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쓰는 주제

부러움.

by Ubermensch







나는 정직하고 솔직한 사람이다. 가식과 꾸밈이 딱히 없다. 그래서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날것이라는 표현을 종종 한다. 약점이 잡히거나 이용당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꺼내버려서 주변 사람들이 도리어 대신 걱정을 해줄 정도다. 그럼에도 내가 쉽사리 말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미처 꺼내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나는 이따금씩 죽음에 이르고 싶은 충동에 관한 구체적인 방법을 쓰고, 내 질병인 우울과 불안과 알코올중독 이야기도 쓰고, 불행한 성장 환경에 대해서도 쓰고, 일상의 이런저런 사고(事故)와, 사고(思考)에 관해서도 쓴다. 그럼에도 덮어둔 부분이 있다. 우리 아빠에 관한 것이다.


우리 부장님께는 딸 둘이 있다. 부장님께서는 매일 함박웃음을 짓고 내게 딸 이야기를 하신다. 우리 부장님과 나는 희소한 같은 성씨다. 함께 일하고 뒤늦게 알게 된바 우리는 본관과 파가 같고, 항렬이 딱 한대손 차이가 난다. 부장님은 41대손 나는 42대손. 우리 아빠 대(代)는 41대손 나는 42대손. 그래서 부장님과 나는 같은 가문의 부녀 대손 입장이다. 우리는 우연히 같이 일하게 되었지만 부장님은 몇 달 전 그 사실을 알게 되신 이후 내게 작은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셨다. 실제로 그렇게 부르진 않는다. 어쨌든 직장 상사와 나는 혈연관계로 따지면 생각보다 멀지 않은 관계다. 우리 가문은 단일 혈통이기 때문이다. 딸바보 부장님께서 딸 이야기를 시작하시면 나는 부하직원으로서 기계적인 리액션을 하며 동시에 항상 아빠 생각이 떠오른다. 우리 아빠는 이 세상에 없다. 세상에 있을 때도 내 옆에 있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부장님처럼 우리 가족의 가장(家長)이었던 적도 거의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아빠는 내게 다정했다. 잘생기고 키도 크고 몸도 좋고. 다만 무책임하고 무능력할 뿐이었다. 나는 아빠 때문에 많이 울었다. 아빠가 걱정돼서 그랬다. 아빠의 장례식장에서 고모들은 아빠가 나를 많이 자랑스러워했다고 했다. 아빠는 내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어주지 못했다. 고 아빠 스스로 생각할 것 같다. 작은아빠는 아빠 장례식장에서 딸은 크게 울어도 된다고 내게 몇 번이나 말했다. 나는 한때 수도꼭지라고 불릴 만큼 울보인데 정작 아빠 장례식장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이 울음이 크게 나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수년 전부터 나는 아빠의 죽음을 예감하고 너무 많이 울었었다. 그래서 정작 아빠의 부고를 듣자 그만큼 눈물이 안 나왔다.


어린 나를 보호해 줄 어른 울타리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성인이 된 내가 과거를 돌이켜보면 그 점이 스스로도 무척 안쓰럽다. 나를 함부로 대했던 사람들은 그 결핍의 냄새를 맡기라도 해서 그랬던 걸까 싶기도 해서 뒤늦은 지금도 서글프고 무섭다. 다음 생이 있다면 나는 가진 게 많지 않아도, 엄청 예쁘거나 잘생기지 않아도, 똑똑하거나 대단한 재능을 타고나지 않아도, 그저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에 태어나서, 젖은 베개에 얼굴을 대지 않아도 되는 집 울타리 안에서 성인으로 자라날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