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한국은행 유동성 대작전 1부

1부. 뱅크런은 핑계다, 한국은행은 왜 기업 쪽에 배관을 깔았나

by 마나월드ManaWorld
BOK-2.png 한국은행 유동성 대작전(금리인하가 막힌 나라의 우회로): 1부 뱅크런은 핑계다, 한국은행은 왜 기업 쪽에 배관을 깔았나


EP1. 금리인하가 막힌 나라의 우회로:

1부 뱅크런은 핑계다, 한국은행은 왜 기업 쪽에 배관을 깔았나.


1부 목차.

1. 금리 카드를 쓸 수 없는 나라

1.1. 전통적 처방의 봉쇄

1.2. 달러 패권의 메커니즘

1.3. "금리 외 수단 강화"라는 선언

1.4. 재정정책도 만만치 않다

1.5. 왜 하필 2025년 말인가: 복합 압력의 임계점


2. 그런데 왜 '뱅크런'을 말하는가?

2.1. 공식 서사: 디지털 시대의 예금 인출 속도

2.2. 공식 문서가 말하는 '진짜 트리거'

2.3. 그런데 한국에서 이게 말이 되나?

2.4. '낙인효과'를 피하는 프레이밍


3. 제도의 실체: 담보가 말해주는 진짜 목적

3.1. 담보 범위를 보면 답이 나온다

3.2. 왜 기업대출인가: 은행 자산 구조의 현실

3.3. 숨은 우려: 중소기업 자금사정


4. 제도 설계의 핵심: 사전수취(Pre-positioning)

4.1. 왜 '미리 준비'가 중요한가

4.2. 해외 중앙은행 사례 참고

4.3. 모의훈련과 테스트: '쓸 수 있는 창구'로 만들기

4.4. 그런데 왜 '자동'이 아니라 '재량'인가?


5. 한국에서 '뱅크런'보다 '신용경색'이 더 현실적인 이유

5.1. 한은이 보는 2026년: "불확실성이 큰 상황"


6. 1부 정리: 뱅크런은 명분, 실질은 신용경색 방지


들어가며: 명분과 기능 사이

2025년 12월 14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조용히 하나의 규정을 의결했습니다.

「한국은행의 금융기관 대출채권을 담보로 하는 긴급여신에 관한 규정」

2026년 1월 2일부터 시행됩니다.


뉴스 헤드라인은 한결같았습니다.

"디지털 뱅크런 대비", "SVB 사태 교훈", "유동성 안전판 강화".


그런데 제도 설계도를 펼쳐보면 이상한 점이 눈에 띕니다.

이 제도가 담보로 잡는 건 '예금'이 아니라 '금융기관이 보유한 대출채권'입니다.

그것도 법인기업 대출(부동산담보·신용)이 우선입니다. 주택담보대출은 제외됩니다.


뱅크런은 예금자가 돈을 빼는 사건입니다.

그런데 왜 담보는 기업대출일까요?


이 칼럼은 세 가지 질문에 답하고자 합니다.

첫째, 한국에서 '뱅크런'이라는 단어가 왜 지금 나왔는가?

둘째, 이 제도는 정말 뱅크런만 막으려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가?

셋째, 왜 미국처럼 '룰 기반 자동 창구'가 아니라 '금통위가 결정하는 재량형'으로 설계됐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뱅크런'은 커뮤니케이션 프레임(명분)이고,


제도의 실질 기능은

'금리 인하가 막힌 환경에서 기업 신용경색을 방지하는 백스톱'에 더 가깝습니다.


1. 금리 카드를 쓸 수 없는 나라

1.1. 전통적 처방의 봉쇄

경제학 교과서는 명확합니다.

경기가 부진하면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려 대출을 늘리고, 소비와 투자를 활성화시킵니다.

하지만 2025년 한국은 이 전통적 처방을 쓸 수 없었습니다.


