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사람이 돌아오는 도시를 만드는 법
2018년 12월 23일, 대구 중구 대신동.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일요일 오후 3시.
한창 북적여야 할 시간이다.
그런데 거리는 죽어있었다.
"여기가 정말 그 유명한 대신동 떡볶이 골목 맞아?"
30년 역사를 자랑하는 '떡볶이 1번지'.
한때는 줄 서서 먹던 명소였다. 이제는 절반이 문을 닫았다.
가게 주인 김 씨(62세)의 증언:
"예전엔 하루에 떡 50kg도 모자랐어요.
지금은 10kg도 안 나가요. 손님이 없어요. 다 어디 갔는지..."
어디 갔을까? 답은 3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일부 상황·인물·대사는 재구성되었습니다.)
같은 날, 같은 시각, 3km 떨어진 동성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야! 여기야 여기!" "언니 저기 카페 가자!" "아 사람 너무 많아!"
같은 도시, 불과 3km 차이. 한쪽은 죽고 한쪽은 산다. 왜?
일반적인 설명:
• 교통이 편해서 (지하철역 연결)
• 상권이 커서 (백화점, 영화관)
• 젊은 층이 많아서 (대학가 인접)
그럴듯하다. 하지만 뭔가 빠졌다.
진짜 이유를 찾기 위해 실험을 해봤다. 동성로에서 만난 20대 10명에게 물었다.
"왜 여기 왔어요?"
답변을 분류하면:
• 친구 만나려고: 7명
• 데이트하려고: 2명
• 그냥 심심해서: 1명
'쇼핑하려고'는 0명이었다.
보라. 사람들은 물건을 사러 오는 게 아니다. 사람을 만나러 온다.
(일부 상황·인물·대사는 재구성되었습니다.)
경제학 교과서는 뭐라고 하나?
"소비자는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선택한다."
헛소리다.
진짜 경제는 이렇게 작동한다:
대신동 떡볶이 골목의 전성기 (1990년대):
고등학생 A:
"야, 학원 끝나고 떡볶이 먹으러 가자"→ 친구 5명이 따라감→ 옆 테이블 다른 학교 학생들과 수다→
다음 주 또 만남→ 단골 형성→ 10년 후 직장인이 되어서도 추억 때문에 방문→ 자녀 데리고 방문
현재의 대신동:
고등학생 A: "거기 이제 아무도 안 가던데"→ 끝
차이가 보이는가? 전자는 '관계의 선순환', 후자는 '관계의 단절'.
숫자로 증명해보자.
도시 상권 연구에 따르면:
• 혼자 쇼핑: 평균 체류 시간이 짧다
• 친구와 쇼핑: 체류 시간이 3배 이상 길다
• 체류 시간과 소비액: 정비례 관계
관계가 돈이다. 문자 그대로.
1960년대, 한국은 급속한 도시화를 시작했다. 롤모델은? 르 코르뷔지에의 '빛나는 도시'.
르 코르뷔지에의 도시 원칙:
1. 기능의 분리 (주거/상업/공업 구분)
1. 고층 건물과 넓은 녹지
1. 자동차 중심의 도로
1. 효율성의 극대화
듣기엔 좋다. 그런데 결과는?
한국 신도시의 현실:
• 강남 테헤란로: 낮엔 직장인 지옥, 밤엔 유령도시
• 분당 정자동: 카페는 많은데 앉아있는 사람끼리 대화 없음
• 일산 라페스타: 주말엔 북적, 평일엔 썰렁
왜 이렇게 됐나?
기능 분리의 함정:
• 주거 지역 → 아침에 텅 빔 → 상권 죽음
• 상업 지역 → 저녁에 텅 빔 → 임대료만 상승
• 공업 지역 → 사람이 없음 → 도시가 아님
르 코르뷔지에가 놓친 것: 도시는 기계가 아니라 유기체다.
그런데 청주 성안길은 달랐다.
2015년 5월, 메르스(MERS) 사태가 터졌다.
전국이 얼어붙었고, 성안길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때 누군가 나섰다. 롯데시네마였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뭐라도 해봅시다."
