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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델리에서의 다짐

세 번 쓰러지고 네 번 일어선 회복탄력성 이야기

by 연옥

"너는 뭘 해도 잘 될 거야"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말이다.

주변의 말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공대에 입학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했고,

수업이 끝나면 캠퍼스 농구장에서 땀을 흘리거나

동아리 모임과 뒤풀이로 하루를 보냈다.

시험 기간이면 도서관 불빛 아래에서 밤을 지새우는 일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시절 대기업 취업은 일정한 스펙이 공식처럼 요구됐다.

토익 900점대, 어학연수, 기사 자격증, 공모전.

마지막 학기는 해외 인턴십으로 채울 계획이었다.

불안보다는 기대가 컸다.


시내버스 안에서 우연히 중학교 동창을 만났다.

그 친구는 약학대학입학자격시험, 피트(PEET)를 준비한다고 했다.

처음 듣는 시험이었지만 '약학'이라는 단어가

오래전 서랍 속에 넣어둔 꿈을 다시 꺼내놓았다.


열아홉, 나도 약사가 되고 싶었다.

전문직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누군가의 아픔을 덜어주는 일에 막연히 끌렸다.

하지만 수능 성적은 거기까지 닿지 못했고

취업이 잘된다는 이유로 컴퓨터공학과를 선택했다.


그날 이후, 시험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시험일정, 경쟁률, 출제유형, 합격수기.

해볼 만하다고 느꼈지만,

취업을 앞둔 시점에 진로를 바꾸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 아니면 두번 다시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

머리는 무모하다고 말했지만,

마음은 이미 그곳으로 향해 있었다.

결국 해외 인턴십과 피트 준비를 병행하기로 결정했다.

어려운 선택이었지만 마음은 오히려 가벼웠다.

두려움보다는 기대가, 막연함보다는 선명한 미래가 그려졌다.


강의를 결제했다. 한 학기 등록금에 가까운 금액.

수험생들의 절박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입시학원은 매년 그 금액을 올리고 있었다.

나는 이 정도는 투자해야 합격한다며 부모님을 설득했다.

기초 강의부터 시작했다.
생명과학과 물리는 교양과목으로 수강해둬서 익숙했지만 화학이 문제였다.

유기화학은 특히 잔인했다.

탄소 사슬, 작용기 같은 단어들은 낯설었고,

입체 구조는 빙글빙글 돌려봐도 도무지 이해가 안됐다.

그래도 괜찮았다.

강의를 돌리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달음이 올 거라고 믿었다.


해외 인턴십에 합격했다. 목적지는 인도 뉴델리.

습기와 먼지가 뒤섞인 이른 아침 출근길,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원숭이 세 마리와 신경전을 벌였다.

어김없이 시작되는 눈치싸움,

각자의 스카우터로 서로의 전투력을 가늠했다.


졌다.

어제의 일을 복수라도 하려는 듯,

고릴라만한 친구 하나를 데려왔다.

녀석은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나를 보고 씩 웃었다.

결국 다른 길로 돌아갔다.


사무실은 힌두와 무슬림, 커리와 향신료가 뒤섞인

발 디딜 틈 없는 상업지구 한가운데.

빨래가 펄럭이는 낡은 건물 옥상 아랫층에서

홈페이지 관리와 매거진 편집, 한국 방송국에 현지 소식을 전했다.

퇴근 후엔 탄두리 향이 밴 샌드위치를 먹으며 마저 인강을 들었다.

타르 사막의 열기를 머금은 바람이 창문 틈으로 스며들었고,

골목을 점령한 영국발 유기견들의 울음소리와 오토바이 경적소리가 뒤섞여 울려 퍼졌다.

그 더위와 소음 속에서도 꿈을 향한 나의 펜은 멈추지 않았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 어디에 있든 나의 길을 끝가지 가겠노라 다짐했다.


졸업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열람실, 같은 자리에 앉아

강의를 듣고 문제를 풀며 틀린 답을 고쳐 나갔다.

펜 끝이 노트에 흔적을 남길 때마다

목표에 한 걸음 다가간다고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늘어갔다.