금통위 의사록(22차, 11월 27일)을 보면 위원들의 고민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 중후반까지 상승하였는데,

이러한 흐름이 유지된다면 우리 경제에 차별화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높은 환율 수준은 수입물가를 통해 국내 물가와 소비 등 내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원화 환산 채무 규모 증대로 외화채무가 있는 금융회사,

기업 등의 재무건전성 비율이 악화될 가능성 등이 있다."


1.2. 달러 패권의 메커니즘

2025년 11월 기준, 한국 기준금리는 2.50%입니다.

같은 시점 미국 연방기금금리 목표는 4.25~4.50% 수준이었습니다.

(이후 2025년 12월 연준이 인하해 현재 3.50~3.75%.)


금리 격차가 벌어지면 자본은 수익률이 높은 곳으로 움직입니다.

미국 금리 >한국 금리

↓달러 자산 매력 상승

↓원화 매도 → 달러 매수

↓환율 급등 (1,400원대 후반)

↓수입물가 상승 → 인플레이션

↓금리 인하 불가능


금통위 의사록에서 위원들은 이 구조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최근의 환율 상승은 내외금리차 역전,

미 달러화 강세 이외에 거주자의 해외투자 확대 등 한국 고유의 구조적 요인에 크게 기인하며

이는 앞으로도 수급 불균형으로 환율이 높은 수준을 지속할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참고] 한국은행이 정리한 2025년 12월 이후 환율 흐름

한국은행 「국제금융·외환시장 동향」(2026.1.14)에 따르면:

• 원/달러 환율:

11월말 1,470.6원 → 12월말 1,439.0원 → 1월 12일 1,468.4원


• 변동 요인:

비거주자 NDF 순매입 전환으로 상승 →

외환시장 안정화 조치 영향으로 하락 →

달러 강세로 하락폭 축소


• 외국인 자금:

12월 순유입 74.4억 달러 (채권 +62.6억, 주식 +11.9억)


• 국내은행 대외차입 여건:

안정적인 모습 지속. 단기/중장기 대외차입 가산금리와 CDS가 소폭 하락, 낮은 수준 지속


외국인 자금이 들어오는데도 환율이 높은 레벨에서 등락하는 건,

거주자 해외투자·NDF 같은 달러 수요 요인이 계속 작동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한은이 금리 인하를 조심스러워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1.3. "금리 외 수단 강화"라는 선언

2026년 총재 신년사에서 이창용 총재는 이 제약을 공식화합니다.

"2025년 하반기에는 수도권 주택시장 불안과 환율 변동성 심화 등으로

성장과 금융안정 간 긴장이 커지면서 기준금리를 동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해법을 제시합니다.

"기준금리 외 통화신용정책 수단을 강화해 나가겠습니다.

대출제도의 유동성 안전판 역할을 확대하고,

그 일환으로 은행 대출채권 적격담보 시스템을 올해부터 가동합니다."


금리를 못 내리니, 배관(담보·창구)으로 유동성을 공급하겠다는 선언입니다.


1.4. 재정정책도 만만치 않다

금리를 못 내리면 재정으로 우회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실제로 2025년 정부는 민생지원금 등 재정정책으로 유동성을 공급했습니다.


하지만 재정 확대는 국채 발행을 수반합니다.

국채 발행이 늘면 시장금리가 오르고,

민간의 자금조달 비용이 높아지는 크라우딩 아웃(crowding out) 우려가 생깁니다.


금통위 의사록(22차)에서도 이런 맥락이 등장합니다.

"은행의 채권 발행 확대,

예금금리 인상 경쟁 등으로 연말로 갈수록 시중유동성 상황이 타이트해지면서,

중소기업 등의 자금조달 사정이 어려워질 수 있다."


즉, 금리 카드는 환율 때문에 막혀 있고, 재정 카드는 국채 수급 때문에 비용이 큽니다.

이 두 제약 사이에서 한국은행이 선택한 게

'금리 외 수단' - 담보 창구를 통한 유동성 백스톱입니다.


1.5. 왜 하필 2025년 말인가: 복합 압력의 임계점

이 제도가 2025년 12월에 나온 건 우연이 아닙니다.

