 있다. 너무 무서운 사람이 있을 땐 부장님께 투정을 부려본다. 부장님, 어떤 부장님은 직접 조사를 하신대요. 이 사람은 여자를 담뱃불로 지지면서 강간을 했어요. 너무 무서운 사람입니다. 전과도 엄청나요. 그런 내게 부장님은 연가를 쓸 테니 혼자 잘해보라고 하셨다. 나는 부장님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조서 명의자가 부장님이신데. 하며 발끈했다. 부장님은 옆방 부장님이 계시지 않냐고 하고, 나는 얼굴을 잔뜩 구기며 불만을 티 냈다. 부장님은 내가 조사를 앞두고 동동거리거나 무서워하는 모습을 재미있어하신다. 우리 부장님은 유명한 범죄도시의 강력부장을 오래 맡으셨다. 사실 지금까지 내가 요란을 피우며 걱정했던 무시무시한 피의자가 내게 위해를 가하거나 함부로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평범한 사람들은 살면서 조사를 받으러 올 일이 거의 없다. 그게 맞다. 그래서 처음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굉장히 겁을 먹는다. 물론 수사기관에 드나드는 일이 익숙한 사람들도 많다. 이들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다. 각자 이곳에 소환되어 오는 마음은 제각각이겠지만, 그들을 불러 마주하는 나 또한 긴장한다. 긴장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최대한 준비를 하고 마음을 차게 식혀본다.
사람이 하는 일이므로 감정이 철저하게 배제될 순 없지만, 수사 과정에서는 동정도 분노도 두려움도 최대한 개입되지 않는 것이 좋다. 조만간 조직이 망한다 하더라도, 나는 오늘도 내일도 내게 주어진 기록 속 사람들을 만나 사건을 하나라도 더 종결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