방대한 분량 탓인지 앞을 보면 뒤가, 뒤를 보면 앞이 기억나지 않았다.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끝까지 버티면 언젠가는 붙는다'

수험가에서 전해져 오던 그 말을 굳게 믿었다.


대학 커뮤니티에 스터디원을 모집했다.

혼자서는 한계를 느꼈고, 함께 공부하며 자극받을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자신의 가능성에 청춘을 건 초보 도박꾼 네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성공하면 이상에 한 발 다가가지만, 실패하면 현실에 두 발 멀어진다.


우리는 매주 진도를 점검하고, 서로에게 문제를 내어 답을 맞혔다.

여태까지 풀지 못했던 문제를 처음으로 풀어냈고,

내 설명에 그들이 고개를 끄덕일 때면

약사가 아니라 교수를 해야 하는게 아닌가 생각했다.


시험이 가까워졌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주변 정리를 했다.

친구들에게는 "합격할 때까지는 아무도 만나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스스로 도망칠 곳을 없애버렸다.

도서관 문이 열리자마자 들어가서 닫히기 직전에 나왔다.

'여기서 못 버티면 끝이다'

점점 더 커져가는 압박감이 의자 위에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시험일, 간절한 마음을 담아 시험지를 받아 들었다.

시험지 특유의 거친 촉감이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시작 알림 소리과 함께 첫장을 넘겼다.


처음 몇 문제는 순조로웠다.

그러나 이내 손이 멈췄다.

심장이 한 번 크게 뛰더니 귀까지 쿵쿵 울렸다.

'괜찮아, 일단 넘어가자'

스스로를 달래며 아는 문제부터 풀어나갔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미뤄둔 문제들이 늘어갔고,

종이 위의 글자는 점점 얼룩처럼 번져 보였다.


마지막 장을 끝내고 첫 장으로 돌아오자,

막혔던 문제들의 답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긴장감 속에서 벅찬 감정이 밀려왔다.

'할 수 있다.'

종료 1분 전,

떨리는 손으로 OMR 카드에 답안을 채워 넣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함께 공부한 두 명은 합격했다.

"정말 잘됐다. 수고 많았어."

웃으며 말했지만,

돌아서는 순간 거대한 질투가 나를 집어삼켰다.

나도 그들만큼, 아니 그들보다 더 절박하게 했는데

왜 나만 떨어진 걸까.

노력의 양이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공부를 시작한 지 몇 해가 흘렀다.

보기는 칠지선다로 바뀌었지만,

내 실력은 제자리였다.

설렘과 희망은 서서히 빛을 잃었고

의무감만이 거칠게 나를 붙들었다.


최신 유형의 모의고사 문제지 앞에서

펜을 부러뜨릴 듯 움켜쥐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불덩이가 치밀었다.

분명히 머릿속에 또렷이 새겨둔 이론들인데,

문제 앞에서는 제대로 꺼내 쓰지 못했다.

부들부들 떨리는 펜을 타고,

손바닥에 맺힌 땀이 흘러내렸다.


시험장 근처에 차를 세웠다.

문을 열려 했지만,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 문을 열면 또다시 상처받을 게 뻔했다.

애꿎은 손잡이만 잡았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창 너머로 부모와 웃으며 인사를 나누는 학생,

헤드폰을 낀 채 수험표를 바라보는 젊은 남자,

굳은 표정으로 커피를 삼키는 중년의 여성.

각자의 무언가를 건 치열한 판 속에서

이십 대 청춘을 올인한 나는 빈손이었다.

힘이 빠진 손은 무릎 위로 늘어졌고,

목 끝까지 차오른 울음은 더이상 삼킬 수 없었다.


그날 이후, 더는 책을 펴지 않았다.

5년 가까이 견뎌온 시간들이 한순간에 빛을 잃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붙는다"

그 말은 누군가에겐 진실이었겠지만,

나에게는 잔혹한 거짓이었다.


뉴델리의 소란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던 펜은

차가운 정적 속, 굳게 닫힌 책 앞에서 멈췄다.

반복된 실패 속에 가라앉은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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