대외 환경이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총재 신년사에서 이창용 총재는 이렇게 말합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관세 조치가 전례 없이 높은 강도로 이루어지고 있어,

4월 상호관세 부과를 계기로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2025년 한국 경제는 수출 증가세 둔화, 내수 부진 지속 등으로 성장세가 크게 낮아졌습니다."


금융시장도 흔들렸습니다.

같은 신년사에서:

"12월 초에는 국내 정치상황 급변의 여파로

주가, 환율, 금리 등 금융시장 변수들의 변동성이 크게 확대되고,

대외신인도 하락, 자본유출 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었습니다."


은행권 자금 흐름도 타이트해졌습니다.

금통위 의사록(22차)에서:

"은행 수시입출금예금이 감소하는 가운데 정기예금, 은행채 등을 통한 자금 확보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연말로 갈수록 시중유동성 상황이 타이트해지면서, 중소기업 등의 자금조달 사정이 어려워질 수 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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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압력이 2025년 하반기에 동시에 몰렸습니다.

금리를 내리자니 환율이 문제고,

재정을 쓰자니 국채 부담이 문제고,

가만히 있자니 기업 자금경색이 문제입니다.


한국은행이 '대출채권 담보 긴급여신'을 2025년 12월 14일에 의결하고,

2026년 1월 2일에 시행한 건, 이 복합 압력의 임계점에서 나온 선택입니다.


2. 그런데 왜 '뱅크런'을 말하는가?

2.1. 공식 서사: 디지털 시대의 예금 인출 속도

한국은행 보도자료(2025년 12월 14일)는 제도 도입 배경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금융의 디지털 전환 가속화 등으로 급격한 유동성리스크 발생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중앙은행 대출제도의 유동성 안전판 역할을 강화할 필요성이 증대"


그리고 SVB 사례를 듭니다.

"2023년 미국 SVB에서는 SNS 등을 통한 불안심리 확산으로 이틀 만에 예금의 85%가 인출되었고,

SVB 영국법인에서도 하루 만에 30%의 예금이 이탈"


2.2. 공식 문서가 말하는 '진짜 트리거'

그런데 한국은행 보도자료를 더 자세히 읽으면, '뱅크런'보다 더 현실적인 트리거가 적혀 있습니다.

"자금조달·운용 불균형 등으로 유동성이 악화되거나

전산장애 등으로 지급자금의 일시적 부족이 발생하는 경우"

이 문장이 중요합니다.

'예금자가 줄 서서 돈을 빼는' 전통적 뱅크런이 아니라,

자금 미스매치(조달과 운용의 타이밍 불일치)나 운영 리스크(전산장애)가 트리거로 명시돼 있습니다.


실제로 현대 금융시스템에서 은행이 급하게 현금이 필요해지는 상황은 대부분 이쪽입니다.

대규모 결제일에 자금이 몰리거나,

시장 조달이 일시적으로 막히거나,

예상치 못한 시스템 문제가 생기는 경우입니다.


'디지털 뱅크런'이라는 단어는 미디어 친화적이지만,

제도 설계는 더 넓은 범위의 유동성 쇼크를 상정하고 있습니다.


2.3. 그런데 한국에서 이게 말이 되나?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한국의 1금융권 은행 수는 미국처럼 수천 개가 아닙니다. 소수 대형은행 중심 구조입니다.

게다가 2025년 9월부터 예금보호 한도가 5천만원에서 1억원으로 올랐습니다.


금통위 의사록(22차)에서도 관련 부서는 이렇게 보고합니다.

"국내은행의 대외차입 여건은 안정적인 모습을 지속…

단기/중장기 대외차입 가산금리와 CDS가 소폭 하락, 낮은 수준 지속"


은행 시스템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이 아니라는 겁니다.


2.4. '낙인효과'를 피하는 프레이밍

금통위 의사록(24차, 12월 19일)에서 핵심적인 대화가 오갑니다.

외화지준 부리(이자 지급) 안건을 논의하면서 한 위원이 이렇게 말합니다.