상인회가 응답했다. "좋습니다. 해봅시다."
성안길 부활 프로젝트:
1단계: 절박한 시작 (2015년 5월-6월)
• 메르스로 텅 빈 거리
• 영화관의 제안: "거리 공연 어때요?"
• 상인회: "돈은 없지만 장소는 제공할게요"
• 공연팀: "우리는 재능기부할게요"
2단계: 관계의 확산 (2015년 7월-12월)
첫 공연 시작 (관객 50명)→ 공연자 가족/친구 구경→
"어? 재밌네"→ 입소문→ 다음 주 관객 80명→
다른 팀도 참여 의사→ 매주 정기 공연화
3단계: 시스템화 (2016년 이후)
• 시민 주도 운영 체계 구축
• 매주 토요일 '지금 만나러 갑니다'
• 10회까지 순수 재능기부로 진행
• 이후 청주시, 한국관광공사 지원
결과 (논문 조사 기준):
• "성안길이 문화공간 이미지로 변신" (방문객 평가 1위)
• "거리문화공연의 양적 증가"
• "상권이 정상화되고 있다" (상인회 평가)
• 경제·문화이미지 효과와 사회·교육적 효과 확인 (상품학연구, 2016)
(일부 상황·인물·대사는 재구성되었습니다.)
(상품학연구 2016년6월 - 도심 축제의 거리문화공연이 지역 활성화에 미치는 영향:
‘청주시 성안길 거리문화공연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중심으로 - 박하늘, 남문희, 김주호, 정강환)
주: 2025년 현재 성안길은 성공 이후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맞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죽은 도시가 살아난' 다음 단계의 문제다.
같은 시기, 천안역 앞 상권도 위기였다.
천안시의 대응은? "크리스마스 축제"
천안 크리스마스 축제 (2017-2018년)
천안시와 종교단체가 주도하여 시작했다.
겨울 관광상품을 만들고, 구도심을 살리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그런데...
천안 상인 조사 결과 (2018년):
• "축제프로그램이 단조롭고 형식적" (4.00/5.00 - 가장 높은 불만)
• "한 달간 진행한다지만 평일엔 트리만 설치"
• "주말에만 몇 시간 반짝 행사"
• "상인과 협조 부족, 일방적 진행"
• "홍보 미흡으로 축제하는지도 모름"
천안역 주변 상인의 목소리:
"트리만 세워놓고 축제라고 하니...
평일엔 행사가 있는지도 몰라요.
주말에 잠깐 뭘 하는데, 우리랑 상의도 없이 그냥 하더라고요."
결과:
• 일회성 반짝 효과만
• 상권 활성화 체감도: 거의 없음
• 상인 만족도: 매우 낮음
왜 실패했나?
천안 축제의 구조:
행정·종교단체 주도→ 상인 의견 수렴 없음→ 형식적 프로그램→ 시민은 구경꾼→ 일회성 소비→
관계 형성 없음→ 지속성 없음
성안길과의 결정적 차이:
• 성안길: 시민이 만들고 시민이 즐김 (매주 지속)
• 천안: 행정이 만들고 시민은 구경 (연 1회)
(일부 상황·인물·대사는 재구성되었습니다.)
(한국철도학회 2019 - 이재용, 이광옥
천안 구도심 도시재생을 위한 축제행사가 천안역 주변 지역상권 활성화에 미치는 영향)
경제지리학에 '레일리의 소매인력 법칙'이 있다.
"큰 도시가 작은 도시의 구매력을 빨아들인다"
공식도 있다:
도시 A의 흡인력 = (도시 A의 인구 / 거리²)
그런데 청주는?
청주(84만) vs 대전(146만) 거리: 45km 청주 vs 세종(37만) 거리: 35km
레일리 법칙상 청주는 대전에 흡수되어야 맞다.
• 인구: 대전이 1.7배
• 거리: 자동차로 40분
하지만 성안길은 독자적으로 번성한다. 왜?
답: 관계의 중력은 물리적 거리를 초월한다.