"과거 금융경제 위기시에는 동 수단이 외환당국의 마지막 정책수단으로 인식되거나

외부에 심각한 상황임을 자인하는 낙인효과 등의 부작용이 우려되어

도입하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다른 위원은

"시장에서 금번 조치를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사전 준비과정이란 본래의 취지대로 인식하기보다는

외환수급 여건 악화에 따른 최후의 수단으로 오인하지 않도록 세밀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필요가 있다."

핵심이 여기 있습니다.


한국은행은 '위기 대응'이라는 말이 시장에 주는 신호를 극도로 경계합니다.

"뱅크런 대비"라는 프레임은 '시스템 위기'가 아니라

'사전 준비'로 읽히게 만드는 커뮤니케이션 장치입니다.


3. 제도의 실체: 담보가 말해주는 진짜 목적

3.1. 담보 범위를 보면 답이 나온다

이 제도가 담보로 인정하는 대출채권의 범위를 봅시다.

"우선 법인기업의 부동산담보대출(주택담보대출 제외) 및 신용대출로서 차주의 신용등급이

양호(BBB-등급 이상이거나 예상부도확률 1.0% 이내)한 대출채권으로 한정하고 이후 점차 넓혀나갈 계획"

그리고 제외 조건도 명확합니다.

"금융회사 및 특수관계자에 대한 대출, 후순위 대출 등은 제외"


정리하면:

image.png

주택담보대출은 빠졌습니다. 가계가 아니라 기업입니다. 그것도 우량 기업입니다.

금융회사 간 상호대출도 제외해서 상호연계 리스크도 차단했습니다.

(은행끼리 서로 대출해주다가 같이 무너지는 위험)


3.2. 왜 기업대출인가: 은행 자산 구조의 현실

한국은행 보도자료는 이유를 직접 밝힙니다.

"금융기관 자산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출채권을 담보로 활용함으로써

유사시 충분한 유동성 공급 기반을 마련"


그리고 숫자를 제시합니다.

"은행의 총자산 중 비중(2025.6월말 기준): 대출채권 69.8%, 시장성증권 18.6%"

은행 자산의 70%가 대출입니다.


위기 때 은행이 현금을 만들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 보유 증권을 판다 → 투매(fire sale) → 시장금리 급등 → 불안 확산

• 대출을 회수한다 → 기업 자금경색 → 신용경색 → 실물 충격


한국은행이 이 제도로 막으려는 건 바로 이 경로입니다.

"금융기관이 일시적 자금 부족시 시장성증권을 투매(fire sale)하지 않고도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되어 금융시장 불안을 예방하는 효과"


3.3. 숨은 우려: 중소기업 자금사정

금통위 의사록(22차)에서 위원들은 실제 우려 지점을 드러냅니다.

"미 관세부과, 고환율 지속에 따른 영향이 경제주체별로 차별화되어 나타날 수 있는데,

특히 연말 금융기관의 대출행태를 감안하면 중소기업 자금사정이 악화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관련 동향을 세밀하게 살펴봐 달라."


또 다른 위원은 이렇게 말합니다.

"은행 수시입출금예금 감소, 은행채 발행 확대…

연말로 갈수록 시중유동성 상황이 타이트해지면서,

중소기업 등의 자금조달 사정이 어려워질 수 있다."


'뱅크런'이라는 단어는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중소기업 자금사정', '대출행태', '유동성 타이트'가 반복됩니다.


4. 제도 설계의 핵심: 사전수취(Pre-positioning)

4.1. 왜 '미리 준비'가 중요한가

이 제도의 가장 독특한 점사전수취(Pre-positioning)입니다.

"필요시 신속한 담보 활용을 위해 한국은행은 금융기관이 주기적으로 제공한

대출채권 정보에 대해 적격요건 심사, 담보인정가액 산정 등을 통해

담보활용 절차를 사전에 상당 부분 완료"


왜 이렇게 하는가? 한국은행은 SVB 사례를 직접 인용합니다.

"2023.3월 뱅크런 발생 시 SVB는

미 연준 재할인 창구에 대규모 자금을 요청하였으나 담보물 평가,

테스트 거래 등 실무 준비가 부족하여 적시에 자금을 확보하지 못함"

창구가 있어도 준비가 안 되면 못 쓴다는 교훈입니다.


4.2. 해외 중앙은행 사례 참고

금통위 의사록(23차, 12월 11일)에서 관련 부서는 이렇게 보고합니다.

"대출채권 담보 활용에 오랜 역사와 경험을 가진 미 연준,

영란은행 등 주요국 중앙은행과의 면담 등을 통해

대출채권 정보 수취 및 관리 방안을 마련하고

적격담보 범위와 담보인정비율 설정시 주요국 중앙은행의 사례를 참고하였다."


미국과 영국의 백스톱 시스템을 학습해서 한국에 이식한 겁니다.


4.3. 모의훈련과 테스트: '쓸 수 있는 창구'로 만들기

한국은행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금년 말까지 금융기관과 IT시스템 테스트 등 사전 준비를 거쳐

내년 1월부터 새로운 긴급여신 지원체계를 시행할 계획이며,

필요시 모의훈련도 실시할 예정"


IT 테스트와 모의훈련.

이건 단순히 "제도를 만들었다"는 발표가 아닙니다.

실제로 위기 때 돌아가는지 확인하겠다는 뜻입니다.


2부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미국 연준의 Standing Repo Facility(SRF)도 참여기관들에게 정기적인 테스트 거래를 기대합니다.

"평소에도 쓰는 창구"로 만들어야

"위기 때만 쓰는 낙인"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한국은행이 모의훈련까지 언급한 건,

이 제도가 '발표용'이 아니라 '실제 작동용'으로 설계됐다는 신호입니다.


4.4. 그런데 왜 '자동'이 아니라 '재량'인가?

여기서 핵심적인 차이가 드러납니다.


미국의 Standing Repo Facility(SRF)는 룰 기반입니다.

금리, 담보, 한도가 미리 정해져 있고, 조건만 맞으면 자동으로 작동합니다.


반면 한국은 이렇게 설계했습니다.

"금융통화위원회가 추가적인 유동성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판단할 경우

의결을 통해 대출채권을 담보로 긴급여신을 지원"


"긴급여신의 대상기관, 대출한도, 대출금리, 대출기간 등 구체적인 사항은 금통위 의결로 결정"


'금통위가 결정한다'는 건 재량(discretion)입니다. 왜 이렇게 했을까요?

이건 2부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5. 한국에서 '뱅크런'보다 '신용경색'이 더 현실적인 이유

한국 금융시장의 구조를 보면, 전통적 뱅크런보다 신용경색 전염이 더 현실적인 리스크입니다.


첫째, 대주단(신디케이션) 구조입니다.

대형 기업대출은 여러 은행이 공동으로 참여합니다.

A은행이 특정 기업 때문에 흔들리면, 같은 익스포저를 가진 B·C은행도 의심받습니다.

"A은행만의 문제"로 끝나기 어렵습니다.


둘째, 자금 이동의 한계입니다.

한국 1금융권은 소수 대형은행 중심입니다.

A은행에서 B은행으로 예금이 이동해도, 금융시스템 전체의 유동성 총량은 크게 변하지 않습니다.

진짜 문제는 특정 은행의 '당일 현금 부족'이고,

그 부족을 메우려고 대출을 회수하면 기업 쪽으로 충격이 전이됩니다.


셋째, 예금보험 확대입니다.

2025년 9월부터 예금보호 한도가 5천만원에서 1억원으로 올랐습니다.

소매 예금자의 패닉 유인이 줄었습니다.

빠르게 움직이는 건 보험 한도 밖의 기관·법인 자금이고,

이 자금이 빠지면 은행은 기업대출로 현금을 만들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한국에서 중앙은행이 막아야 할 건 '예금자 줄서기'보다

'은행이 대출을 조이면서 기업으로 번지는 신용경색'입니다.

이 제도의 담보가 '기업대출채권'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5.1. 한은이 보는 2026년: "불확실성이 큰 상황"

한국은행은 2026년 경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공식 문서를 보면 낙관과는 거리가 멉니다.