성안길 단골 박모 씨(32세):
"대전? 가끔 가죠. 그런데 거기는 그냥 '큰 도시'예요. 성안길은 '우리 동네'고요.
여기서 공연하는 애들 다 알아요. 카페 사장님도 제 이름 알고."
새로운 공식이 필요하다:
도시의 생존력 = (관계의 밀도 × 참여의 깊이 × 지속성) ÷ (심리적 거리 × 익명성)
물리적 거리보다 심리적 거리가 중요하다.
우리는 70년간 착각했다.
착각 1: 건물이 도시다
• 진실: 사람이 도시다
착각 2: 인프라가 발전이다
• 진실: 관계가 발전이다
착각 3: 효율성이 목표다
• 진실: 지속가능성이 목표다
도시의 뼈대 (하드웨어):
• 도로, 건물, 공원, 전기, 수도
• 필요하다. 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도시의 영혼 (소프트웨어):
• 이웃 간의 인사
• 골목의 추억
• 함께하는 축제
• 공유하는 이야기
• 지속되는 만남
뼈만 있고 영혼이 없으면? 좀비다. 움직이지만 죽은 것이다.
지금 한국의 수많은 도시가 좀비가 되어가고 있다.
경제학은 자본을 이렇게 분류한다:
• 물적 자본 (기계, 건물)
• 인적 자본 (교육, 기술)
• 금융 자본 (돈)
하나 빠졌다. 관계 자본(Social Capital).
관계 자본의 특징:
1. 쓸수록 늘어난다 (수확체증)
1. 혼자서는 만들 수 없다
1. 돈으로 살 수 없다
1. 하지만 돈을 만든다
1. 시간이 필요하다 (지속성)
성안길의 관계 자본 생성 구조:
시민 A가 공연 참여→ 시민 B, C가 구경→ 서로 인사하게 됨→ 다음 주 또 만남→ 친구가 됨→
함께 근처 카페 감→ 카페 사장과도 친해짐→ 동네 네트워크 형성→ "우리 동네" 의식 생성→ 자부심 →
더 많은 참여→ 매주 반복 (지속성)
측정 가능한 효과:
• 상인들: "상권이 정상화되고 있다"
• 방문객: "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다"
• 청년들: "창업하고 싶은 거리가 됐다"
관계가 돈이 된 것이다. 단,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공식을 바꿔야 한다.
기존 공식:
도시 재생 = 낡은 건물 철거 + 새 건물 건설 + 도로 정비
새로운 공식:
도시 재생 = (시민 참여 × 일상 문화) + (작은 성공 × 반복) + (관계 형성 × 시간) + (정책 지속성)
복잡해 보인다고? 쉽게 말하면 이거다:
"건물을 새로 짓지 말고, 사람들이 만나게 하라. 그리고 계속하라."
마지막 질문이다.
당신이 사는 도시를 진단해보자.
도시 건강 체크리스트:
□ 저녁 7시에 거리에 사람이 있는가?
□ 이웃의 이름을 3명 이상 아는가?
□ 동네에서 열리는 모임이 있는가?
□ 청년들이 창업하고 싶어하는가?
□ 주민이 직접 만드는 행사가 있는가?
□ 그 행사가 1년 이상 지속되는가?
진단 결과:
• 4개 이상 체크: 건강한 도시
• 2-3개: 위험 신호
• 0-1개: 좀비 도시
만약 당신의 도시가 죽어가고 있다면?
절망하지 마라. 성안길도 죽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시민 몇 명이 시작한 작은 춤판이 도시 전체를 살렸다.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고 계속한 것이다.
도시는 정부가 살리는 게 아니다.
도시는 시민이 살린다.
그리고 그 시민은 바로 당신이다.
다음 장에서는 어떻게 시민의 작은 참여가 거대한 경제적 가치로 전환되는지, 그리고 왜 지속성이 성공의 핵심인지 실제 데이터로 증명해볼 것이다.
기억하라. 관계가 없으면 도시는 죽는다. 하지만 관계가 있고, 그것이 지속되면 기적이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