경제상황평가(2026년 1월):

"국내 성장경로의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다."

"비IT 수출과 설비투자가 관세 등의 영향으로 부진한 흐름을 지속하고 있다."

"민간소비는 고용 부진 등의 영향으로 회복이 완만하다."

"건설투자도 건축 부문 조정의 영향으로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물가 쪽도 불확실합니다:

"물가경로의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다."

"고환율 등 상방요인이 있어, 향후 물가경로는 환율과 유가 움직임에 크게 좌우될 것이다."


총재 신년사는 더 직접적입니다:

"올해 우리 경제는 대외 여건 악화로 작년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는 수출, 투자 등 실물경제에 직접적 영향을 줄 뿐 아니라

불확실성 확대를 통해 민간의 경제활동을 더욱 위축시킬 수 있습니다."

"높아진 환율은 물가 측면에서 금리 인하 여력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한은이 스스로 "작년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인식 위에서 '금리 외 수단 강화'가 나온 겁니다.

경기가 어려운데 금리를 못 내리니,

다른 통로로 취약 부문에 유동성을 공급할 준비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6. 1부 정리: 뱅크런은 명분, 실질은 신용경색 방지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표면(공식 서사):

디지털 뱅크런 대비

SVB 사태 교훈

유동성 안전판 강화


실질(제도 설계가 말하는 것):

담보가 '기업대출(법인, 우량)'이다

트리거가 '자금 미스매치/전산장애' 등 더 넓은 유동성 쇼크다

기대효과가 '투매 방지 → 시장불안 예방'이다

금통위 의사록에서 실제 우려는 '중소기업 자금사정'이다


배경(왜 지금):

금리 인하가 환율/금융안정 때문에 막혀 있다

재정도 국채발행 비용(크라우딩 아웃)이 크다

총재가 '금리 외 수단 강화'를 공식 선언했다

한은이 2026년을 "작년보다 더 어려운 상황"으로 전망한다


결론적으로, 이 제도는 '뱅크런이 오면 막겠다'가 아니라

'유동성이 마를 때 은행이 기업대출을 회수하지 않아도 버틸 수 있게 하겠다'에 더 가깝습니다.


한국은행이 '뱅크런'이라는 단어를 쓰는 건

시장에 '위기'라는 신호를 주지 않으면서 제도를 정당화하는 커뮤니케이션 전략입니다.


2부 예고

2부에서는 더 깊이 들어갑니다.

첫째, 연준의 SRF는 왜 ‘룰 기반 상설’인데, 한국은 왜 ‘금통위 재량’으로 설계했는가?

둘째, 위기 때 창구를 써도 되는지 못 쓰게 만드는 ‘낙인효과’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셋째, 이 제도가 가동되면 누가 혜택을 보고, 어떤 부작용(도덕적 해이·대마불사 논란)이 생길 수 있는가?

넷째, 투자자는 무엇을 보면 이 제도의 실효를 확인할 수 있는가(스프레드·롤오버·발동 시그널)?

다섯째, 2026년은 ‘금리’만이 아니라 ‘유동성이 흐르는 배관’을 함께 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마지막 질문에 답합니다.

"한국은행이 말하는 '뱅크런'은 사건이 아니라 속도(유동성 경색의 전염 속도)다.

그래서 금리 대신 배관을 깔았다."


-1부 끝-




참고자료(한국은행)

1.한국은행, 금융기관 대출채권을 담보로 하는 긴급여신 지원체계 구축 (2025.12.14)

2.2025년도 제22차 금통위 의사록 (2025.11.27)

3.2025년도 제23차 금통위 의사록 (2025.12.11)

4.2025년도 제24차 금통위 의사록 (2025.12.19)

5.2025년도 제25차 금통위 의사록 (2025.12.23)

6.경제상황 평가(2026.1월) (2026.01.15)

7.2025년 12월 이후 국제금융,외환시장 동향 (2026.01.04)

8.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2026년 신년사 (2026.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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